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TRIPs)의약품특허입장

[특허/기자회견]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 즈음, 환자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의약품 공공성 쟁취! 의약품 특허 강제실시 촉구

By 2001/09/18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 9.18. 오전 11시 느티나무 카페에서 열린,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 즈음, 환자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의약품 공공성 쟁취! 의액품 특허 강제실시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표되었던 자료입니다.

-2001년 9월 19일 TRIPs 이사회에서의 의약품 특허에 관련된 논의와 우리의 입장에 대하여 한국 담당자에게 보내는 공개 서신 –

"지적 재산의 권리는 건강과 생존의 권리에 우선할 수 없다.
각국은 자국의 의약품 특허를 결정하고 집행할 주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이 공개서신은 2001년 9월 19일에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열리는 TRIPs(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무역관련지적재산권) 이사회에 참가할 한국 대표에게 보내지는 것이다. 건강과 지적재산권에 대한 최초의 역사적인 논의가 열렸던 지난 6월 20일, 제네바에서 행해진 한국 대표의 연설은 이 사안이 얼마나 중요하고 그 핵심은 무엇인지에 대한 안타까운 수준의 이해를 보여주고 있었다. 바로 이 순간에도, 상업적으로 개발되는 의약품과 독점적-배타적으로 보호되는 의약품에 대한 지적재산권에 의해 하루에 3만7천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이윤이 남지 않는 약은 만들어지지 않고, 만들어진 약들은 너무나 비싸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허가 하루 연장될 때마다 25만 달러, 우리돈으로 3억 2,500만원 이상의 이윤이 추가적으로 발생한다. 이것이 3만 7천명의 생명의 가격이다.
오는 9월 19∼2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릴 TRIPs 이사회에서는 TRIPs 협정 중 특히 의약품 특허와 관련해 제반의 사항들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은 TRIPs Council을 통해 다국적 제약자본의 이익을 옹호해주는 의약품 특허권 강화가 아닌 인류의 건강권을 옹호하고 의약품의 공공성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적재산권 강화에 따른 제약회사의 이윤 확보가 생명에 우선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TRIPs Council에 다음을 요구하는 바이며, 정부 역시 국민의 건강권을 우선시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요구에 동참할 것을 기대한다.

