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법월간네트워커주민등록제도

개인정보보호기본법 ‘물 건너’ 가나?

By 2004/10/20 10월 25th, 2016 No Comments

Cyber Law

류신환

개인정보보호기본법’ 제정이 미뤄지고 있다. 개인정보보호기본법 제정을 담당하는 정부부처인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이하 ‘분권위’) 관계자는 “애초 새로운 개인정보 보호체계의 근간이 될 ‘개인정보보호기본법’ 제정안을 지난달 말까지 내놓고, 이달 초에 공청회를 열어 법안을 확정할 예정이었으나, 내부 사정과 부처간의 협의 문제로 늦춰지고 있다”면서 일러도 9월초는 돼야 기본법의 뼈대가 갖춰질 거라고 말했다(<인터넷한겨례> 2004. 8. 19).

애초 지난해 10월 분권위에서 개인정보보호기본법 제정을 천명하고 나설 때만 해도 현재 산재해 있는 분야별 특별법들의 체계 및 제·개정을 포괄하는 큰 틀의 로드맵에 기초한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실질적인 통합법의 제정과 통합감독기구의 설치가 기대됐었다. 그런데 현재까지 진행된 상황을 보면 이런 기대가 다시 물건너 간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거둘 수 없다.

행자부·정통부, 밥그릇 챙기기 급급

행자부(이하 행자부)와 정통부(이하 정통부)는 분권위의 개인정보기본법 제정작업이 진행중인 와중에서, 조급하게 졸속적인 법률안을 각자 상정해 기본법 제정논의에 혼선을 초래하면서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하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됐다. 행자부는 이미 기존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의 개정안을 내놓은 상태이고, 정통부 역시 ‘민간부문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에 대한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행자부의 개정안에 대해서는 그동안 관련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제기를 한 바 있으나, 이런 문제제기의 내용은 거의 반영되지 않은 채 개인정보와 관련한 행자부의 권한 강화만을 주 내용으로 하여 개정안이 마련됐다. 또한 정통부의 ‘민간부문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은 ‘다른 법률에 규정이 있는 경우’와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그 적용을 제외함으로써 민간부문의 일반법의 기능을 할 것을 미리 포기하고 있다. 즉 민간의 전 영역에 거쳐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고 있는 개인정보 침해 유형에 대응하겠다는 이 법의 제정 취지가 무색해진 것이다. 결국 이 법은 기존에 정통부가 담당해왔던 정보통신망의 개인정보보호 업무를 컴퓨터 처리정보와 CCTV 등의 영역으로 다소 확장한 것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독립적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 필수

특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독립적인 보호기구의 문제다. 국민의 자기정보통제권을 제대로 보장하려면 독립적이면서도 전문적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필수적이다. 미국을 제외한 영국, 프랑스, 호주 등 많은 국가들이 민간과 공공 영역을 분리하지 않고, 독립적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행자부는 위 개정안을 통하여 기존에 설치되어 있던 개인정보호호심의위원회를 강화한다고는 했지만, 공공부분의 개인정보 침해자의 입장에 있는 행자부의 관리 하에 있는 이 기구가 과연 얼마나 적극적으로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행위를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또한 정통부는 민간부분의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사무를 관장하려고 하는데, 기술적, 관리적 측면에서의 전문성을 가진 정통부가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라는 사법적, 기본권적 영역을 관할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정통부는 스팸 메일이나 휴대폰사업자의 해지자 정보 사건 등에서 소비자의 개인정보 보호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 오지 않았던가. 관련 산업의 육성을 주요 업무로 하는 부처로서 민간 부문의 개인정보 보호업무를 담당하기에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는 셈이다.

결국 ‘국가’, ‘기업’, ‘사용자’로부터 독립한 기구만이 ‘국민’, ‘소비자’, ‘노동자’에 대한 인권과 기본권 침해, 민주주의 침해의 가능성을 사전에 예방하고, 사후적으로 감독할 수 있다. 독립적인 보호기구의 필요성을 계속하여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분권위, 중심 잡기를…

그런데 분권위 관계자는 “행자부와 정통부가 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들이 만든 법을 무시할 수도 없다”며, “일단은 타협하는 수준에서 기본법을 만든 뒤, 시행을 하면서 보완하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 이번에 기본법 제정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면 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할 지 모를 일이다. 제발 지금이라도 분권위가 중심을 잡고 제대로 된 법제정 작업에 나서주기를 바랄 뿐이다.

주민등록번호 수집·이용 제한하는 법개정 서둘러야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들의 제·개정 논의와 관련하여 반드시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 주민등록법의 개정문제이다. 현행 주민등록법이 규정하고 있는 주민등록번호는 번호 자체에 생년월일, 성별, 최초주민등록신고지역, 당일 신고순위 등이 그대로 확인되는 조합체계로 이루어져 있어, 그 자체로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특히 온라인으로 유통되는 개인정보의 연결고리가 주민등록번호가 됨에 따라, 인터넷 사업자들은 서비스 제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 여부를 떠나서 너나 할 것 없이 이용자들에게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수집된 주민등록번호의 유출로 인한 피해는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에 따르면,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피해 신고건수는 지난 6월까지 1만2천148건에 이르고 있다. 이는 지난 2001년 한해 접수된 1만1천164건보다도 많은 건수로 주민등록번호 유출로 인한 피해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또한 출생과 동시에 정해지는 생물학적 성이 변경 불가능한 주민등록번호에 고정됨으로써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등 성적 소수자들의 고통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주민등록번호 뒷부분 첫째자리 숫자가 성별에 따라, 부여되는 것과 관련해서도 성차별적 인식과 성역할의 고정을 유발한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즉, 최근 다산인권센터 등 각 시민단체에서는 남성이 상위순번, 여성이 하위순번으로 배정돼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는 형태의 성역할 규정이 이루어지고 있어 이는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평등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여성에 대한 복지와 권익향상, 인간의 존엄성 등 일체의 권리를 상시적으로 침해하고 있는 것이라는 이유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집단 진정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주민등록번호의 수집 및 이용을 제한하는 법개정을 서둘러야 할 것이고, 나아가 주민등록제도 자체의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2004-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