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네트워커인터넷거버넌스

인터넷의 정치적 이슈들이란?

By 2004/06/08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심층연재

박윤정

목차

1부. 국제 인터넷의 정치적 상황
-인터넷의 정치적 이슈들이란?
-인터넷 관리의 변천사
-UN 주도의 인터넷관리 논의 시작
2부. 국내 인터넷의 정치적 이슈

인터넷은 조직에서 전개되는 수직적 인간관계를 수평적으로 완화하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 자체는 기술적으로 수직적 관계에 의해서만 운영되는 자가당착에 빠져있다. 현재 인터넷 네트워크 디자인은 네트워크상에서 커뮤니케이션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중앙 제어(Control)를 필요로 하며, 중앙제어는 웹사이트에 부과되는 인터넷주소를 통해 행사된다.

인터넷주소 관리의 상당부분이 기술적 결정이 아닌 정치적 결정이 되는 이유는 이러한 중앙제어 디자인에서 연유한다. 인터넷의 정치적 결정은 인터넷 탄생과 맞물린 역사적 배경을 이유로 미국 상무부 산하의 NTIA(National Telecommunications and Information Administration )가 관리하고 있다. 즉 국제적인 인터넷주소 관리가 국제공동관할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초 절대권력으로 정의되는 미 행정부에 독점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1998년 선정한 ICANN(Internet Corporation for Assigned Names and Numbers) 이라는 민간기구를 이용, 국제 인터넷주소 관리를 수행하고 있다. ICANN은 캘리포니아에 소재한 비영리법인막?미 상무부의 절대적 영향력 하에 놓여있다. ICANN과 상무부의 계약은 1998년 이후 4번에 걸쳐 연장되었으며, 2003년의 4번째 계약은 2006년에 만기될 예정이다.

즉, 미 상무부는 이론상 ICANN 대신 다른 기구를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의 계약 당사자로 지정할 수 있는 권력을 소유하고 있다. ICANN은 2004년 4월 9일, 9번째 ICANN 현황보고서를 미 상무부에 제출했다. 미의회는 자국의 행정기구라고 인식하는 ICANN의 운영에 관한 청문회를 몇 차례 개최한 바 있다.

국가코드 관리권한(.kp, .so, .ly, .iq)

미 상무부와 계약관계에 있는 ICANN산하 IANA가 국가코드관리를 관장한다. ICANN은 미 상무부와 계약에 의거, 1998년 이래 국가코드관리자, ICANN, 해당 국가코드 정부, 미 상무부에 의한 4자간의 국가코드와 계약관계를 성사시켜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지난 5년간, ICANN은 244개의 국가코드중 약 15개의 국가코드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미국의 절대적 우방으로 자부하는 호주와 일본이 각각 첫 번째와 두 번째 국가코드계약당사국이 되었으며, 국가코드관리 주체에 대한 정치적 문제를 안고 있었던 아시아,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들이 그 뒤를 이었다. 만약 미국 정부의 의도대로 전세계의 국가코드가 ICANN을 매개로 미국 행정부와 계약관계에 놓인다면, 미국은 사이버공간에서도 절대권력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런데 이는 그리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인터넷상의 국가코드관리가 미국의 현실정치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많은 정부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과 정치적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아랍권의 반발은 2003년 12월에 열린 UN 정보화사회 정상회의에서도 구체화된 바 있다.

미국이 악의 축으로 지정한 북한과 이라크의 예가 그 대표적인 경우로, 두 국가는 아직도 인터넷의 국가코드 관리권한을 이양 받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국가코드인 .KP가 아직 할당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며, 이라크의 국가코드인 .IQ는 미국 택사스에 소재한 Alani Corporation이라는 회사가 관리권한을 소유하고 있다.

미국의 적대국중 하나인 리비아도 최근 며칠간 국가코드 .LY가 인터넷상에서 사라지는 소동이 있었으며, 3년전 미국이 분쟁에 개입했던 소말리아의 국가코드 .SO도 며칠간 연결이 되지 않았다.

우리의 1.25인터넷 대란을 상기하면 한 나라의 국가코드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의 위력을 다른 나라의 절대적 통제하에 방치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지 알 수 있다.

최상위 다국어 도메인 생성여부

한글 키워드, 한글 도메인 주소가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한 지도 벌써 5년의 시간이 흘렀다. 한글 키워드는 기존의 영어도메인에 대응하는 데이터베이스 서비스이고, ‘한국인터넷정보센터(KRNIC)’에서 제공하는 한글도메인도 여전히 영어반, 한글반의 반 쪽짜리 주소라 이용자들이 보기도, 쓰기도 영 어색하기만 하다. 한글로 된 온전한 도메인 주소가 왜 안되는 걸까?

많은 이용자들이 이런 의문을 한 번 쯤은 가져봤을 것이다. 기술적으로 안되는 것이라고 치부해 버린 성미급한 이용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최상위 다국어 도메인이 안되는 것이 단순한 기술적 결정일까?

