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5월 26일 행정안전부는 주민등록번호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주민등록번호를 신규 부여·변경하는 경우, 생년월일·성별 외에 지역표시번호를 폐지하고 임의번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주민등록번호 부여체계를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2. 현행 주민등록번호는 생년월일, 성별, 지역번호, 등록순서, 검증번호를 포함한 13자리이며, 행정안전부의 개정안이 통과되면 주민등록번호를 신규 부여받거나 변경하는 경우 생년월일과 성별번호 7자리 이후 6자리를 임의번호로 부여받게 된다.
하지만 6자리만을 임의번호로 부여하는 개정안으로는 주민등록번호에 지나치게 많은 신상정보가 담겨 개인정보 유출 피해 및 차별을 유발한다는 점, 주민등록번호 자체가 모든 개인정보의 만능열쇠 연결자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 등 현 주민등록번호 등록체계의 문제점을 전혀 해결할 수 없다.
3. 주민등록번호 부여체계가 갖고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주민등록번호를 전면 임의번호로 부여하도록 함은 물론, 주민등록번호를 극히 제한된 공공행정업무에만 활용해 범용성을 줄이고, 목적별로 식별번호를 따로 사용해야 한다. 이에 무상의료운동본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등 5개 시민사회단체는 붙임과 같이 의견을 제출한다.
2020.07.02
무상의료운동본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 붙임1. 「주민등록번호 시행규칙 개정령(안)」에 대한 의견서 1부. 끝
의견서
「주민등록번호 시행규칙 개정령(안)」에 대한 의견서
주민등록번호 지역번호 폐지(안 제2조 및 제2조의 2 개정, 제3조 삭제)
주민등록번호를 신규 부여·변경하는 경우, 생년월일·성별 외에 지역표시번호를 폐지하고 임의번호를 부여하도록 함.
1. 성별·연령차별은 존치, 전면 임의번호화 필요
현행법에 따르면 주민등록번호는 생년월일, 성별, 지역번호, 등록순서, 검증번호를 포함한 13자리임. 이미 지나치게 많은 개인정보가 주민등록번호 부여체계에 포함돼 있어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여러 차례 있어 왔음. 대다수의 선진국들은 한국처럼 개인식별번호에 민감한 개인정보를 포함하지 않고 무작위 난수체계로 부여하고 있음.
정부는 이번 주민등록번호 부여체계의 개편 이유에 대해 개인정보 유출 및 지역차별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밝힌 바 있음. 그러나 이번 개편안은 생년월일과 성별번호를 그대로 남겨둔 채 6자리만을 임의번호화할 뿐이라, 지역차별은 해소될 지 모르겠지만 성별이분법적 시각 및 성별차별, 연령차별은 그대로 남게 되어 반쪽짜리임. 무엇보다 개인정보 피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주민등록번호를 임의번호로 부여한다고 하면서 생년월일과 성별 번호는 그대로 남겨두어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음. 특히 생년월일과 성별 번호는 출생시 고정되기 때문에 개인을 손쉽게 식별할 수 있는 정보로서, 이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피해가 계속될 가능성이 있음.
헌법재판소는 2015년 헌법불합치 결정(2013헌바68)을 통해 주민등록번호 유출 또는 오남용으로 인한 피해가 우려되는 경우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확인하였음. 이 결정에 따라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돼 생명이나 신체, 재산 등 피해를 입거나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처럼 주민등록번호 유출로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사람의 경우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하면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할 수 있도록 하고 있음.
그런데 성폭력, 가정폭력, 아동폭력 피해자 등은 가해자가 이미 피해자의 생년월일과 성별 정보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 해당 피해자들이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한다고 해도 가해자가 알고 있을 수 있는 생년월일과 성별 정보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상태라 여전히 신상 노출의 위험을 감당하고 있음. 국민이 출생시부터 사망시까지 사용할 수밖에 없는 식별번호에 생년월일과 성별을 계속해서 노출시킨다면 개인정보 유출 방지 및 피해자 보호라는 취지는 달성되기 어려움. 주민등록번호를 신상을 알아볼 수 있는 어떤 정보도 없이 전면 임의번호로 구성해야만 유출 피해를 방지하고, 유출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에 부합하는 개정이라고 할 수 있음.
또한 현행법에선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돼 생명이나 신체, 재산 등 피해를 입거나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처럼 주민등록번호 유출로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사람의 경우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하면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할 수 있도록 하고 있음. 주민등록번호로 인해 식별되어 피해를 입을 우려를 낮추기 위해선 피해자 중 일부가 아니라 변경을 원하는 이들은 변경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역시 필요함.
