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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논평] 신임 정보통신부 장관과 노무현식 신자유주의

By 2003/02/28 10월 25th, 2016 No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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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신임 정보통신부 장관과 노무현식 신자유주의

삼성전자 진대제 디지털미디어 총괄사장이 새 정부의 첫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진대제씨는 삼성 ‘반도체 신화’의 주역으로 알려져 있고 업계는 그의 입각을 반기는 분위기이다.
노무현 정부가 그를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임명한 것은 새 정부의 정보화에 대한 관점을 잘 드러낸다.

김대중 정부에게 정보통신은 지구적 신자유주의 체제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위한 물적 기반이자 주목받는 새로운 상품 영역이었다. IMF 체제로 신자유주의적 경제 합리화를 요구받은 김대중 정부는 출범 초기서부터, 고용을 창출하는 실업 대책으로, 재벌에 대비되는 자유주의적 기업 구조로, 신자유주의적 금융 자본화의 모델로 정보통신 산업, 일명 벤처 산업을 선호하였다. 그리하여 다소 비(非)자유주의적 방식으로 – 막강한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묻지마 투자를 유도하여 정보통신 산업이 인위적으로 부양되었으며 김영삼 시절엔 보잘것 없었던 정보통신부의 위상 또한 오늘날처럼 막강해졌던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정보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경제주의적 관점에 입각해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벤처 프로젝트는 급속한 양적 성장에 비례해 여러 사회 문제를 양산해 왔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각종 게이트 파문 속에 벤처 경제는 신정경유착이자 총체적 부패와 비리의 진원지였음이 드러났다. 인터넷은 급속히 보급되었지만 그게 걸맞는 사회문화적 진단과 처방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정보통신부는 땜빵식 규제 정책으로 제 권한만 불려 왔다. 표현의 자유나 프라이버시, 그리고 정보의 공정한 이용에 대한 권리 등 정보화 시대 국민의 인권은 정보통신부와 업계의 이해 속에 단한번도 진지한 논의의 대상이 된 적이 없다. ‘백만 주부 인터넷 교실’ 등 정보 격차를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몇몇 사업들이 진행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소비 촉진이라는 제한된 목표 아래 실시되었으며 성별이나 도농간 정보 격차가 질적인 수준에서 심각해지고 있다는 학계 보고가 있다. 화려한 정보화의 이면에 인프라는 민영화하여 초중고등학교 인터넷선은 KT의 자회사인 한미르 가입과 맞교환되었다.

김대중 정부는 정보화를 명백히 신자유주의 경제 개발 프로젝트로 삼았던 것이고 이에 따라 정보화는 경제적 가치가 비대하게 부각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착취적 경제 개발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반민주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겪어 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 입각은 노무현 정부 역시 정보화를 철저히 경제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할 것임을 암시한다. 김대중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정보화를 시작했다면, 노무현 정부는 그 연장선에서 이를 완성할 태세인 것이다.

노무현씨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가장 큰 수훈이 ‘노사모’로 대표되는 인터넷에 돌아갔음을 상기할 때 이는 상당히 아이러니한 일이다. 새 정부에 있어서도 인터넷은 민주주의보다 신자유주의 경제적 측면에서 더 큰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게 대중적 열망은 하나의 해프닝일 뿐이고, 인터넷은 선거 필승을 위한 대중 동원 전략 정도였던 것일까.

노무현씨는 이미 후보 시절부터 인터넷이나 정보화를 국민의 권리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성찰하는 태도를 찾아볼 수 없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정보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33개 공약을 제안했을 때 노무현 후보는 거의 수용하지 않았다. 특히 정보통신윤리위원회 폐지, 스팸메일에 대한 옵트인 제도 채택, 핸드폰 요금 인하 등 현안에 대해서는 정보통신부의 기존 입장을 답습하는 데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노무현 후보는 다른 모든 후보들이 그 필요성에 공감한 프라이버시보호법 제정에 대해서도 안이한 답변으로 실망을 주었다.

지금 한국 정보화에는 산업 육성보다 중요한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이 가지는 대중적 의미가 커질수록 그 민주성·민중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고양시킬 필요가 있다. 붉은악마, 촛불시위, 노사모에 이르기까지 2002년 한해 동안 인터넷이 보여준 ‘대중적 힘’은 놀라운 것이었지만 이 힘이 진정한 의미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통신기술, 그리고 보다 거시적 의미에서의 정보화의 설계와 운영 과정에 대한 민중적, 민주적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참여’의 과제는 업계의 이해와 분리된, 때로는 상반된 지점에서 접근되어야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런 점에서 새 장관은 우리의 우려를 깊게 한다. 안그래도 정보통신부는 업계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원성을 들어온 처지였으며 특히나 시장지배적인 업계 수장의 입각은 새 정부의 개혁주의적 기조와도 상충된다.

무릇 첫 입각은 새 정부의 청사진이다. 그런 의미에서 첫 정보통신부 장관은 우리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 주었다. <끝>

2003-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