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네트워커주민등록번호주민등록제도

주민등록번호에 대한 헌법적 고찰

By 2004/11/15 2월 13th, 2019 No Comments

정책제언

김일환

국가권력의 민주적 성립이나 법적 통제가 불충분했던 박정희정권 하에서 추진된 주민등록, 주민등록증, 주민등록번호, 지문날인 그 자체가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음에도, 그동안 헌법상 거의 다루지 못한 상태에서 이것들은 정보사회에서 새로운 기본권침해의 중요수단으로 부각, 활용되고 있다. 결국 주민등록번호에 근거한 개인정보의 공동활용 등의 위헌여부를 검토하려면, 주민등록법의 위헌여부에 관한 판단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주민등록법의 제정 및 개정과정

어느 나라든지 그 국민이나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주민에 관해 출생, 혼인, 가족상황 등에 관해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일정한 사항을 반드시 등록하도록 하는 제도로는 신분등록제도와 거주자등록제도가 있다. 이중에서 신분등록제도는 개인의 출생, 혼인, 이혼, 사망, 가족상황 등을 등록하도록 해, 개인의 혈연적 신분관계를 등록하는 제도이다. 이에 반해 거주자등록제도는 어떤 사람의 거주관계를 등록, 공증하는 제도다. 우리나라의 호적제도가 바로 신분등록제도에 해당하며, 주민등록제도가 거주자등록제도에 속한다. 이와 관련해 1962년 5월 10일 법률 제1067호로 주민등록법이 공포 실시됨으로써, 기류법(寄留法)에 의한 기류제도(寄留制度)가 폐지되고 처음으로 주민등록제도가 실시됐다. 이 법에 따라 모든 국민에게 이름, 성별, 생년월일, 주소, 본적을 시·읍·면에 등록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리고 주민등록번호는 주민등록증을 최초로 발급할 때 대상자 전원에게 부여됐는데, 초기 주민등록번호는 12자리로 구성됐으나 1975년 주민등록법 시행령과 시행규칙개정으로 인하여 생년월일, 성별, 지역을 표시하는 13자리 숫자체제로 바뀌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정보사회에서 헌법 제37조 제2항의 의미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가-특히 행정부-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려면, 입법부가 만든 법률에 의하거나 이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곧 ①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②입법부가 만든 법률에 의하거나 근거하는 ③국가의 기본권제한만이 허용됨을 말한다. 그리고 정보사회에서 사생활자유가 더욱더 광범위하게 침해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정보기술의 발전이 인간에 대해 갖고 있는 위험성에 관한 토론을 배경으로 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는 자신에게 부여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당연히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조사·처리·저장해야만 하지만, 과제수행에 필요한 것 이상의 정보를 수집·전달·저장해서는 안 된다. 결국 정보자기결정권을 바탕으로 개인은 국가가 자기 자신에 관한 정보를 조사, 처리해도 되는지를 결정,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따라서 국가를 통한 개인관련정보의 모든 조사, 저장, 전달은 정보자기결정권의 제한이므로, 이에 관한 법적 근거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선행돼야 정보조사와 정보처리는 관련자가 명시적으로 목적이 구체화된 정보처리에 동의하거나, 중요한 공공복리에 따라 제정된 법률에 근거한 경우에만 허용됨을 알 수 있다.