2. 전면개편 못 하면 사회적 비용 더 발생할 것
이번 개정안은 생년월일, 성별번호는 그대로 표시한다는 점에서 성별이분법적 시선 고착화, 차별 유지, 개인신상 노출 등 인권침해적 문제가 기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오직 행정관리의 효율성만을 생각한 안임. 행정안전부는 주민등록번호 전면 임의번호화가 어려운 이유에 대해 의료, 금융시스템 등 공공·민간 분야에서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생년월일과 성별을 관리하고 있어 주민등록번호를 전면 개편할 경우 약 11조원의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음.
그러나 행정안전부가 개편 비용이 많이 든다고 변명하는 것은 자가당착에 불과함. 주민등록번호 법정주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여전히 여러 영역에서 주민등록번호가 광범하게 사용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임. 주민등록번호 법정주의를 엄격하게 적용해 공공·민간영역에서의 주민등록번호 수집 및 활용을 최소화해야 함. 아울러 주민등록번호를 영역별 목적별 번호로 변경하는 데 드는 비용은 번호체계 개편과 상관없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일 뿐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차후 또다시 개편 비용을 부담하게 됨. 지역번호 삭제로 인해 기존 시스템에 대한 일정한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가능하면 한번에 개편하는게 효율적일 수 있음. 그리고 비용 부담이 문제라면 변경을 원하는 사람과 신생아부터 새로운 규칙을 적용하는 등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방법도 있음.
문제는 근본적인 개편을 하겠다는 방향성임. 일정한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인권침해적 문제가 없는 안으로 주민등록번호 부여체계를 개편할 필요성이 크다고 보여짐.
또한 지금 근본적으로 개편하지 않으면 문제가 있는 시스템을 계속 유지하는 데 따르는 인권 침해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음.
3. 궁극적으로 주민등록번호 범용성 완화 필요
헌법재판소의 주민등록법 제7조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에서도 주민등록번호는 개인정보를 통합하는 연결자(key data)이기에 주민등록번호의 관리나 이용에 대한 제한의 필요성이 크다고 지적한 바 있음.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이미 2014년 주민등록번호제도 개선권고를 통해 ▲임의번호로 구성된 새로운 주민등록번호체계를 채택하고 ▲주민등록번호 변경절차를 마련하며 ▲주민등록번호의 목적 외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주민등록법을 개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음.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적에 따르면 주민등록번호는 주민관리용 식별기능 외에도 모든 영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표준 식별기능, 특정 문서나 기관에서 본인여부를 증명할 수 있는 인증기능, 여러가지 신상 정보에 바로 접근할 수 있는 연결기능, 생년월일, 성별, 출신 등 본인의 특성을 담고있는 묘사기능을 지니고 있음. 또한 주민등록번호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고 평생동안 변하지 않는 고유식별번호이기에 개인정보를 수집/보관/이용/분석하는 데 최적의 연결자로 기능하는 것이 가능함. 이러한 특성을 지닌 주민등록번호는 정보화 사회에 이르러 모든 개인정보에 바로 연결될 수 있는 만능열쇠가 되었음.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개인을 식별해낸 뒤에는 연계된 시스템들을 이용해 성명, 주소 등 그와 연결된 수많은 개인정보를 파악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함. 이 때문에 최근 일어난 소위 ‘n번방’ 사건에서도 가해자가 피해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손에 넣은 뒤 알아낸 여러가지 신상정보를 이용해 피해자를 협박하는 일이 발생한 바 있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주민등록번호를 임의번호로 구성하고 변경을 허용하는 것은 물론, 주민등록번호를 공공·민간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영역에서 범용하고 있는 문제를 바로잡아야 할 필요성이 있음.
정부 역시 이를 고려해 2014년부터 법령으로 정해진 경우에만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할 수 있도록 주민등록번호 수집 법정주의를 도입한 바 있지만 여전히 한국의 주민등록번호는 공공·민간영역 전반에서 본인확인을 위한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음. 인권위가 이미 같은 권고문에서 지나치게 많은 법령에서 주민등록번호 수집을 허용하고 있으니 법령 정비를 통해 이를 최소화하고 민간영역에서의 허용은 불가피한 경우에만 한정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으니 이를 따라 법령 재정비가 반드시 필요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