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밀

[기고] 테러방지법은 ‘국정원’ 강화법

By 2016/03/18 4월 13th, 2018 No Comments

국정원에 무한권력 부여

무엇이든 훔쳐볼 수 있다

여드레, 192시간에 걸친 필리버스터 끝에 결국 지난 3월2일 밤, 테러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 해 말 파리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 이후, 정부와 새누리당은 테러방지법 및 사이버테러방지법을 핵심 법안으로 올려놓았고, 마치 누군가 뒤에서 조종한 듯 여러 언론들은 테러방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대통령은 한국에서 테러가 발생하면 야당의 책임이라고 협박했다. 감시는 공포를 먹고 자란다고 했던가?

그러나 한국은 이미 테러 방지를 위한 법령과 기구를 촘촘히 마련하고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자신이 국가테러대책회의의 의장인지 모르고 있었던 것만 보아도, 이들의 관심은 테러 대응이 아니다. 현행 법제도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테러방지법은 도대체 무엇을 목적으로 만들려 하는 것일까.

국정원에 준 다섯 가지 선물 ‘막강한 정보수집권’

이번에 통과된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에 다섯 가지 막강한 정보수집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첫째, 지금까지도 국정원은 ‘수사나 국가안전보장을 위해’ 영장 없이도 개인정보를 제공 받을 수 있었는데, 이에 더해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조사를 위해 개인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때 개인정보는 사상, 신념, 노동조합, 정당의 가입 탈퇴, 정치적 견해, 건강, 성생활, DNA 정보 등 민감 정보를 포함한다.

둘째, 개인의 위치정보도 제공 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는 긴급 구조를 위해 긴급구조관서 및 경찰서에만 제공되었다. 통신사의 위치정보, 와이파이, GPS 등을 통해 24시간 내 위치정보는 어딘가에 기록되며, 이를 통해 사무실, 내가 다니는 교회, 자주 가는 식당, 자주 만나는 사람 등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다.

셋째, 금융정보분석원장으로부터 금융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국정원은 그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넷째, 이미 국정원은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상당한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 감청을 할 수 있었는데, 이에 더해 ‘대테러활동에 필요한 경우’에도 감청할 수 있게 되었다.

다섯째, 국정원은 대테러활동에 필요한 정보나 자료를 수집하기 위하여 대테러조사 및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추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대테러조사’는 ‘대테러활동에 필요한 정보나 자료를 수집’하기 위한 제반 활동을 망라하며, ‘추적’이 무엇인지는 정의조차 되어있지 않다.

이런 막강한 권한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그 대상이 제한적이니 ‘일반 국민’은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테러방지법에서 규정하는 ‘테러위험인물’은 매우 포괄적으로 해석될 수 있고, 그 선정이나 해제 역시 국정원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존할 뿐이다. 예를 들어, 용산 참사 철거민이나 혹은 누구든 과격한 집회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테러위험인물’로 지정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여전히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사이버테러방지법’은 국정원이 민간망을 사찰하고 감시할 권한까지 부여하고 있다.

이제 사이버 보안은 필수

가장 큰 문제는 이미 국정원이 통제되지 않는 권력이고, 그 권력을 남용하여 수시로 국민 사찰과 정치 개입을 해 왔다는 사실이다. 오래된 기억으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이미 지난 2012년 댓글 공작을 통한 대선 개입, 간첩단 사건의 증거 조작, 2015년 해킹 프로그램 사용 논란 등 국정원을 둘러싼 의혹은 최근까지 계속된다. 테러방지법 통과 직후, 국정원이 한 시민단체 대표의 통신 자료를 들여다본 것이 확인되기도 했다.

지난 해 해킹팀 사태 당시, 감독 기관인 국회 정보위원회조차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을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사용했는지 결국 밝혀내지 못했다. 즉 국정원은 사회적인 감독과 통제에서 벗어난 조직이라는 것이다. 통제되지 않는 권력은 결국 자신의 권력을 남용할 수밖에 없고, 이는 민주주의 원리에 벗어난다. 새누리당은 “국정원을 믿어달라”고 하지만, 믿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국내 정보 및 해외 정보 수집, 수사, 기획, 총괄 업무까지 맡고 있는 국정원을 해외 정보 전담부처로 구조적으로 분리하고, 또한 국회의 감독 권한을 실질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언젠가 테러방지법도 폐지하고 국정원도 개혁해야 한다. 그러나 일단 나 자신과 조직의 보안을 강화하는데 노력할 필요가 있다. 테러방지법 통과 이후, ‘텔레그램’으로 망명하는 사람이 다시 늘고 있다고 한다. 굳이 테러방지법이 아니더라도 이미 카카오톡 압수수색과 감청, 스마트폰 압수수색 등으로 나의 사이버 보안을 강화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스마트폰을 기기 암호화하고, 비밀번호도 어려운 것으로 바꾸고, 암호화된 통신을 해야 한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지난 해 <디지털 보안 가이드>(http://guide.jinbo.net/digital-security)를 발간한 바 있다. 갈수록 고도화되는 감시와 사찰의 시대, 사이버 보안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오병일 ㅣ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 이 글은 <변혁정치>에 기고한 글입니다.
☞ 원문 바로가기(http://rp.jinbo.net/change/22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