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월간네트워커

내가 바로 빅브라더

By 2005/02/03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칼럼

윤태곤

가본지 오래 돼서 여탕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웬만한 찜질방이나 사우나의 남자 탈의실에는 ‘CCTV 설치 감시 중’이라는 문구가 떡하니 붙어있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그 자리는 보통 ‘상법 xx조에 의거해 카운터에 맡기지 않은 귀중품은 책임지지 않습니다’라는 안내문이 차지하고 있었다.

백화점 여자 화장실에서 몰래 카메라가 발견됐다던가, 갈등 끝에 인터넷 성인사이트에 가입해서 ‘어쩌구 저쩌구 몰카’란 제목을 가진 영상을 숨죽이며 보고 있는데 갑자기 자기가 주연배우로 나타나 열연하는 걸 보고 황당해서 경찰에 신고를 했다는 뉴스도 심심찮게 나오곤 하는지라 처음에는 ‘CCTV설치 감시중’ 이란 당당한 문구가 상당히 찝찝했다.

그런데 요샌 그냥 그러려니 싶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주위 지인들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벗은 몸매에 대해 특별한 자부심을 느끼는 것도 아니고 노출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몰래 카메라(아! 촬영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으니 몰래카메라가 아닌가?)에 대해 왜 특별한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는 것일까?

집 앞에 주차해 놓은 차에 누가 자꾸 해코지를 하길래 참다못해 몰래 CCTV를 설치했더니 평소에 사이좋게 지내던 옆 집 사람이 범인이더라는 이야기부터, 분실 사건이 끊이지 않은 어떤 대학도서관에서 학생들이 학교측에 CCTV설치를 요구하고 나섰다더라, 경찰이 강남구에서부터 시범적으로 설치하기 시작한 방범용 CCTV로 절도범을 잡았고 ‘일부’ 시민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효과와 주민반응이 폭발적이라 CCTV설치를 대폭확대하기로 결정했다는 뉴스들도 이젠 클리쉐(cliche)가 되버렸다.

이런 저런 빅브라더의 결정판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왔다. 수십명으로 치밀하게 구성된 학생조직이 휴대전화기를 이용해서 수능 부정행위를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땅에 떨어진 도덕성에 대한 개탄에서부터 허술한 시험감독에 대한 문제제기까지 갖가지 진단들이 횡행할 때 혜성과 같이 해결사가 등장했으니 바로 이동통신회사들이 그것이었다.

자기네 통신망이 수능부정에 이용됐다는 도의적 책임감 때문인지 아니면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통신회사들은 ‘수사는 걱정마라! 우리가 문자메시지를 다 보관하고 있었다’며 나섰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은 바로 경찰. 12월 6일 경찰은 ‘숫자’ 메시지 26만건을 재분류해 1천2백66명을, 2만7백3건의 ‘문자+숫자’ 메시지를 분석해 359명의 수능부정 의혹 대상자를 선별해 확인작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숫자에서부터 ‘언어, 수리’ 같은 단어나 ‘가, 나, 짝, 홀’과 같은 문자 및 ‘?. !’ 등 특수문자가 포함된 메시지는 애초에 다 조사했다니 입이 쩍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경찰의 무차별적인 문자메시지 수색 앞에서 ‘통신비밀보호법이나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은 뭐죠? 저기 전기통신사업법이라는 것도 있던데’하고 볼멘소리 해봤자 물정모르는 사람으로 찍히기 딱 십상이다. 통신회사의 적극 협조 덕에 그나마 부정행위자들을 잡았으니 감사장이라도 줘야 한다는 소리 안 들으면 다행이다.

예전엔 어떤 나쁜 빅브라더가 나를 감시하고 통제하고 있으니 그 자를 찾아서 저항하면 되겠거니 하고 생각했었다. 근데 이건 뭐 알고보니 너와 내가 빅브라더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통제와 감시가 안전을 보장한다. 질서와 안전을 바라는 나는 범죄자가 아니라 범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감시 강화에 소극적으로나마 동의한다. 목욕탕 사장부터 통신회사, 경찰까지 기다렸다는 듯이 ‘안전을 위해 감시를 강화해줄게’ 하고 친절히 나선다. 누가 그랬다더라? ‘국가보안법이 뭐 어때서? 그거 때문에 불편한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있냐? 빨갱이들이나 불편하지.’

 

 

2005-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