주민등록번호의 위헌여부검토

오늘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행하는 수많은 기능들에 비추어 볼 때, 호적제도와는 별도로 거주관계를 등록하게 하는 주민등록법에 규정된 주민등록제도 자체가 위헌이라고는 할 수 없다. 주민등록법에 규정된 목적은 헌법상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 그렇다면 주민등록법상 규정된 “주민의 거주관계 등 파악”이라는 목적의 달성을 위해, 위의 법에 채택된 방법이 효과적이고 적절한지를 살펴보아야만 한다. 그런데 주민등록증은 주민등록법에 의해, 관내에 합법적인 주민등록을 했다는 증명서인 동시에 그 관내의 주민임을 증명하는 신분증명서의 성격을 갖는다. 그렇다면 “주민의 거주관계 등 파악”을 위해 개인에게 일정 사항을 신고하도록 하는 ‘주민등록제도’와 모든 국민 개개인에게 고유번호까지 부여된 증명서를 발급하는 ‘주민등록증제도’는 전혀 다르게 취급돼야만 하는 사항이다. 따라서 주민등록제도를 인정한다고 해서 반드시 해당 주민이나 국민에게 주민등록증을 발급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현행 주민등록법상 개인의 주민등록사항을 기재하기 위해 세대별, 개인별 주민등록표를 작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제7조), 이를 통해 현행 주민등록법은 주민의 거주관계 등의 파악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주민에게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는 주민관리사무에 관한 법률이 아니라, 국가에 의한 인적 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사무에 관한 법률로 바뀌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주민등록증 또한 개인의 주민등록을 확인하기 위한 증명서라기보다 국가신분확인증명서가 돼 버렸다. 결국 전국민거주지등록제도, 전국민고유번호제도, 전국민고유신분증제도를 통하여, 우리나라의 주민등록법은 주민의 거주관계를 파악하는 법이 아니라 개인에 관해 종합적으로 기록하는 법으로 바뀐 것이다.

정보사회에서 주민등록번호가 갖는 새로운 위험성

다음으로 주민의 거주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민에 관한 일정사항을 기록하면서, 주민등록법 시행규칙 제2조에 따라 모든 국민에게 “생년월일, 성별, 지역 등을 표시할 수 있는 13자리의 숫자로 작성”된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주민등록법상 기록되는 모든 개인정보의 처리는 물론 국가기관에 의해 작성되는 모든 개인관련정보의 처리 또한 주민등록번호에 근거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한 개인을 구별시키는 주민등록번호만 알면, 관련개인정보가 정보사회에서 연결, 결합, 통합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는 쉽게 상상이 갈 것이다. 결국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개인확인번호는 공적, 사적 영역에서 국민을 확인하고 식별하기 위한 기초적인 자료로 활용되기 때문에, 단순히 주민등록번호를 숫자조합정도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경우는 전자주민카드는 고사하고 개개인에게 고유번호를 부여하려는 것 자체에 격렬하게 반대했던 것이다.

게다가 정보사회의 발전으로 인해, 우리는 어디에서든지 컴퓨터에 접속하여 네트워크에 연결될 수 있는 환경, 곧 ‘유비쿼터스’시대로 진화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주민등록번호를 매개로 우리의 사생활이 얼마나 침해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게다가 주민등록번호로 인해 전자정부가 급속도로 발전, 진행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주민등록번호를 개개인을 식별할 수 없는 번호로 바꾼다던가, 적어도 특정한 목적을 위해 행정내부에서만 사용되는 것으로 한정해야만 한다. 그리고 주민등록번호를 곧장 없앨 수 없다면, 첨단인증기술의 개발 및 전자서명의 이용을 촉진하기 위한 법제도적 정비방안을 강구해야만 한다.

주민등록법에 관한 전반적, 체계적 검토 필요

그동안 남북대치상황에 따른 필요성과 더불어 몇십년동안 주민등록제도 및 주민등록증제도가 나름대로 시행돼서 이제 정착됐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당하지 않은 법의 시행으로 인해 생긴 관행은 결코 헌법이 보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더군다나 관행 때문에 위헌인 법률이 헌법합치적 법률이 되는 것 또한 아니다. 결국 어떤 법률의 위헌여부는 헌법에 따라 규범적으로 판단돼야만 한다. 결국 주민의 거주관계파악에 관해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포괄적인 개인의 기록을 해놓음으로써, 외국과 달리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전자주민카드를 만들 수 있는 엄청난 물적 토대가 이미 확보돼 있었던 것이다. 곧 국민 개개인에게 고유한 코드번호가 부여된 주민등록증이 발급된 상태에서, 국가권력 또한 (헌)법적으로 충분히 통제되지 않았던 우리나라가 정보사회로 진입하면서, 국가는 기존의 잘못된 관행에 의존해 손쉽게 국민에 관한 기록들을 전자화, 정보화할 수 있었다. 반면에, 외국은 법치국가원칙에 의해 어느 정도 국가권력이 (헌)법적으로 통제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에게 이런 코드번호를 부여하는 것조차 많은 반대에 부딪혔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현행 주민등록법에 관한 전반적이고 체계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2004-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