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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자 굴리기에 대한 생각

By 2003/10/06 10월 29th, 2016 No Comments

박석준의 컴퓨터 앞의 건강

박석준

여든이 넘으신 우리 아버님께서는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는 나를 보면 늘 “그놈의 컴퓨터 없애 버려야 해” 하신다. 컴퓨터 때문에 오히려 공부도 안되고 건강도 나빠진다는 논리시다. 지당하신 말씀이지만 하루도 컴퓨터를 떠나서 살 수 없는 현실이다 보니 그런 말씀을 들어도 꿀 먹은 벙어리다.
한번은 실제로 아버님과 대결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전산 입력되어 있는 <동의보감> 파일을 갖고 검색을 하고 아버님께서는 책으로 된 <동의보감>을 갖고 항목 찾기를 했는데 결과는 내가졌다. 컴퓨터는 모든 것이 이차원적인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책은 삼차원의 입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 항목이 실려 있는 곳의 위치와 내용이 관계로 그려지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현실에서의 항목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다른 조건들과의 관계를 갖고 존재하게 되며, 항목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다른 조건과 다양한 관계를 갖고 나에게 입력되어 있기 때문에, 손에 익은 책일 경우 컴퓨터로 찾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찾을 수 있다. 또 그 내용이 갖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도, 그 항목이 실려 있는 책의 여러 조건과 더불어 입력되어 있기 때문에 보다 풍부한 현실적 연관을 고려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책을 보다 조는 동안에 엉뚱한 줄이 그어져 있기도 하고 심지어 침을 흘린 흔적마저 남아있게 된다. 이러한 다른 조건과의 관계가 그 내용을 더욱 인상 깊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그 책을 볼 때마다 그 책과 나의 과거의 관계가 환기되기 때문에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책을 읽다가 생각난 글을 써넣기도 하고(이렇게 글이 쓰여 있거나 손때가 묻어 전해진 책을 수택본이라고 한다. 보관 상태나 누구의 수택본이냐에 따라 깨끗하게 보관된 책보다 더 귀한 가치가 있다) 밑줄을 긋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책에는 그 책과 나와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책과 컴퓨터의 차이를 말하는 것은 이런 차이가 눈의 건강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한의학에서는 책 같은 것은 오래 보면 눈을 상한다고 말한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병이 된다. 책을 오래 본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긴 시간 동안 본다는 측면도 있지만 또 다른 측면으로는 책과 연관된 다른 관계를 배제하고 본다는 측면이 포함된다. 오래 보는 것도 나쁘지만 경주용 말의 눈가리개처럼 다른 관계를 배제한 채 한 곳만을 보는 것은 더욱 나쁘다. <동의보감>에서 눈을 상하게 되는 경우 중 오래 보는 것과 연관해서 지적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밤에 작은 글씨로 된 책을 읽거나, 바둑이나 장기를 쉬지 않고 두거나, 여러 해 동안 글을 계속 베끼거나, 세밀하게 조각하는 일을 하거나, 달빛 아래에서 책을 읽거나 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당시는 컴퓨터가 없었으므로 당연히 컴퓨터에 대해 지적하지 않았지만 허준이 지금 살아 있다면 무엇보다도 컴퓨터의 피해를 입에 침을 물고 강조했을 터이다.
오래 보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곳을 오래 보면 눈을 상한다. 눈동자가 이리저리 돌아가게 만들어진 이유는 잘 돌리라고 그런 것이다. 잠시 눈을 돌려 다른 곳을 보자. 지금 이것만이 아니라 이것과 다른 것과의 연관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