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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인권 미디어] 백인욱 『인터넷 빨간책』{/}단행본 『인터넷 빨간책』

By 2015/02/05 5월 2nd, 2018 No Comments

인터넷 빨간책

백인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사무실에 앉아서 오늘도 전화를 받는다. 사장님들은 십년 전 노동조합 파업소식이 잊혀지길 바라고, 이제 공무원이 된 이는 십년 전 자신이 연명한 파병반대 성명이 잊혀지길 바란다. 과거라면 휘발되었을 텍스트들과 기억들이 검색로봇과 빅데이터 알고리즘에 붙들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인터넷 게시물들은 역사적인 표현물이자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저주받을 기록성이 잊혀질 권리를 호출하고 있다. 때로 나는, 우리가 잊고 싶어하는 것이 인터넷의 꿈 그 자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에는 여전히 세상을 바꿀 힘이 있는가? 온라인으로부터 우리는 혁명을 꿈꾸었다. 20년 전 서점과 학회에는 정보사회에 대한 급진적이고 낭만적인 전망들이 유행으로 불었었다. 1998년 신자유주의와 IMF 파고가 들이닥칠 무렵 출범한 진보넷도 그런 기대의 한 끝자락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인터넷 게시판은 어떤가.

체제 비판의 상상력이 사라진 오프라인에서 저항적 온라인이 싹틀 리 만무하다. 아니, 저항은 독설로만 남아 세상을 절망으로 몰아가고 있다. 진영별로 쪼개진 커뮤니티는 서로에 대한 혐오를 끊임없이 발산하고 있다. 특히 여성, 이주민, 성소수자, 진보에 대한 반지성적 혐오는 한때 온라인 하위문화였으나 일베 이후 공공연해졌다. 오늘날 인터넷에는 속물적 교양과 파편적 지식들이 판을 친다. 국정원 댓글 알바에도 손쉽게 낚이는 낮은 성찰성. 천대받는 인터넷 잉여들에게는 무한한 탐욕과 끝없는 소비가 권장되지만, 그들은 소비할 돈이 없으므로 절망스러운 혐오를 생산할 뿐이다. 자유로왔던 인터넷 이용자를 자신들이 구획한 왕국에서 신민으로 다스리려는 디지털 왕국들만이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백욱인의 <인터넷 빨간책>은 인터넷의 이런 세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고 있다. 현재의 인터넷 세상은 세계를 바꾸려고 하기는커녕 세계를 설명하는 것도 포기한 채 단지 세상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가축의 왕국’이 되었다는 것이다. 인터넷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똥바다 같은 현재의 인터넷에는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디어 역사를 돌이켜 보면 새로운 미디어는 출현 초창기에는 자유를 확장하다가 대중화 단계를 지나면 점차 소수 지배자들의 독점물로 전락했다… 유토피아로 태어난 인터넷 세상도 점점 그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인터넷 유토피아의 백일몽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곧 다가오리라.”

이 책은 십계명으로부터 시작해 아큐정전, 심슨, 똥바다가와 오적, 유토피아, 군주론을 패러디하고, 잡스와의 인터뷰를 거쳐 인터넷 이용자 혁명 선언에 이르는 스물 세 편의 이야기를 담았다. 폭로와 비틀기를 통해 저자가 결국 놓치지 않는 것은 인터넷의 여전한 가능성이다. “인터넷 왕국에서는 나눔과 독점, 자유와 통제 간의 싸움이 여전히 진행 중”(89쪽)인데, 우리는 여전히 나눔과 자유의 가치를 생각해봐야 하는것이다. 물론 구체적인 똥바다 천지에서 이 유려한 패러디조차 막연한 ‘말’똥으로 그칠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인터넷 사람들, 인터넷을 지배하는 인터넷 왕국들, 그리고 인터넷 지배 장치에 대한 성찰은 이 시대 꼭 필요한 덕목임이 분명하다.

by 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