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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사전검열 법리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활동: 법과학적 방법으로 (박경신)

By 2002/09/26 10월 25th, 2016 No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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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대한변협 발간 <인권과 정의> 2002년 8월호

사전검열 법리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활동: 법과학적 방법으로

박경신 한동대학교

1956년에 미국로드아일랜드주 의회는 청소년질서 확립을 목적으로 청소년도덕순화위원회를 설립하고 그 위원회에 청소년에게 유해한 서적들에 대해 일반인들을 계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다. 이 위원회는 시중에 이미 판매되고 있는 서적들을 심의하여 과반수 이상의 위원들이 해당 서적을 유해물로 판단할 경우, 해당 서적을 판매하는 자에게 청소년유해판정 사실을 통보하였다. 이 판정 통지서는 ‘판정결과가 경찰당국에도 통보되었다’는 내용과 ‘위원회가 음란물의 배포에 대해 처벌을 하도록 관련당국에 권고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에 따른 판매자의 ‘협조’를 권고하였다. 거의 모든 서점들은 위의 통지를 받으면 즉시 관련서적의 판매를 중단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하여 미연방대법원(8-1)은 청소년도덕순화위원회의 위와 같은 권고행위가 위헌적인 사전제재(prior restraint, 역자: 검열과 비슷한 개념)에 해당한다며 관련 법규 전체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렸다. 위의 행정행위는 모두 표현물이 출시 및 유통된 이후에 집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전제재로 분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서 사전(事前)이란 어떤 시점의 이전을 말하는가? 그리고, 위의 행정행위들은 관련책에 대한 완전한 금서가 아니라 청소년들로부터의 차단 만을 목표로 하였는데도 사전제재의 법리는 변함없이 적용되는가?

우리나라 헌법 제21조는 검열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후제한 및 기타 표현의 제한들은 헌법 제37조2항을 통해서 과잉금지의 원칙을 지키는 범위에서 합헌적인 제한으로 인정 받을 수 있지만 우선 검열로 판단되면 예외 없이 위헌 판정을 받도록 되어있다.

헌법재판소는 검열을 다음과 같이 4개 내지 6개의 요건을 매개로 정의하고 있다. 첫째, 허가를 받기 위한 표현물의 제출의무, 둘째, 행정권이 주체가 된 사전심사절차, 셋째, 허가를 받지 아니한 의사표현의 금지, 넷째, 심사절차를 관철할 수 있는 강제수단 등이다. 다섯째, 위 네가지 요건 외에 명시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지만, 헌법재판소는 표현물의 발표를 완전히 금지하지 않고 표현물의 청소년유해성 등급에 따라 부분적으로 제한하는 ‘등급제’는 검열이 아닌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여섯째, 사전심사가 내용적인 심사일 경우에만 ‘검열’의 범위에 포함되며 시간, 장소, 방법에 대한 심사를 위한 사전심사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검열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다른 제한에 비해 더욱 강력한 규범통제를 받아야 하는 정책적인 이유를 “검열이 허용될 경우 국민의 정신생활 및 의사형성에 미치는 위험이 클 뿐만 아니라 행정기관이 집권자에게 불리한 내용의 표현을 사전에 억제함으로써 이른바 관제의견이나 지배자에게 무해한 여론만이 허용되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헌법이 직접 그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것” 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검열 법리의 목표가 그런 것이라면 헌법재판소가 정해놓은 ‘검열’의 요건은 너무 협소한 것으로 보인다. 미연방대법원은 한국의 ‘검열’에 대응되는 개념으로서 사전제재(prior restraint)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사전제출을 의무화한 출판허가제는 당연히 금기시되지만 ‘사전제재’의 개념은 헌법재판소가 요구하는 ‘사전제출의무’가 적용되지 않는 법원금지명령이나 행정기관의 금지명령에도 적용되며 완전금지가 아닌 ‘등급제’에 의한 부분적인 제한인 경우에도 적용된다. 미국의 ‘사전제재’ 개념은 한국의 ‘검열’ 법리보다 폭이 넓은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검열’법리에서는 관련된 표현물이 이미 일반에 공개되고 유통된 이후에 추가 유통을 제한하기 위해 내려지는 법원이나 행정기관에 의한 출판금지 명령도 미국에서는 ‘사전제재’로 평가받는 것이다.

이와 같이 헌법재판소가 운용하는 ‘검열’의 정의가 협소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행정권에 의한 표현물 심의제도에 대해 정책적 우려는 무성하지만 ‘검열’의 법리에 온전한 기반을 둔 적극적인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황성기 교수는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정보통신부장관의 PC통신사업자와 인터넷서비스제공자에 대해 내릴 수 있는 거부, 정지 및 제한명령과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의한 심의제도가 모두 ‘사후제한’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고, ‘검열’의 정의를 ‘사상의 자유시장의 형성뿐만 아니라 유지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 폭넓게 규정함으로써 정보통신부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사후제한도 검열의 한 형태로서 엄격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사후검열’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출할 것을 주장하고 있으나 정책적 또는 철학적 주장에 머무르고 있다.

이인호 교수도 ‘검열’을 ‘국민이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직접 어떤 표현에 대한 평가의 기회를 가지기도 전에 정부 또는 제3자가 그 내용을 심사해서 이를 걸러내는 조치, 즉 사상의 공개시장의 형성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모든 조치’로 파악하고 있어 사후심의의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많은 제재에 대하여 우리 헌법 상의 검열금지의 원칙을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황승흠 교수도 정보통신윤리위원회나 정통부의 규제방식에 대하여 ‘사전억제금지의 정신’을 살려 삭제 및 수정을 즉각적으로 하지 말고 최소한 일주일이 경과한 후에 시행할 것을 제안하고 있으나 이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규제방식이 원칙적으로 사후심의임을 인정한 토대에 근거한 주장으로서 역시 실증적(positivistic) 효력이 있는 주장이라고 할 수 없다.

이 논문은 미국에서 ‘검열’의 개념 대신 사용되는 사전제재(prior restraint)의 개념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고, 이를 ‘검열’의 개념과 비교하며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중심으로 간행물윤리위원회 및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의 활동의 헌법적 재검토를 주장한다.

여기서 필자는 법과학적(legal science)인 방법을 동원하여 사전제재에 대해 연구해보고자 한다. 법과학적(legal science)인 방법이란 법을 경험과학과 동일한 방법으로 연구하는 것으로 모든 판례들은 법이라는 현실의 유효한 구체적표현이라는 가정 아래 수많은 판례들을 읽어내어 그 판례들로부터 일반화해낼 수 있는 명제들을 도출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 명제들은 우선 가설(hypothesis)의 형식으로 도출된 후 새로운 현상들(판례들)이 관찰될 때마다 검증(verification)되어 수정 또는 폐기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하 첨부파일 참고)

2002-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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