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표현의자유

[표현의자유/성명] 인권이란 말을 부끄럽게 만든 영화제

By 2001/10/08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성명서>
인권이란 말을 부끄럽게 만든 영화제 – 울산영화제 조직위원회에 속한 모든
단체들은 <밥꽃양> 사전검열과 홈페이지 폐쇄에 대하여 해명하고 사과하라

10월 중반에 개최될 예정이었던 ‘인권과 평화를 위한 울산영화제'(이하
울산영화제)가 라넷(LARNET, Labor Reporters’ Network)의 작품 <밥꽃양>에
대한 사전 검열 논란 끝에 지난 9월 18일 무기한 연기에 들어갔다. 또한
납득할만한 해명을 내놓지 못한 상태에서 ‘공개토론회’를 주장하던 주최측이
21일 태도를 바꾸어 네티즌과 여러 사회단체들의 토론이 진행중이던 영화제
사이트를 일방적으로 폐쇄해 버려 큰 충격을 주었다. 게다가 이 영화제의 주요
주최자 중 하나인 울산인권운동연대가 영화제 파행의 책임을 문제제기자인 라넷
측에 돌리고 있어 또다른 파문을 낳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토론은 지금 라넷
측에서 구축한 울산영화제 ‘패러디 사이트'(http://larnet.jinbo.net)에서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 사태 해결의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대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어야 하는가?

지난 몇 년간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위한 활동을 해온 우리 단체들은
울산영화제 조직위원회에 속한 모든 단체들의 책임있는 해명과 사과 없이는 이
문제가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 판단하며 이에 입장을 발표한다. 물론
우리는 이 문제가 ‘표현의 자유’라는 논의 주제를 넘어선 것일 수 밖에 없음을
인식한다. 노동운동의 가부장성과 여성노동자의 배제, 그리고 가부장적
노동운동의 자본과의 타협이라는 거대한 치부를 고발한 <밥꽃양>의 상영 문제를
둘러싼 이 논쟁은 앙상한 자유권 확보에 관한 문제를 넘어선 생존권과 사회적
권리에 대한 것이자 가부장적 자본주의와 가부장적 노동운동에 대한 근본적
비판에 관한 것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사태의 출발 지점이자 여전한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검열’의 문제에 대해 먼저 입장을 밝힌다.

1. <밥꽃양>의 사전시사 요구는 분명한 검열이다

검열의 사전적 의미는 △ 정부 등 행정기관이 형사처벌 등의 강제할 수단을
가지고 △ 사전에 내용을 시사하고 규제하는 행위를 뜻한다. 그리고 우리가
‘정부 등 행정기관’을 넓은 의미의 ‘강제적 수단을 가지고 있는 권력’으로
해석해 보면 <밥꽃양>에 대한 사전 시사 요구는 검열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이 사전 시사 요구는 단지 사전에 보기 위한 영화제의 관료적 진행
과정의 맥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분명 주최측에서 작품에 대한 외압을
의식하여 작품의 상영 결정 번복이라는 강제적 수단을 동원할 가능성을 포함한
요구였기 때문이다. 이 외압은 노골적인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전 시사를 요구한 이들의 면죄부는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오히려 ‘침묵의 카르텔’ 혹은 ‘자기 검열’이라 불리우는, 권력에 대한 자발적
굴복에 더욱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라넷이 이를 넓은 의미의 검열로
규정하고 검열의 요구를 거절한 것은 정당한 행위였다.

그러나 주최측에서는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예산 문제 때문에, 혹은 의사결정
과정상, 혹은 프라이버시 문제 때문에, 혹은 저작권 문제 때문에, 그밖의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밥꽃양>의 "상영이 결정된 바 없으므로 상영이 번복된
바도 없다"는 말만 되풀이함으로써 쟁점을 분산시키고 주요 쟁점을 주변화시켜
왔다. 그리고 이제는 파행의 책임이 ‘침소봉대’한 라넷 측에 있다고 한다.

