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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보호법이 걸어온 길

By 2004/12/06 10월 25th, 2016 No Comments

표지이야기

지음

개인정보보호법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사태 이후다. NEIS는 국가가 학생들의 개인정보를 동의도 거치지 않은 채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로 작성, 배포, 활용하는 시스템으로서 정보인권의 문제가 처음으로 전사회적으로 이슈화된 사건이었다. NEIS는 근거 법률도, 규제 법률도, 예방 장치, 사회적 합의틀도 전무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시민사회단체안이 있기까지

NEIS 사태 이후 시민사회단체들은 개인의 정보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포괄적인 법률과 전담 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고 프라이버시법제정을위한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를 구성하고 개인정보보호법의 제정을 위한 활동을 진행해왔다. 여기에는 진보네트워크센터, 함께하는시민행동, 지문날인반대연대, 문화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가 참여하고 있다.

연석회의는 외국의 사례들을 검토하고 국내 현실을 고려한 끝에 2년여만에 ‘개인정보보호법 인권시민사회단체안’을 작성했고 올해 5월에 공청회를 가졌다. 그리고 이 안을 입법화하기 위해서 민주노동당과 협의를 거친 결과, 올해 9월 24일에는 노회찬 의원 주최로 국회에서 ‘개인정보보호를위한기본법(가)’ 입법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기에 이르렀다.

부처이기주의로 삐걱거리는 정부안

세계적으로도 정보인권이 이슈화되고 개인정보보호법과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보편화되어 있는데다 시민사회단체들의 요구가 거세지자, 정부에서도 더 이상 방관할 수만은 없었는지 2003년 10월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이하 혁신위)가 개인정보보호법의 제정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방침은 부처이기주의로 인해서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혁신위의 발표 얼마 후 행정자치부가 자기 부처 산하에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를 두는 내용으로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을 입법예고했고, 지난 5월 19일에는 정보통신부가 역시 자기 부처 산하에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두는 것을 골자로 ‘민간부문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을 입법예고했다. 개인정보보호법의 전체 윤곽이 나오기도 전에 각 부처가 자기 영역 확보에 나선 것이다.

주장의 차이, 입장의 차이

언뜻 보기에는 모든 사람들이 개인정보보호법의 필요성과 원칙에 동의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수차례의 공청회와 정부혁신위의 4차례에 걸친 ‘개인정보보호 정책포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시민사회단체들과 정부 각 부처들의 입장이 드러났고 많은 부분에서 충돌했다. 충돌의 핵심에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위상 문제가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권위있고 독립적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시종일관 주장했고, 행자부와 정통부는 유명무실한 지금의 산하 조직의 유지를 집요하게 고수했다. 정부혁신위는 기본적으로는 독립적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지지한다고 밝혔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개인정보보호법 정부안의 발표를 넉 달 가까이나 미루고 있다.

이렇게 엇갈리는 주장의 배경에는 입장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개인의 정보인권이 정부와 기업의 권력에 의해서 침해당하고 있다고 보고, 정부와 기업을 감시하고 감독하기 위해서는 이로부터 독립적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반해 공공영역의 개인정보보호법을 주관하겠다고 주장하는 행자부는 스스로가 공공기관이며, 기업들의 개인정보 침해를 감독하겠다는 정통부는 지금까지 정보통신산업 육성을 위해 정보인권을 뒷전으로 미뤄 두었던 것이다.

이제 다음달 초에는 연석회의와 민주노동당의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고, 정부혁신위가 작업해왔던 정부안도 발표될 예정이다. 국회에서는 이 두 법안을 병합 심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개인정보보호법이 걸어온 험난한 길은 아름다운 병합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아직 갈 길이 멀다.

 

 

2004-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