올해 3월 로마에서 열린 ICANN 이사회에서도 정치적 이유로 인한 최상위다국어도메인의 지연에 대한 우려가 표명된 바 있다. 미국 상무부의 최종 승인 없이는 어떤 최상위 도메인도 추가될 수 없는 상황에서, 다국어 도메인은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과 같은 비영어권의 현안이지 미국 상무부의 우선 순위는 아닌 것이다.

이는 2004-2005년 ICANN 재정에서도 잘 반영되고 있다. 연간 예산은 총 천 5백만 달러로써, 5백 6십만 달러(직원), 3백 만달러(용역 서비스), 2백 30만 달러(이사진 회의 및 기타 여행) 1백 5십만 달러(행정지원) 등이 책정되어 있는데 비해 단 8만 달러만이 다국어 도메인관련 활동으로 되어 있다.

일반 최상위 도메인

최상위 도메인의 생성은 ICANN 이사진의 결정을 미국 상무부가 승인함으로써 완료된다. 서류상으로는 ICANN의 합의를 미국 상무부가 수용하여 실행하는 구조이다. 이 규정에 의거해 2000년 7개의(.PRO, .NAME, .AERO, .COOP, .MUSEUM, .BIZ, .INFO) 새로운 일반 최상위 도메인의 도입이 결정된 바 있으며, 최근 또 다른 일반 최상위 도메인 도입을 위한 신청서를 접수했다.

그런데 이런 공식적인 일반 최상위 도메인 생성과정과 배치되는 .EU의 탄생과정은 ICANN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EU 생성논의는 미국정부와 EU사이에 4년여 간의 긴 협상 끝에 이른 최종적인 결정만 ICANN에 보고되었지, 실질적인 협상은 ICANN의 공식수순을 밟지 않았다. 이는 미 상무부의 승인을 받는 데 아무런 하자가 없었으며, ICANN이 미국 행정부의 산하기구라는 비아냥을 받았다.

일반 최상위 도메인의 또 하나의 일그러진 모습은 일반 최상위 도메인들의 운영주체와 이용자들의 범주문제다. 일반 최상위 도메인의 절대적 등록수를 보유하고 있는 1980년대 생성된 .COM, .NET, .ORG는 일반 이용자들에게 제공되나 절대적 우위를 자랑하는 미국의 Verisign(.COM과 .NET)과 새로운 주자로 부상한 미국의 Affilias(.ORG)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즉 14개의 일반 최상위 도메인의 운영주체 중 10개가 미국회사와 기관에 의해 운영되며, 4개가 유럽의 회사 및 기구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역시 80년대 생성된 .EDU, .GOV, .MIL은 미국의 이용자들에게만 제공되는 특수공간으로 설정되어 있어, 다른 나라의 이용자들로부터 미국도 .GOV, .US와 같이 국가코드를 활용해야 한다는 반발을 사고 있다.

시민사회의 역할

미국 정부는 적당한 시기가 오면 미국 정부 단독의 인터넷주소 관리체계로부터 국제사회 공동관리로의 이전을 약속하며 1998년 ICANN을 출범시켰다. 국제사회에 강조한 것은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상향식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과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이었다. 미국 정부의 결정으로, 기존 국제사회 의사결정권자인 정부들은 투표권을 받지 못했고, 정부의 정책 결정에 압력단체 역할을 하던 시민사회 단체들이 국제 의사결정 과정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이해 당사자로서 초대받는 유례없는 역사적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그런데 ICANN회의에 참여를 거듭할수록 시민사회 진영에서는 ICANN이 시민사회를 초청한 이유에 회의를 갖게된다. 진정한 시민사회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것이었다기보다는 ‘직접적 시민참여’를 강조, 시민사회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다른 나라 정부들이 국제 인터넷주소 관리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데, 이용하고 있다는 자각의식이 들기 시작했다. 지난 5-6년간 진정한 상향식 민주적 의사결정과 투명한 의사결정이라는 시지프스의 바위를 포기하지 않았던 시민사회의 한 진영에서는 시민사회가 미국정부를 정점으로하는 하향식 국제 인터넷 관리체계를 위한 시나리오를 실현시키는 지렛대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는지 되묻고 있다.

미국 정부는 ICANN이라는 민간기구의 의사결정 과정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상향식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다른 정부들의 역할은 자문기구로 실추시키는 한편, 소수의 시민사회를 전면 배치, 미국 및 다국적 기업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책으로 일관해 왔다. 국제사회에서 시민사회의 역할 확대에 급급해서, 미국을 인터넷의 경찰국가로 자리잡는 데 역할을 한 시민사회의 윤리적 책임의식도 거론될 기회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 장에서 인터넷의 중앙제어 책임을 담당하는 ICANN의 정치적 결정이 기술적 결정을 지배하는 현상들을 짚어 보았다. 다음 달에는 미국정부가 어떻게 인터넷관리의 주도권을 획득하는지 그 과정들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박윤정

2000 2001 ICANN 도메인네임정책기구 WG-Review 의장
2000 – 2002 .KR 주소위원회 위원
2001 – 2002 다국어도메인네임 컨소시엄(MINC) 사무국장
2000 – 2002 .KR 주소위원회 위원
2003 WSIS 시민사회 인터넷 거버넌스 그룹 공동발기인 및 공동의장

2004-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