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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인터넷시대 행정권력의 횡포 사라져야

By 2002/10/19 10월 25th, 2016 No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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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2.10.18(금)일자

인터넷시대 행정권력의 횡포 사라져야

결국 정보통신부는 사회단체의 반대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무시하고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인터넷은 국민의 민주적 의견 수렴을 가능하게 했지만 정부는 인터넷 시대의 자유보다는 낡은 시대의 권위주의적 작풍으로 돌아가려고 애쓰는 것 같다.

논란은 지난 2000년 인터넷 내용등급제를 둘러싸고 분출했다. 인터넷 내용등급제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일방적으로 지정하는 청소년유해매체물을 차단 소프트웨어로 자동차단하도록 하는 기술등급제다. 정통부는 입안 초기부터 여기에 반대한 사회단체들의 주장을 왜곡하고 폄하하더니 국회의 반대조차 무시하고 시행령으로 꼼수를 부려 결국 인터넷 내용등급제를 시행하고 말았다.

또 정보통신윤리위는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에 근거해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해 왔다. 학교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자퇴 청소년 커뮤니티를 폐쇄하기도 했다. 법에 따르면 이 위원회의 심의위원은 모두 장관이 임명하고 위원장은 장관에 의해 승인되며 모든 업무가 장관에게 보고되고 있다. 정보통신윤리위는 명백한 행정기구로서, 다른 매체의 심의기구와 비교해도 가장 구시대적인 검열기구다. 그런데도 위원회는 자신들의 등급제가 민간 자율 등급제라는 해괴한 논리로 여론을 호도해 왔다.

다행히도 지난 6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사회단체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에 대한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불온’이라는 기준으로 ‘정보통신부 장관’이 인터넷을 검열해온 것이 우리 헌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통부와 정보통신윤리위는 그동안 이 악법으로 수많은 귀중한 표현을 삭제하고 폐쇄했던 데 대해 반성하고 사과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인터넷 규제권을 고수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정통부는 ‘앞으로는 불법을 규제하겠다’며 살짝 말만 바꾸어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는 국민과 헌법재판소를 무시한 행정권력의 횡포라 아니할 수 없다.

그동안 인터넷국가검열반대공동대책위원회는 수차례의 성명과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의 견해를 밝혀 왔다. 또한 꾸준히 외국의 사례도 연구하면서 민주적인 인터넷 내용규제 정책을 모색해 왔다.( www.nosensor.org 우리의 구상 안에 정통부 장관의 명령권이나 정보통신윤리위의 심의활동은 있을 자리가 없다. 민주사회는 자주적이며 자율적인 민의가, 살아 있는 인체 속의 피가 돌 듯 원활하게 소통되어야 한다. 인터넷에 불법행위가 있다면 법에 따라 공정하게 처리하면 될 일이다. 정통부와 정보통신윤리위에는 통신상의 불법행위를 규제할 권한이나 능력이 없다. 특히 위헌 기구로 결정난 정보통신윤리위는 즉각 해체해야 한다.

그동안 위헌적인 심의행정의 칼날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이 많다. 정통부와 위원회가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권리의 피해에 대해 어떻게 보상할 생각인지 양심의 소리를 듣고 싶다. 그러나 이들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검열을 계속할 모양이다. 특히 많은 종교계의 대표자들이 정보통신윤리위의 심의위원으로서 국가검열의 방패막이를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부시는 자신의 전쟁이 성스럽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 전쟁은 평화를 파괴하는 행위이며 전세계 민중에 대한 폭력이다. 청소년 보호와 도덕적인 문화를 앞세운 국가검열기구 정보통신윤리위의 심의도 역사, 문화 발전의 걸림돌이며 폭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국회는 부디 또다른 위헌 시비가 일어나지 않도록 이 법안을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왜 사회단체들이 이 법안을 반대하고 있는지 귀기울여 주길 바란다. 지금부터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려깊고 헌법에 부합하는 인터넷 내용규제 정책을 연구하고 개발할 것을 충언하고 싶다.

장창원/ 인터넷국가검열반대공동대책위원회 운영위원장, 전 영등포산업선교회 목사

2002-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