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거버넌스

‘2014 이스탄불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 참관기

By 2014/09/22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오병일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 양 대륙에 걸쳐있는 도시,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9월 2일 ~ 5일 제9회 세계 인터넷거버넌스포럼(Internet Governance Forum, IGF)이 개최되었다. 2005년에 개최된 정보사회세계정상회의 결과물인 튀니스 어젠더(Tunis Agenda)의 결의에 의해 만들어진 IGF는 2006년 아테네 IGF를 시작으로 올해 아홉 번째 행사가 개최된 것인데, 인터넷과 관련한 제반 이슈에 대해 다양한 이해관계자(multi-stakeholder) 사이의 정책 대화를 위한 공간이다.

IGF는 다양한 주제의 토론회 백화점이다. 메인 홀에서 열리는 메인 세션과 함께, 여러 개의 방에서 10개 정도의 워크샵이 동시에 진행된다. 인터넷 관련 이슈에 관심이 많다면 어떤 워크샵을 들어야 할 지 고민이 될 정도로 새로운 배움과 국제적 토론을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IGF에서 조약이나 지침 등의 형태로 현실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결과물을 생산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혹자는 IGF를 ‘토크쇼’일 뿐이라고 비판하기도 했고, 지난 2012년 ‘IGF 개선을 위한 워킹그룹’은 IGF가 좀 더 ‘구체적인 결과물’을 낼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여전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IGF에의 참여 열기를 보면, 이제 어느 정도 세계적 인터넷거버넌스를 위한 플랫폼으로서 그 존재 의의를 인정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IGF 행사전경 >

인터넷거버넌스의 미래를 둘러싼 지속적인 논란

최근 몇 년간 인터넷거버넌스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 아직 명확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지난 2003년과 2005년에 개최된 정보사회세계정상회의의 미결 과제이기도 하다. 세계 인터넷거버넌스의 대상이 무엇인지(예를 들어, 그 자체로 세계적인 조정을 필요로 하는 도메인 네임이나 IP 주소와 관련된 문제에 한정되는 것인지, 아니면 내용 규제나 망중립성과 같은 문제도 포함하는 것인지), 인터넷거버넌스에서 정부나 다른 이해관계자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지, 세계 인터넷거버넌스를 위한 적절한 체제나 공간은 무엇인지(예를 들어, 인터넷 공공정책을 위한 중앙집중화된 UN 기구가 필요한 것인지, 혹은 분산된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등 많은 문제들이 얽혀있다.

지난 2012년 말 국제통신연합(ITU)의 국제정보통신세계회의(WCIT)에서 ITU의 인터넷 규제권한을 둘러싼 대립, 2013년 UN 내의 ‘강화된 협력 워킹그룹(WG on enhanced cooperation)’ 논의 등에서 그러한 갈등이 표출되었고, 이 때문에 올해 4월 23-24일,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개최된 넷문디알(인터넷거버넌스의 미래를 위한 세계 멀티스테이크홀더 회의) 회의에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넷문디알과 IGF


<NETmundial> source: netmundial

넷문디알(NETmundial) 회의의 의제는 인터넷거버넌스의 원칙과 로드맵, 크게 두 가지 였는데, 넷문디알 선언문은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합의한 최초의 선언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구체적인 향후 로드맵(특히, 제도적 체제와 관련하여)을 도출해내지는 못했다. 다만, 기존 인터넷거버넌스 관련 기구들이 관련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확대할 것과 함께, IGF의 강화 필요성을 다시 한번 지적하였다. 이번 이스탄불 IGF 회의는 일정하게 넷문디알 회의의 후속 논의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우선 IGF 공식행사 전 날(DAY 0)에는 고위급 회의 등 다양한 비공식 행사가 개최되는데, 그 하나로 넷문디알에 대한 평가와 향후 방향에 대한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이 날 행사에서는 넷문디알 회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참여자들이 패널로 참석하여 그 의미와 한계를 짚었으며,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도 공개되었다. 또한, <넷문디알을 넘어 : 세계 인터넷거버넌스 생태계의 제도적 개선을 위한 로드맵(Beyond NETmundial: The Roadmap for Institutional Improvements to the Global Internet Governance Ecosystem)>이라는 책이 이날 공식 출판되었다. (전자책으로 누구나 다운받을 수 있다.)

망중립성 메인 세션

메인 세션 주제 중 하나는 ‘망중립성’이었는데, 이 역시 넷문디알 선언문의 권고에 따른 것이다. 넷문디알 회의에서 가장 첨예했던 주제 중 하나가 망중립성이었는데,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추가적인 토론이 필요한 의제로 제안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IGF 몇 달 전부터 망중립성 메인 세션 기획을 위한 워킹그룹이 만들어져 논의했는데, 지역적 다양성과 지정 패널들의 이해관계자별 균형을 맞추기 위한 토론이 기획단계부터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기술적 측면, 경제적 측면, 인권적 측면 등 3개 주제로 나누어 각 1시간씩, 총 3시간 진행된 망중립성 메인 세션은 다소 산만하게 진행되었다. 망중립성과 관련된 세부 이슈들이 광범위하고, 지역별, 국가별로 통신 환경, 규제 환경이 천차만별일 뿐 아니라, IGF 메인 세션에서는 처음 다루는 이슈였기 때문에, 특정 쟁점에 대해 치열한 공방이 오가기 보다는 검토해야 할 다양한 이슈들을 확인하는데 그쳤다. 다만, 망중립성과 관련한 워크샵은 그 이전 IGF에도 있었는데, 이번 IGF 회의에서는 특히 개발도상국에서의 ‘무료 서비스(zero-rating)’ 문제, 즉 페이스북과 같은 특정 서비스에 대해서만 데이터 비용을 받지 않고 무료로 제공해주는 서비스가 논란으로 떠오른 점이 특기할 만하다. 망중립성 옹호자들은 이 역시 망중립성 위반이라고 비판했고, 통신사들은 이는 개도국 시민들의 인터넷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서비스라고 반박했다. (망중립성 메인세션 스크립트와 동영상 – IGF 모든 세션 및 워크샵의 스크립트와 동영상이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다.)

