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버스를 타고 가는데 창문 바깥으로 경찰서에서 붙인 커다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경찰에서 시민들로부터 대대적으로 교통법규 위반 영상을 제보받겠다는 것이었다. 시민이 보유한 블랙박스나 휴대전화 동영상을 제보하면 사은품을 준다고 했다. 어디선가 본듯한 투철한 신고정신, 이제는 영상기록장치가 필수이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손에 손마다 차량마다 집집마다 영상기록장치 찾기가 어렵지 않아졌고, 국가는 이제 그 영상들을 경찰의 확장된 눈과 귀로 불러들인다. 시민들은 기꺼이 국가를 대리하여 서로가 서로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자처한다.
교통법규 뿐이겠나. 이제는 시민들이 집회시위자들을 촬영하여 신고할 날도 머지 않았다. 신고하는 거야 각각의 국가관에 따른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우리 사회는 대체로 영상기록장치들이 이렇게 공권력에 귀속되는 데 대해 호의적이다. 2002년 강남구청과 강남경찰서가 범죄예방 용으로 5대의 CCTV를 도입한 후 국내 공공 CCTV 대부분은 경찰 것이나 다름이 없다. 지난 1월에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중인 CCTV 통합관제센터를 전수조사했었는데 101개 중 90곳에서 경찰이 소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공공 CCTV 뿐 아니라 시민들이 보유한 블랙박스며 휴대전화 동영상도 경찰이 관제하는 시대다.
CCTV를 경찰이 관제하는 것이 문제가 될까? CCTV는 ‘기록매체‘일 뿐이다. 따라서 일어나지 않는 일을 조작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우리는 이 기계에 대해서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거나, 때로는 기특해 하며 수용해 왔다. 갈수록 범죄가 득시글거리고 안전해지지 못하는 사회를 느낄 때마다 우리는 CCTV의 효용성에 의존하고자 했다. CCTV는 나쁜 사람들을 증명해 줄거야. 그러면 나라에서 나쁜 사람들을 잡아 주겠지. 그렇게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겠지?
그런데 세월호 선원들을 자기 집에 재운 해경들 아파트에서는 CCTV가 사라졌다. 민간인을 사찰한 국무총리실에서도 CCTV가 삭제되었다. 양천경찰서에서 누군가를 고문할 때는 CCTV가 옆으로 돌아가 있었다. 어찌된 것이 꼭 필요한 순간 CCTV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당연하다. 이 영토에서 공권력은 폭력수단을 독점하고 있다. CCTV는 공평무사한 기계가 아니다. 공권력이 자기들 이해 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재배치할 수 있는 사물일 뿐이다.
나는 최근 집회시위 현장의 CCTV 문제와 씨름 중이다. 처음 이 문제를 접하게 된 것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때였다. 세종로에는 교통관제 용으로 CCTV가 운영 중이었고 집회 상황이 궁금한 네티즌들은 이 CCTV를 인터넷으로 중계하는 사이트에 들어갔다. 당시 경찰은 세종로에 늘 차벽을 세우고 집회 참가자들은 그 차벽과 씨름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 그 교통단속용 CCTV가 차벽 가까이 있는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서 회전하더니 줌하고 클로즈업하는 것이 아닌가. 해상도가 썩 좋은 것은 아니지만, 대체 왜 교통단속용 CCTV와 그것을 관제하는 교통 경찰이 집회 참가자를 당겨볼 필요가 있었을까? 이것은 공공기관 CCTV를 목적 외로 줌하고 회전하지 못하도록 한 법률 위반이었다. 무엇보다 교통상황실에는 교통경찰만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2012년 강정. 경찰과 검찰과 삼성, 대림은 수많은 주민과 활동가를 감시하는데 CCTV를 썼다. 한 활동가의 경우 무려 40여 건의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그 유일한 증거가 CCTV였다. 2011년 개인정보보호법이 제정되었기 때문에 범죄예방, 시설안전을 위해 설치한 CCTV가 집회시위자들을 감시하고 기소하는데 사용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주장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2013년 대한문에서도 사망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추모하며 농성하던 이들을 CCTV가 감시한다는 의심이 들었다. 이제는 손을 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산인권센터 박진 활동가와 함께 중구청 통합관제센터를 방문해서 직접 열람해 보았다.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했다는 CCTV가 집회 참가자들을 일일히 당겨보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법적 대응을 위해 영상을 확보하려고 하니 삭제해 버렸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세월호 사건 이후에도 많은 이들이 추모할 권리를 위해 거리에 모였다. 세종로 CCTV는 또다시 이들을 감시하다가 언론에 딱 걸렸다(한국일보 6월 11일자, "경찰, 교통CCTV 조작해 세월호 집회 감시했다"). 하지만 국회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영상 제공을 또다시 거부하고 있다. 경찰의 CCTV가 시민을 보호하기는 커녕, 법에서도 보장하는 기본권을 자기들 입맛에 따라 침해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경찰 CCTV를 철거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 CCTV가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는 말을 아직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으로, 그들이 우리를 누구로부터 지켜준다고 말하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실제 경찰의 CCTV가 평소 하는 주된 업무는 길거리의 절도 행위 감시이다. 거리를 배회하는 청소년들이 여럿 모이면 CCTV 통합관제센터에는 경보음이 울린다. 주변 CCTV를 총동원하여 아이들을 입체적으로 따라붙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오토바이 근처를 기웃거리다가 마침내 올라타는 순간… 애애앵 순찰차가 나타난다. 신속 검거. 물론 길거리 절도는 나쁜 행위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정도 기대로 막대한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퍼부어 경찰에게 CCTV를 안겨주었던가?
실제 통계를 찾아보았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범죄 발생율과 검거율, 그리고 CCTV 증가율을 비교해 보았다. 결과는 놀라왔다. 6년치만 살펴보더라도 총범죄 발생율은 크게 줄지 않았다(1,836,496건 -> 1,793,400건). 검거율은 오히려 떨어졌다(1,615,093건 -> 1,370,121건). 강도, 강간 등 4대범죄 발생율은 오히려 증가했다(231,341건 -> 313,244건). 기대가 완벽하게 배반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461,746대에 달하는 공공 CCTV들은 대체 무슨 이유로 예산 먹는 하마 노릇을 하는 것일까? 경찰은 "주민의 심리적 평온"을 내세우곤 한다. 주민들이 막연한 기대감으로 심리적으로 안전하기 위해 실제 안전과는 거리가 먼 CCTV가 자꾸만 확대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저항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찰의 탄압 수단으로 쓰이고.
세상에는 두 가지의 안전이 있다. 저들의 안전과 우리의 안전. 세월호에서 생명과 존엄의 안전을 기대하던 이들과 달리, 이 사건을 정권과 재산의 안전으로만 보는 이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자유에도 두 가지가 있다. 우리가 집회시위의 자유를 외칠때 시장의 자유를 외치는 이들은 다른 이의 다른 자유를 박탈할 자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불행히도 권력은 그들에게 있다. 그러니 그들의 CCTV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2014-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