주요 쟁점이란 이런 것이다. 울산영화제는 얼마나 사회적·구조적 약자의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는가? 검열을 하지 않는 것은 인권
영화제 뿐 아니라 민주사회에서의 기본이다. 그렇다면 인권의 이름을 한
영화제에서는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하며, 그것은 외압에 맞서 사회적·구조적
약자의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것을 말한다.
다른 대체할 표현의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회적·구조적 약자의 표현에
대한 억압은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욱 치명적이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는 단지
‘검열하지 아니함’의 의미를 넘어서서 사회적·구조적 약자의 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옹호’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개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울산영화제는 제 이름에 걸맞는 역할을 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2. 홈페이지와 게시판 폐쇄는 비판적 토론을 폐쇄한 이차적인 검열이다

울산영화제 집행위는 9월 18일, 울산영화제 무기한 연기를 밝히며 문제제기를
한 모든 개인과 단체에게 공개토론회를 제안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서는 온라인상의 논의를 거칠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9월 21일
울산인권운동연대는 단체 홈페이지와 울산영화제 홈페이지와 게시판을
일방적으로 폐쇄하여 스스로 한 제안을 모두 부정하였을뿐더러 기꺼이 토론에
적극적으로 임해 온 네티즌과 여러 사회단체들의 기대를 배신하였다.

그간 울산인권운동연대를 비롯하여 울산영화제에 관련된 당사자들이 홈페이지와
게시판에서 보여준 태도는 이들이 아직도 사태인식을 잘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책임있는 사회단체라면 공개적 비판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임하고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영화제
조직위원회에 속한 대부분의 단체들은 최소한의 해명과 사과라는, 문제해결의
첫단추조차 제대로 끼우지 못해 왔다. 영화제 집행위원회는 수많은 단체와
네티즌들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하며 책임을 특정단체에게 떠넘기는 발언을
계속해 왔으며 이제는 음모론에 가까운 태도마저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안된 공개토론회는 영화제 파행에 부수된 또다른 파행의 운명을 안고 있었을
것이다. 계속된 악수는 한창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던 홈페이지와 게시판을
폐쇄한 데서 절정을 이룬다.

홈페이지는 무엇 때문에 개설하였으며 게시판은 무엇 때문에 구축하였는가?
인터넷이 사회운동진영에 의미를 가지는 것은 단순한 선전·선동의
공간으로서가 아니다. 인터넷 공개 게시판은 제한이 없는 토론 참여와
쌍방향적인 토론을 보장함으로써 민주적인 의사소통과 전자 민주주의에 대한
하나의 공개적인 실험을 해왔으며 우리는 모두가 이 과정에 오래전부터 참여해
왔다.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일에는 사회적·구조적 약자의 인터넷에서의
의사소통이 제한당하고 왜곡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포함한다.
인터넷에서 차별이 재생산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여러
커뮤니케이션 이론가들이 인터넷에서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자신의
권력으로서 의사소통 과정을 억압하는 것을 ‘간접 검열’로 규정하고 이것이
전자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음을 경고했던 것이다.

이번 홈페이지와 게시판 폐쇄는 홈페이지 운영권을 쥐고 있는 측에서 자신에
대한 비판적 토론을 일방적으로 폐쇄해버린 것으로서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행태였다. 그 뿐 아니라 이것은 <밥꽃양>을 둘러싼 토론과, 사회적·구조적
약자에 대한 차별에 대한 고발을 억압함으로써 하나의 ‘간접 검열’을
수행하였다. 이것은 이번 울산영화제가 자행한 또다른 검열이다.

정녕 ‘인권’의 말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우리 단체들은 이 문제가 올바르게 해결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며,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서 울산영화제 관련 당사자들에 우선적으로 아래
요구를 수용할 것을 요구한다.

– 울산영화제 조직위원회에 속한 모든 단체들은 영화제 파행에 대하여 책임있는
해명을 하고 사과하라!
– 울산인권운동연대는 홈페이지 폐쇄에 대해 사과하고 게시판을 즉각 복구하라!
– 울산인권운동연대는 영화제 파행의 책임을 문제제기자에게 돌린 것에 대하여
해명하고 사과하라!

2001년 10월 8일

문화개혁시민연대, 민주노동당, 인터넷신문대자보, 진보네트워크센터,
평화인권연대, 학생행동연대정보통신모임I’m,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2001-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