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TRIPs)월간네트워커의약품특허

FTA는 의약품 접근권을 파괴한다{/}특허권 VS 의약품 접근권

By 2004/06/08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집중분석

권미란

제약자본은 WTO 무역관련 지적재산권협정(이하 TRIPS)을 통해 특허권 강화와 각국 특허제도의 통일을 이룸으로써 확실한 이윤창출의 수단을 보장받았다. 백혈병을 치료한다는 기적의 약 글리벡이 ‘환자의 생명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바티스라는 제약회사의 ‘돈벌이 수단’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글리벡에 대한 특허권을 가진 노바티스는 한달에 300만원 이상의 약값을 요구했다. 글리벡 문제는 백혈병 환자에게 생긴 우발적 해프닝이 아니라, 초국적 제약자본이 특허를 수단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예상된 결과였다. 마찬가지로 전 세계 수백 만 명의 에이즈환자 역시 몇몇 초국적 제약사의 특허권으로 인해 자신의 생계비보다 몇 배 혹은 몇 십배 비싼 약값을 지불할 수 없어 죽어간다. 의약품 특허권으로 인해 제약사는 비싼 약가와 독점권을 보장받는 대신, 하루 3만 7천 명 이상의 환자가 사망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 의약품 접근권을 차단하는 조치 포함

지난 몇 년간 세계곳곳의 환자와 민중은 ‘이윤이냐 생명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TRIPS 협정에서 의약품을 제외하라’, ‘의약품 특허권을 철폐하라’고 요구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TRIPS 협정에서 보장하고 있는 강제실시와 병행수입을 활용하여 의약품을 싸게 공급하기 위한 투쟁을 벌였다. 현재의 특허제도 하에서는 강제실시가 의약품 접근권을 위한 유일한 돌파구다. 그리고 공중보건을 위한 조치를 마련할 수 있는 국가 내에서의 자율성, 재량권을 요구했다. 그 결과 2001년 11월 WTO 각료회의는 ‘TRIPS 협정과 공중보건에 관한 도하 선언문’을 발표함으로써 건강권이 제약회사의 특허권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TRIPS 협정 중 그 어떠한 것도 WTO 회원국들이 각국의 공중보건과 관련된 조치들을 채택하는 것을 막을 수 없고”, “각 회원국은 강제실시를 허여할 권리가 있고, 강제실시가 허여되는 조건을 결정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하선언문에 포함된 내용을 완전히 무로 돌리고, 의약품 접근권을 위한 돌파
구를 전면 차단하는 조치들이 FTA를 통해 진행되고 있다. 미국은 선진국, 개도국을 막론하고 전 세계 모든 지역과 FTA를 체결하기 위해 공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미국이 체결하였거나 협상중인 FTA들은 공통적으로 미국법 혹은 미 국회에 제출되지도 않은 정책을 포함시켜 TRIPS 협정보다 더 강력한 지적재산권 보호를 요구하고 있다(TRIPS plus).

이는 20년이라는 특허보호기간에 더하여 3~5년의 보호기간을 확대하도록 요구한다. 특허출원 후 3~5년간 강제실시를 금지할 뿐만 아니라, 강제실시를 할 수 있는 조건을 TRIPS보다 더욱 엄격히 제한한다. 그리고 지적재산권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무와 다양한 보호, 특허범죄에 대한 민사, 형사처벌 강화를 요구한다. 즉,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환자가 사 먹을 수 있는 값싼 약을 공급하기 위한 어떤 방법도 마련할 수 없게 된다. 모잠비크, 짐바브웨,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태국 등 세계 곳곳에서 특허권으로 인해 값비싼 에이즈 치료제를 강제실시를 통해 국내에서 생산해 싸게 공급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협상중인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나 남아프리카관세동맹과의 FTA가 체결된다면, 수백 만 명의 에이즈환자들은 약을 두고도 죽어갈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브라질의 ‘에이즈무상프로그램’이나 ‘호주의약품급여제도’와 같이 국가 내에서 의약품을 더욱 싸게 혹은 무상으로 공급하기 위한 기존의 제도를 붕괴시킬 수 있는 효과를 가진다. 2004년 2월에 미국은 호주의약품급여제도를 미·호주 FTA 협상대상에 포함시켰다. 미 제약협회는 가장 싸고 가장 효과적인 의약품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는 ‘호주의약품급여제도’가 신약의 시장진입을 차단하고 지적재산권을 파괴한다고 주장했다. 호주 보건장관 토니 애보트는 “호주의약품급여제도는 무역이슈가 아니고 협상의 부분조차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지만, 호주 하워드 정부는 미 제약협회의 손을 들어주었다.

미 제약자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FTA

세계 의약품 시장에서 가장 큰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미국은 제약자본의 입장을 가장 잘 반영해왔다. 미국은 WTO 협상과정에서 지적재산권과 공중보건의 문제에 관하여 가장 비협조적이었고, 미통상법(스페셜301조)을 이용하여 지속적으로 50여개국의 의약품관련 제도와 정책을 감시하고 지적재산권을 강화시켜 왔다. 더 나아가 미국은 TRIPS나 식물변종의 보호를 위한 국제협약(UPOV)같은 기존의 다자주의 협정을 통합정리하고 세계지적재산기구(WIPO)의 새로운 협정과 같은 미래의 지적재산권 관련 협정에서 미국의 협상지위를 강화하도록 FTA를 활용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미 제약자본과 미 보험자본이 각국의 의료시장에서 제한없이 돈을 벌 수 있도록, TRIPS를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손쉽게 FTA를 통해 각 국의 특허법과 의약품, 의료 제도를 미국식으로 바꾸고 있다. 광범위하고 공세적인 미국의 FTA 협상은 그 체결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민중의 의약품 접근권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이 원하는 대로 FTA가 체결된다면 역사상 가장 강력한 특허권이 제약자본에게 보장되고 그만큼 우리의 건강은 제약자본에게 종속될 것이다. 무엇보다 의약품 접근권을 위한 돌파구가 전면 차단될 것이다. FTA는 약을 눈앞에 두고도 죽어가는 환자들을 위해 국가수준에서 혹은 사회적으로 책임지는 것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FTA는 TRIPS보다 훨씬 더 빠르고 깊숙하게 우리의 숨통을 죄어온다. 의약품 접근권 파괴하는 FTA를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

2004-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