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킷감청

[기고] ‘전지적 국가 시점’ 노리나

By 2016/03/21 4월 13th, 2018 No Comments

테러방지법 이어 사이버테러방지법까지 국정원 권한 독점 가속화
“공청회 한 번 없이 법안 밀어붙이기, 시민들의 역풍 몰아칠 것”

테러방지법과 사이버테러방지법은 ‘데칼코마니’다. 국가정보원의 권한을 강화하면서도 통제는 불가능하게 한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l 출처 : 한겨레신문사

지난해 4월18일. 서울 세월호 집회에서 100명이 연행됐다. 그런데 그중 최소 42명의 휴대전화가 압수됐다. 놀란 인권단체가 인터뷰를 해보니 경찰에게 휴대전화를 압수당한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묵비권을 행사했다는 것.

진술거부권 또는 묵비권은 피고인이나 피의자가 형사소송 중에 받는 신문 또는 질문에 대해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은 경찰이 피의자에게 알려야 하는 미란다 3대 원칙 중 하나다.

수사기관으로서는 체포된 연행자가 진술을 거부할 경우 매우 난감할 것이다. 피의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애를 쓸 것이다. 수사기관에 협조할 경우 정상이 참작될 거라고 설득하기도 했을 것이다. 번거롭지만 이것이 헌법이 국민에게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여 진술거부권을 국민의 기본적 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헌법 제12조 2항).

그러나 디지털 시대 경찰은 헌법에서 유래된 난감함을 굳이 감수할 필요가 없다. 피의자의 협조를 구할 필요도 없다. 다른 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냥, 휴대전화를 열어보면 되는 것이다. 휴대전화 속에는 다 담겨 있다. 집회 장소에 언제, 어떻게 왔는지. 누구와 함께 왔는지, 어떤 사람들과 친한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대통령을 싫어하는지. 서울 경찰도 묵비권을 행사하는 연행자들의 휴대전화를 압수한 뒤 사후 영장을 받아 그 내용을 모조리 털었다. 사진을 보았고, 통화 내역을 보았고, 문자를 보았고, 카카오톡을 보았고, 페이스북을 보았다. 헌법이 작은 기계 때문에 무력해지는 시대이다.

휴대전화 하나에 무력해지는 헌법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놀라운 사이버 세상을 선사했다. 우리는 늘 접속돼 있으며, 모든 일상생활이 휴대전화에 고스란히 담긴다. 이 작은 기계는 ‘나’라는 인간의 역사 그 자체가 되었다. 남녀노소 갑남을녀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의 구석구석에 발자취를 남기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 정보 민주주의의 한 측면일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의 거의 모든 것을 기록하는 사이버공간의 등장은 이제 역사상 가장 빈틈없는 국가 감시의 가능성도 열었다.

2014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이 휴대전화에 대해 매우 중요한 판결을 내렸다. 경찰이 누군가를 체포할 때 그 사람의 휴대전화 내용을 영장 없이 열어본 것이 위헌이라는 거였다. 판결문에서 이 기계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사람에 대한 수색은 물리적 실체물들에만 국한됐고 따라서 그 프라이버시에 대한 침해는 일반적으로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휴대전화는 엄청난 저장 용량을 가지고 있어서 수백만 페이지의 문서와 수천 장의 사진, 수백 장의 비디오를 저장할 수 있다. 이는 프라이버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 디지털 시대 이전에는 피체포자 수색시 일기와 같이 굉장히 개인적인 물품이 때때로 우연히 발견되곤 했지만,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휴대전화는 지니고 다니지 않는 사람이 드물고,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90% 이상의 미국 성인들이 그들 삶의 거의 모든 면에 관한 디지털 기록을 자신들의 몸에 지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휴대전화는 이제 과거에 집을 가장 철저하게 수색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노출시키며, 과거 집에서 발견될 수 있었던 수많은 민감한 정보뿐만 아니라 그 정보들이 전례 없이 매우 광범위한 집합체의 형태로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다.”(라일리 사건)

감시 역량 만끽하는 국가

사이버공간에서 프라이버시권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 오히려 국가는 과거보다 강화된 감시 역량을 만끽할 참인 것 같다. 미국 정보기관 전 직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감시를 폭로했을 때 세계는 그 규모에 놀랐다. 전세계 인터넷과 통신망을 대상으로 거의 모든 통신 내역이 수집됐고, 믿고 사용해왔던 인터넷 서비스들이 대량 감시에 협조하고 있었으며, 사이버공간에서 비밀이란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은 과거보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디지털 정보는 용량이 작고 검색이 용이하다. 스노든의 폭로에 따르면 국가안보국의 모토는 “모두 다 가져가서”(Collect it All) 종래는 “모두 다 아는 것”(Know it All)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갑작스런 테러방지법 논란이 우리 사회를 휩쓸고 지나갔다. 테러방지법은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대통령 ‘관심 법안’이었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IS(이슬람국가)가 테러방지법 없는 것 알아버렸다”고 국회를 비난하고, 새해 대국민담화와 국회 국정연설에서도 목소리를 높이며 다른 모든 법보다 우선하여 테러방지법 통과를 요구해왔다. 여당도 선거법을 볼모로 테러방지법 통과를 압박했다.

청와대와 여당의 압력을 받은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안을 직권상정하는 순간, 이 법은 통과될 수순만이 남아 있었다. 지금이 과연 국가비상사태인지, 선거를 앞두고 이 법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에 혹시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는지 수많은 의문이 생겼지만 “테러를 막겠다는데” 토를 달 수 없어 보였다.