IGF의 개혁과제

현재와 미래 인터넷거버넌스의 주요 논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IGF 자체의 전망도 이번 IGF의 주요 이슈 중의 하나였다. 애초에 IGF는 5년 기한으로 개최하기로 되어 있었고, 이에 따라 2009년에 IGF의 연장 여부가 쟁점이 된 바 있다. 결국 다시 5년이 연장되었는데, 따라서 내년 브라질에서 개최되는 IGF 까지만 확정이 되어 있고, 내년 말에 UN에서 연장 여부를 다시 결정해야 한다. 이에 시민사회는 IGF의 유의미성이 이미 확인되었기 때문에, 이제 5년이라는 한시적 연장이 아니라, 한동안 지속가능하도록 연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스트 비트라는 시민사회 네트워크는 이런 입장을 포함한 IGF 성명을 발표하였고, 또 시민사회 뿐만이 아니라 정부 및 기업들의 연명도 받아 UN에 서신을 보낼 예정이다. (홈페이지를 통해 11월 1일까지 계속 서명을 받을 예정이다.) UN 에서 어떠한 결정을 내릴지는 미지수이나, 현재 대체적인 분위기는 최소한 기존과 같이 5년은 연장될 것으로 보인다. IGF의 기간 연장과 함께, IGF의 개혁도 계속적으로 논란이 되어온 부분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IGF가 그저 ‘토크쇼’가 아니라, 어떤 구체적인 결과물을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있어왔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1년에 한번 있는 이벤트가 아니라, 그 중간에 계속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하고, 또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무국이 보강되어야 한다. 또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원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현재는 UN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IGF 프로그램 기획의 역할을 주로 하고 있는 ‘멀티스테이크홀더 자문위원회(MAG)’의 선출과 운영을 민주화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번 IGF와 함께, 행사장 밖에서는 터키의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인터넷 감시와 보안, 표현의 자유 등 기본적 인권 옹호를 주제로 ‘인터넷언거버넌스포럼(Internet Ungovernance Forum)’이라는 별도의 행사를 개최하였다. 이들 터키 활동가들이 IGF에 워크샵을 제안했지만, 채택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IGF는 공정한 기준에 의해 워크샵을 선정했다고 하지만, 이들은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온 터키 정부의 정치적 영향력이 있었을 것이라 의심하고 있다.

IGF의 참여 의미

워크샵의 선정은 주제의 적합성, 패널 구성의 (지역적, 이해관계자별) 다양성, 워크샵 기획의 완결성 등 몇 가지 기준에 따라, 자문위원회(MAG) 위원들이 심사하여 결정한다. 아쉽게도 한국의 참여자들 역시 이번 IGF에 망중립성, 국가식별번호, 익명성 등과 관련한 몇 개의 워크샵을 제안했지만 모두 채택되지 못했다. (지난 해에는 한국의 참여자들이 제안한 워크샵들이 유사한 주제의 다른 워크샵과 병합되어 진행되었다.) 다만, 한국의 참여자들은 미래부와 KISA가 마련한 오픈포럼에서 발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오픈포럼은 워크샵과는 달리 특정 단체가 자신의 활동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자격에 특별한 제한은 없지만, 주로 ITU, OECD, UNESCO, ICANN 등 국제기구들이 활용을 많이 한다. 이 기구의 활동들에는 참여자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래부와 KISA가 주최한 오픈포럼은 한국의 상황을 소개하는 것이었기에 당연히 많은 해외 참여자의 관심을 끌기는 힘들었다. 이런 형식으로라도 참여의 경험을 쌓아나가는 것도 의미있기는 하지만, 향후에는 좀 더 내실있는 워크샵을 주도적으로 기획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IGF에서 메인 세션이나 워크샵 등의 참여는 어쩌면 작은 부분이다. IGF 행사장의 넓은 로비에서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서로 대화하거나 회의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IGF는 사람들이 만나고 서로 소통하는 자리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정보를 교환하고, 전략을 논의한다. 물론 IGF 이전과 이후에도 이메일 등을 통해서 계속 소통하겠지만, 얼굴을 실제로 보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생기는 신뢰는 다른 방식으로는 얻기 힘든 것이다. 모든 세션과 워크샵이 인터넷으로 생중계되고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도 있는데, 굳이 워크샵 쇼핑만 하기 위해서라면 현장에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초창기부터 인터넷거버넌스에 참여해왔던, 미국 시라큐스 대학의 밀튼 뮬러(Milton Mueller) 교수는 폐막식 연설에서 존 페리 발로우의 ‘사이버독립선언문’을 인용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터넷 민족해방운동(internet national liberation movement)’이라고 말했다. 그가 국경 내에서의 정부의 정부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각국 국경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공간이 아니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인터넷거버넌스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밀튼 뮬러 교수> source: IGP Blog

 

* 이 글은 네이버 뉴스레터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4-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