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텔레코뮤니스트 선언”

<텔레코뮤니스트 선언>은 정보자본주의 시대에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기 위한 방안을 제안한다. 우선 저자는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는 분산적이면서도 협력적인 생산 방식인 ‘또래생산(peer production)’과 카피레프트 라이선스를 통한 공유지(digital commons)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러한 아이디어를 비물질적인 영역을 넘어서 물질적인 영역으로 확대하려고 시도한다.
그는 본질적으로 착취적인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나 관료제의 폐해를 낳는 집산주의적 접근을 극복하기 위해, 인터넷에서의 또래생산과 유사한, 자기조직적이고 독립적인 또래생산자 커뮤니티를 제안하며, 이를 ‘벤처 코뮌’이라고 부른다. 벤처 코뮌에서는 생산은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되, 생산적 자산의 공통재의 공급과 분배를 위한 최소한의 관리만이 필요하다. 물론 낮은 복제비용으로 인해 공통재의 배분 관리가 문제되지 않는 비물질 영역(즉, 인터넷)에서 이와 같은 또래생산이 먼저 이루어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카피레프트가 카피라이트(저작권) 체제를 이용하여 저작물의 사적 통제라는 저작권의 애초 목적과 다른 저작물 공유지를 형성하고자 한 것처럼, 벤처 코뮌은 자산에 대한 통제를 위해 기업형식에 기초하고 벤처 금융과 유사한 형태를 띄지만, 생산적 자산의 공통재의 확대를 목표로 한다. 저자는 노동자들이 이와 같은 공통재의 확대를 통해 자신의 힘을 확대할 때 사회의 실질적 변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벤처 코뮌의 맥락에서 기존의 카피레프트나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라이선스(CCL)는 한계가 있다. 상업적 이용을 허용함으로써 벤처 코뮌 외에 일반 자본도 비물질적 공유지를 활용할 수 있고, 반대로 CCL의 비영리 조건은 벤처 코뮌조차 영리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카피파레프트’라는 새로운 라이선스를 제안하는데, 이는 비물질적 공유재를 벤처 코뮌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그 결과물이 노동자 공통의 자산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한다.
재미있는 제안이기는 하지만, 벤처 코뮌의 확대를 통해 자본주의를 전복한다는 제안이 얼마나 현실적일지는 의문이다. 자유소프트웨어가 그랬던 것처럼, 자본주의 내에서 벤처 코뮌은 자신의 현실 가능성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얘기했듯 ‘정치는 사상의 대결이 아니라 능력의 대결’이라면 말이다. 또한, 카피레프트, 특히 CCL에 대해 부정적일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 한계는 한계대로 인정하더라도, 보다 많은 창작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실질적인 디지털 공유지를 확대하기 위한 효과적인 전술일 수 있기 때문이다. 카피파레프트와 같이 공유의 영역을 벤처 코뮌에 제한한다면 (그것도 벤처 코뮌이 거의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것이 확산될 수 있을까? 그리고 비물질적 영역 내에서라도, 저작권에 제한되지 않는 새로운 방식의 생산 양식을 창출하는 것이 의미없는 일일까? 그러나 분명 웹2.0과 같은 수사로 마치 인터넷이 혁신과 자유의 공간인 것처럼 찬양하는 것에 현혹되지 말고, 그 이익이 어떻게 분배되는지, 새로운 방식의 착취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이를 극복할 방안은 무엇인지 다양한 제안이 나오고 토론이 될 필요는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