1. 특허권자의 배타적 독점권의 남용을 막고, 의약품의 공공성을 강화시키는 정책이 의약품과 관련한 모든 정책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TRIPs 협정의 서문과 7조(목표), 8조(원칙)는 지적재산권을 해석하고 활용하는 데에 있어서 공공이익이 우선해야한다는 강력한 전제를 담고 있다. 7조에서,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와 기술의 이전 및 전파를 통한 사회 및 경제 복지에 대한 기여는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8조는 TRIPs 협정의 규정에 부합되는 범위 내에서 각 회원국들은 공중 보건을 보호하고, 지적재산권의 남용을 제한하며, 국제적인 기술 이전의 장애요소들을 방지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은 지적재산권과 공공의 이익 사이에 균형이 TRIPs 협정의 실시 만으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각국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의미한다. 따라서, TRIPs 협정 7조와 8조의 문제의식이 완전하게 실행되어 특허권자의 배타적 독점을 막고, 의약품의 공공성 확보가 최대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 각국은 자국의 구체적 상황에 따라 의약품을 특허로 보호할 것인지, 어떤 의약품을 특허로 보호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하고, 이에 대해 WTO나 미국 등의 다자간/양자간 압력이 존재해서는 안된다.
TRIPs 협정 제 1조 제 1항에 따르면 회원국들은 협정의 규정과 충돌하는, 협정에서 요구하는 것 이상의 광범위한 보호를 국내법에서 이행할 것을 강제받지 않으며 협정의 규정을 자국의 보건 쳬계와 실행을 가장 잘 보호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유롭게 이행할 수 있다. 이것은, TRIPs 협정에 의한 무리한 의약품 특허보호가 자국의 국민건강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경우 각국은 국내법에 따라 의약품에 대한 특허보호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각국의 국민들의 건강보호와 건강 증진을 위해 TRIPs 조항이 해석되고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미국과 WTO의 신보수주의적 해석과, 이에 기반한 무역제제 등의 압력은 각국이 자국민의 건강에 대한 주권을 행사하는 데 중요한 방해물로 작용한다. 겨우 90만명 밖에 안되는 국민들 중 25%가 HIV 감염상태인 스와질랜드와 같은 나라에서 막대한 소송비용과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견뎌내어 이러한 주권을 행사할 수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번 회의에서는 의약품에 대한 지적재산권의 형태와 범위를 결정하는 것이 명백하게 개별 국가의 자율적 주권의 문제라는 사실이 반드시 확인되어야 하고, 이에 대해서 어떠한 외부적 압력도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점이 동의되어야 한다.
3. 의약품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인 강제실시권이 보장되어야 하며, 이에 대한 외부의 압력이 존재해서는 안된다.
강제 실시란 특허권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특허발명을 타인이 실시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것을 말하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특허권을 제한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도구이다. TRIPs 협정 31조는, 국가적 비상상태나 공공의 비상업적 사용을 위한 특허발명의 강제 실시를 개별 국가 국내법에 마련할 수 있는 광범위한 재량권을 보장하고 있다.
브라질은 지난 8월 21일 넬피나비어(상품명 비라셉트, 판매자 로슈)에 대한 강제실시를 발표했다가 9월 1일 철회한 바 있다. 강제실시의 실시여부를 떠나서 이러한 조치는 브라질 내에서 판매되는 비라셉트의 가격을 추가적으로 40% 인하했으며, 이것은 미국 가격의 30% 수준이다. 브라질의 국가 AIDS 프로그램 재정 전체에서 비라셉트 약물 하나가 차지하는 비율은 28%에 달하고 있었다. 주목할 것은 브라질은 90년대 중반부터 국가 AIDS 프로그램을 시행하여 모든 AIDS환자에게 무상으로 AIDS약물을 공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조치로 더욱 많은 환자들이 더욱 질좋은 AIDS치료와 약물들을 무상으로 공급받게 될 것이다.
브라질의 강제실시 예는 이 조항이 공공보건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조항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번 TRIPs 이사회에서는 협정 내의 어떤 규정도 각국의 강제실시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어야 하며, 강제실시와 관련된 어떠한 외부적 압력도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 동의되어야 한다.
특히 미국은 최근 군용고글과 견인차같은 비필수적인 물품들까지 강제실시하면서 태국의 ddI 등 필수적인 AIDS약물 강제실시에 대해서는 무역제재를 가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기반이 이번 TRIPs 이사회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4. 모든 국가들이 강제실시로부터 공공적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수입을 위한 강제실시가 허용되어야 한다.
강제실시를 통해 실시되는 일반약이 그 나라 안에서만 생산되어야 한다면 앞서 언급한 스와질랜드와 같은 작은 나라들은 이 조항에 의해 아무런 이익도 얻을 수 없다. 인도, 중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독일, 미국과 같은 큰 나라들만 강제실시를 할 수 있고, 보츠와나나 니카라구아와 같은 작은 나라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다면 공평하지 않다.
강제실시를 통한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의약품에 대한 특허권이 도입되지 않은 나라들, 특히 인도에서 생산되는 플루코나졸(항진균제)의 가격은 1정 당 75센트로서 오리지널약인 화이자 제품(14-25 달러 정도)의 최대 1/33에 이른다. 최근 우리나라 국감자료에서 보험약제비 중 2위를 차지한 탁솔(성분명 파크리탁셀, 생산자 BMS)의 보험약가는 30 mg 주사약 당 21만9천7백8십원으로 인도의 한 회사에 의해 생산되는 일반약 파크리탁셀(2달러 10센트)의 약 81배이다.
외채와 빈곤으로 허덕이는 국가들이 이러한 이익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이를 통해서 무상으로 공급되는 약물의 범위를 확대하고 치료할 수 있는 환자의 수를 확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이 작은 나라들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TRIPs 협정 31조에서는 강제실시된 약물이 주로 국내적(predominantly domestic)인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TRIPs 협정에 대한 이번 논의가 목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수입을 위해 외국의 생산자에게 강제실시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 확인되어야 한다.
5. TRIPs이사회에서의 논의가 각국 정부의 공공보건에 대한 책임을 면제하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번 논의는 세계적으로 의약품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지속적인 과정이 일부가 되어야 함과 동시에, 국내적으로 의약품에 대한 평등한 접근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시초적 계기가 되어야 한다.
최근의 글리벡 논란에서, 그 본질적인 문제는 세계에서 글리벡을 생산하는 회사가 하나밖에 없다는 독점적 특허에 있겠지만, 협상과정에 있어서 민중의 건강을 책임지지 못하는 보건복지부의 무능력함이 더욱 부각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목도하였다.
보건복지부는 최초에 만성골수성백혈병에 사용하는 다른 약제들의 평균가격인 약 11,000원을 제시하였다가, 혁신약이라는 이유로 우리나라에는 규정도 없는 1.5배를 곱하였다가,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가장 약값이 비싼 스위스와 미국(이 자료는 나중에 제외됐다)의 약가 자료를 가지고 약 18,000원의 가격을 책정하였다. 마지막으로 노바티스와의 협상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자, 25,000원이라는 가격을 수용하면서 만성기 환자를 보험적용대상에서 제외하여 정부의 보험재정부담을 환자들에게 전가하였다.
TRIPs이사회에서의 논의를 통해 각국 민중의 건강을 개선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하더라도, 각국 정부가 자국 내에서 구조적 노력을 지속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글리벡 등의 약가 문제가 유럽에서는 일어나지 않음에도 미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나는 이유는 약값에 대한 본인부담율이 높아서 가격에 의해 직접적으로 접근성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즉, 허울뿐인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문제인 것이다. 의약품이 모든 사람에게 접근가능하기 위해서 핵심적인 것은, 특히 세계최대의 민간성과 본인부담율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보장성을 확대하는 것이다.
한편, 글리벡에 대한 강제실시를 준비하던 주관단체들은 강제실시 신청용 양식마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또한 글리벡과 관련된 특허는 물질특허와, 글리벡이 속하는 약물 카테고리 전체에 대한 특허, 그리고 이 카테고리에 속하는 약물들을 다른 항암제와 함께 투여하는 것에 대한 특허, 글리벡을 개발하는 실험 과정 하나하나에 대한 특허 등 아주 많아서 그 규모를 완전히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재 한국에서는 강제실시가 사문화된 조항이므로 실제로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어떠한 제도적 장치도 없으며, 한 약물에 대한 강제실시를 위해 특허 하나하나를 특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제도적 절차들을 개선하여 실질적으로 의약품을 강제실시하고, 이를 통해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이 어느 누구도 침해받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구조적 토대를 형성해나가려는 노력을 한국 정부와 특히 보건복지부는 해나가야만 한다.

2001년 9월 18일
투자협정·WTO반대국민행동
(주관:보건의료단체연합/공유지적재산권모임 IP-Left/사회진보를 위한 민주연대/진보네트워크센터/천주교대안경제연대/ 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 (이상 가나다 순))

2001-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