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실명제월간네트워커

평범한 '나'가 살아가는 공포스런 정보사회 이야기{/}나의 공포 체험기

By 2003/10/05 10월 29th, 2016 No Comments

표지이야기

신기섭

이건 나의 ‘공포 체험기’이다.
요즘 나는 월요일 아침이 싫다. 월요일 증후군 때문이 아니다. 나의 공포는 출근하자마자 확인하지 않을 수 없는 전자우편에서 시작된다. 주말 동안 애써 잊고싶던 쓰레기들이 어김없이 쌓여있다. 주로 쓰는 두개의 전자우편 계정을 통해 들어오는 100~200통에 가까운 광고 메일 지우기가 월요일 아침의 첫번째 일이다. ‘삭제 요망 전자우편’이라고 이름 붙여놓은 다른 3개의 웹 메일 계정으로도 쉼 없이 침입자들이 날아 들어온다. 제 때 지워주지 못하면 체증을 피할 수 없다.

귀신보다 무선운 스팸메일

요즘 내가 받는 스팸메일들은 단순히 나의 귀중한 아침시간을 빼앗아 가는 것에 그치지 않다. ‘전자우편=삭제 대상’이라는 공식이 머리 속에 굳어지면서 중요한 편지가 휩쓸려 지워지는 일까지 종종 생기고, 그래서 전자우편 확인은 반가운 소식을 기대하며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즐거운 작업이 결코 아니다. 게다가 언제인가부터 스팸메일들을 지우고 나면 내 인터넷 브라우저의 즐겨찾기에는 외국 포르노사이트 두, 세개가 버젓이 자리를 잡는다.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아무리 작동시켜놔도 막을 길이 없다. 어쩌면 이상한 인터넷 사이트를 접속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즐겨찾기가 더 이상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건 분명하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내 컴퓨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과연 이것뿐일까? 내 손때가 묻은 익숙한 이 기계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란 말인가? 조금 과장하면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될 법도 하다.
결코 막을 수 없는 불청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듣기 싫은 훈계를 되새기도록 강요당하는 어린아이 꼴이 된 지 오래다. 모르는 사람이 보낸 전자우편은 절대 열어보지 말 것, 혹시 메일을 열더라도 아무 것이나 건드리지 말 것, 꼭 필요하지 않으면 답장을 하지 말 것, 메일을 확인할 때는 꼭 바이러스 검색 프로그램을 작동시켜 놓을 것,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것 같은 ‘아웃룩 익스프레스’는 근처에도 가지 말 것 등등. 나의 이메일 수칙은 하루하루 늘어만간다.

나를 쫒아다니는 ‘쿠키’유령

‘온 세상의 모든 정보를 내 손끝에’ 가져다 준다는 월드와이드웹도 더 이상 무한히 열려있는 정보의 공간이 아니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돌아다녀야 하는 인터넷 사이트들을 빼면 내가 마음놓고 접속하는 사이트는 손에 꼽을 정도다. 마음씨 고약한 프로그래머들의 집중적인 공략 대상인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꼭 필요한 경우 아니면 잘 쓰지도 않는다. 가끔 이런 수칙을 어기고 웹 세상을 어슬렁거리다가는 누가 나 모르게 뭔가 장난을 치고 있을지 모른다는 찜찜함을 지우기 어렵다. 처음 접속한 사이트의 ‘처음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라는 문구가 ‘다섯번째 접속하셨군요’로 발전하고 나면 게시판에 짤막한 글 한 줄 적어놓고 싶은 마음도 싹 달아난다. 이럴 땐 어김없이 쿠키를 깨끗이 지워버려야 한다. 밖에서 놀다가 돌아온 아이가 손을 깨끗이 씻듯이.
그런데 이제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가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내 주민등록번호 하나만 알면 내가 어느 사이트를 얼마나 돌아다니고 어떤 흔적을 남기고 다니는지 모조리 알 수 있는 세상이 올지도 모를 판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나의 ‘즐겨찾기’ 목록은 결코 더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또 집과 직장, 단골 술집 같은 몇몇 곳을 맴도는 나의 ‘오프라인 생활’처럼 나의 ‘온라인 생활’의 범위도 좁아지면 좁아졌지 넓어질리도 없을 것이다. ‘인터넷에 온 세상이 다 있다는 말’이 이젠 내게 무의미하다. 저 밖의 ‘넷 세상’은 더 이상 미지의 신천지가 아니라 낯설고 무서운 ‘무법천지’ 또는 ‘쓰레기통’일 뿐이다.
그렇다고 이 정도로 내 신상이 ‘훌륭한 정보’로 빠져나가 팔리는 일을 막을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할 수도 없다.
은행의 이체 수수료 인상이 괘씸해 얼마 전 시작한 인터넷뱅킹은 처음부터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궁금증이 발동해 무심결에 ‘세금우대한도조회’ 항목을 눌러본 이후는 인터넷뱅킹을 시작한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나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다른 은행 계좌와 보험의 정보까지 등장한 것이다. 이제 ‘살얼음판이 깨지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도 겁이 난다.
이동전화로 걸려오는 상품 판매, 홍보용 전화와 문자메시지까지 차츰 나의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1~2년전만 해도 저쪽이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내 이름을 어디서 알아냈느냐, 나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고 호통을 쳐서 상대의 말문을 막아버리곤 했지만, 요즘은 도리어 저쪽에서 협박을 하는 지경이다. "신용정보 조회서비스인데요…" "전 신용 멀쩡합니다." "그걸 어떻게 자신하시죠?" "연체라곤 해본 적 없어요." "다른 사람이 주민번호 도용하지 않았는지 어떻게 아세요?" 몇마디의 대화로 저쪽은 내 말문을 막는 데 성공했다. 정보통신 기기나 온라인 금융 서비스 이용은 마치 ‘필요한 경우 언제든지 당신의 개인 정보를 빼내 이용할 수 있습니다’라는 조항에 동의하는 꼴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거꾸로 장사에 이용하는 것이다.

‘그는 내가 한 일을 기억하고 있다’

이 전화 이후 나의 불안감은 ‘오프라인 생활’로도 계속 확대되고 있다. 폐쇄회로텔레비전 감시 카메라가 도시 구석구석에 널려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은행의 현금자동인출기, 지하철 개찰구, 큰 건물의 주차장 할 것 없이 곳곳에 감시카메라들이 작동하고 있지만, 이 카메라 뒤에 누가 도사리고 있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갑자기 화가 나서 카메라를 피해보기도 하고, 오기가 발동해 카메라를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하지만, 결국 나만 바보가 되는 기분이다. 이 뿐 인가? 전자카드 없이는 들어가지도 못하는 출입구는 비단 첨단을 자랑하는 대형 건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은 지 얼마 안되는 아파트들 치고 1층에 비슷한 장치가 없는 곳들이 별로 없다. 감시카메라는 물론이고. 아는 사람의 사무실이나 집을 방문할 때조차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당하고 감시당하는 시절이 됐다.
그러던 어느날 버스를 올라타나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운전사 머리 바로 위에 걸린 카메라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저 사람은 하루종일 일하는 모습을 감시당하며 살다니…"

이래도 이 ‘공포체험기’가 내 과민함에서 비롯된 어설픈 ‘납량특집 나부랑이’쯤으로 느껴지는가?

2003-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