합리적 이유 없이 민간 인터넷의 사이버 안전 관리 권한이 모두 국정원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는 놀랍게도 열정적이었다. 국가정보원이 핵심 문제였다. 테러방지법에 의하면 국정원은 제한 없이 누군가의 민감한 정보를 포함한 개인정보, 위치추적, 대테러조사와 추적권을 사용할 수 있다. ‘테러위험인물’만 대상으로 한다지만 정말 그럴지, 법원의 허가라거나 국회의 심의, 심지어 서면 요청 등 아무런 통제 장치가 없다.

모든 비밀정보기관이 국민의 프라이버시권과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만 우리 국정원은 최근 몇 년간 특히 국민의 신뢰를 잃은 상태였다. 수많은 도청과 국내 정치 공작으로 악명을 떨쳐왔고, 바로 직전 대통령 선거까지 개입했다. 인터넷에서 야당 정치인이나 제주해군기지 반대운동을 비난하는 조악한 댓글을 달고, 국회에서 국정원개혁특위가 열리는 바로 그 순간에도 이탈리아에서 사온 해킹 프로그램을 이용해 누군가의 스마트폰을 열어보고 있었다.

두 법안 추진 과정 ‘데칼코마니’

나에게는 필리버스터 그 자체보다 필리버스터에 대한 대중의 호응이 더 놀라왔다. 시민단체 긴급서명에 일주일 만에 35만의 서명이 쌓였다. 국회 정문 앞에서 밤낮없이 시민 필리버스터가 이어졌다.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는 본회의장은 매일 시민 방청객들로 가득 찼다. 온라인 행동은 헤아릴 수 없었다. 수많은 의견글, 만화, 패러디, 가상 시나리오, 긴급 사이트가 만들어졌고, 공유됐다. 마침내 테러방지법에 대한 반대 여론이 찬성 여론을 넘어섰다고 한다.

그것은 권리 선언이었다. ‘만에 하나’ 국정원이 나를 조사하고 추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싫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테러방지법이 테러범에게만 해당될 것이라고, 국가가 제 맘대로 그어버린 선을 넘어서는 문제제기였다. 국정원이라는 가슴 떨리는 대상을 상대로, 위축되는 몸가짐을 곧추세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신문·방송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언론이 테러방지법을 지지하는 여론을 과대 대표하는 상황이었다.

테러방지법이 지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사이버테러방지법안이 논란거리다. 어째 진행이 비슷하다. 대통령이 야단하고 국정원발 북한 위협 소식이 언론을 도배한다. 여당은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주문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발이 만만치 않다. 사이버테러방지법안이 모든 사람의 사이버공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사이버테러방지법은 새로운 사이버 안전 대책을 담고 있지 않다. 다만 그간 미래창조과학부에서 담당해왔던 민간 분야 사이버 안전을 앞으로 국정원이 지휘·감독하겠다는 것이다. 국정원의 감독을 받게 될 민간 책임기관에는 통신사, 포털, 쇼핑몰 등 국민이 널리 사용하는 ‘주요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가 포함된다.

어떤 감독을 받게 될까? 국정원장 산하의 상설기구인 국가사이버안전센터는 민·관·군 합동대응팀을 두고 이들에게 인력 파견과 장비 지원을 요구할 수 있다. 바이러스, 해킹 등 사이버테러로 인한 사고가 발생하면 국정원이 이들 민간기관에 대해 사고를 조사하거나 보고받을 수 있고 특정 조치를 요구할 수도 있다. 사이버테러 정보를 탐지·분석하기 위해 민간 인터넷망, 소프트웨어의 ‘취약점’ 또한 국정원에 모두 공유된다. 공유하지 않는 기관은 형사처벌한다.

한국의 개인정보 해킹 사고와 유출 규모는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 그만큼 사이버 안전 제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른 속도로 도입돼왔다. 국정원은 ‘국가사이버안전관리규정’에 따라 국가 차원의 사이버 안전 업무를 담당하고, 민간의 사이버 안전은 여러 법률에 의해 미래창조과학부에서 관리·감독해왔다. 그런데 합리적 이유 없이 민간 인터넷의 사이버 안전 관리 권한이 모두 국정원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럴 만한 타당성이 있는지 국민은 충분히 설명을 듣지 못했다.

정권의 조급함이 진짜 비상사태

국정원의 권한 오·남용을 보아온 국민 입장에서는 걱정이 생긴다. 국정원은 지금도 국가보안법 수사를 위해 패킷 감청 기법으로 인터넷 회선을 감청하고 있다. 이 법이 제정되면 일일이 영장을 받을 필요가 없어질지 모른다. 법문상으로는 사이버테러 정보를 탐지한다며 국정원이 아무 때나 인터넷 회선을 열어볼 수 있는데 그것을 통제하거나 감독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

테러방지법과 사이버테러방지법은 문제의 반복이다. 정보기관 권한 남용에 대한 모든 우려는 타당하다.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새로운 문제이다. 디지털 시대 사이버 감시는 과거보다 더 많은 감시를 뜻한다. 그런데 자꾸만 직권상정해야 한단다. 국민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설명하고 토론하는 공청회 한번 없다. 이 조급함이야말로 국가비상사태가 아닐까. 프라이버시에 대한 시민의 요구는 점점 거세질 것이다. 권력에 눈이 어두워 이것을 한낱 ‘괴담’으로 치부한다면 틀림없이 역풍이 몰아칠 수밖에 없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 이 글은 2016. 3. 16. 한겨레21(1103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 원문 바로가기(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4133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