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수사기관 통신수사 권한 오남용 심각한 수준
‘사이버사찰금지법’ 입법 필요성 다시 한번 확인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 21일 늦은 오후, 2014년 하반기 통신비밀자료 제공 현황을 공개하였다. 지난해 하반기는 카카오톡 압수수색 논란이 크게 일었을 무렵으로, 발표된 통계자료는 정보·수사기관이 통신수사권한을 크게 오남용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1. 먼저 미래부 발표일이 매우 늦어진 데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미래부는 이번 현황자료 공개일로 언론보도가 휴지기에 들어서는 연휴 직전의 목요일 늦은 오후를 선택하였다. 통신비밀자료 제공 현황은 <통신비밀보호업무처리지침>에 따라 모든 통신사업자가 매반기 종료후 30일 이내 제출한 현황을 집계한 것이다. 매년 2월이면 충분히 집계가 이루어졌어야 마땅한데, 이렇게 발표일이 늦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특히 올해 현황 공개일은 사상 최고로 늦어졌다. 현황자료를 국민 앞에 공개하는 정부의 발표일이 타당한 이유 없이 매년 들쭉날쭉하면서 점차 늦어진다는 사실은 통계의 신빙성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통계 자료를 마사지하는 것도 아닌 다음에야 무엇 때문에 단순 집계자료 발표일이 자꾸만 늦어지는지 정부는 밝혀야 할 것이다. 더불어 정부가 앞으로는 어떠한 꼼수 없이, 통신비밀자료 제공 집계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즉시 그 현황을 국민과 국회 앞에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촉구한다.
참고로, 상반기 발표일을 기준으로 그간의 현황 공개일은 다음과 같이 점차 늦어지는 추세이다.
△ 3월 : 2006년(29일), 2007년(20일)
△ 4월 : 2009년(7일), 2010년(2일), 2012년(27일)
△ 5월 : 2008년(1일), 2011년(4일), 2013년(9일), 2014년(19일)
2. 2014년 상반기와 하반기를 합쳐 지난해 감청은 문서건수(592->570건)로나 전화번호/아이디수(6,032->5,846개)로나 전해보다 소폭 줄었다(각 3%대). 이에 따라 국가정보원의 점유율 또한 예년에 비해 다소 줄어들었지만, 94.6%(5,531개)로 여전히 과도하다.
더구나 이 현황자료는 통신사업자를 통한 간접감청만을 집계하였을 뿐, 국가정보원이 자체적인 감청 장비를 이용해 직접 집행하는 감청 현황은 제외되었다는 점에서 그 전체적인 규모가 얼마에 이를지 짐작하기 어렵다. 일반적인 범죄수사를 담당하지 않는 국가정보원이 이렇게 많은 감청을 집행하면서 제대로 된 통제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국민의 우려를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와중에 경찰의 감청이 대폭 상승한 것이 눈에 띈다. 경찰은 2012년 139개, 2013년에 96개를 감청하였으나, 2014년에는 무려 301개의 전화번호/아이디에 대해 감청을 실시하여 3배 이상 급증하였다. 경찰의 감청이 급증할 수 밖에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밝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3. 통신사실확인자료 역시 문서건수(265,859->259,184건)로나 전화번호/아이디수(16,114,668->10,288,492개)로나 전해보다 줄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개의 문서로 수십개의 전화번호를 쓸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2013년 61개, 2014년 40개), 저인망식으로 쓸어가는 ‘기지국 수사’의 폐해가 계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4. 충격적인 부분은 통신자료 제공 현황이다. 전기통신사업법에 의해 영장없이 제공되는 이름, 아이디, 주민등록번호 등을 일컫는 통신자료가 2014년 12,967,456개가 제공된 것으로 드러났으며, 이는 사상 최고이다.
전화번호/아이디수를 기준으로 2012년에는 7,879,588개, 2013년에는 9,574,659개의 전화번호/아이디가 제공되는 등 계속 증가추세였던 통신자료제공이 또다시 일년새 1.4배 급증한 것이다. 포털의 무영장 통신자료 제공이 2012년 11월경부터 중단되고 압수수색으로 대체되었음을 생각하면 이 수치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그 원인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이 기관별 통계이다. 검찰에서 1백4십만 개(2013년 2,858,991개->2014년 4,267,625개), 경찰에서 2백 14만개(2013년 6,230,617개->2014년 8,371,613개)씩 통신자료 제공요구가 늘어난 것이다.
2015년 우리나라 추계인구가 5천6십2만 명이고 경제활동인구가 2012년 12월 기준으로 2천6백2십7만 명이다. 이와 비교하면 2014년 갓난아기부터 노인까지 모든 국민 4명당 1명, 경제활동인구 2명당 1명에 대한 통신자료를 수사기관이 가져갔다는 이야기이다. 그만큼 수사상 필요성이 급증한 것일까? 아니면 영장없이 제공될 수 있다는 허점을 이용해 수사기관의 오남용이 극에 달하고 있는 것일까?
5. 매년의 현황 자료에서 우리의 통신비밀이 점점더 위기에 몰리고 있음을 보게 된다. 심각한 위기에 처한 통신비밀보호와 정보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우선 국가정보원의 감청 권한이 오남용되지 않도록 법원과 국회의 감청 통제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또한 오남용되지 않도록 기지국 수사와 같은 저인망식 제공을 제한해야 하며, 통신자료 제공은 즉각 법원의 통제 하에 둘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아 2,910명의 시민들이 국회에 사이버사찰금지법을 입법청원한 바 있다. 그 문제의식을 이제는 국회가 적극 수용할 때이다.
2015년 5월 25일
사이버사찰긴급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