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은 제일 먼저 목격자들의 주민등록증을 훔치고, 경찰은 CCTV를 샅샅이 뒤진다.”
영화 ‘감시자들’의 장면이다. 영화는 한국 경찰 감시팀의 이야기를 화려하게 그린다. 과장된 면도 있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우리의 삶이 국가에 의해 어떤 방법으로 감시받고 있는지 막연할 때, 이 영화는 좀 더 구
체적인 상상을 할 수 있는 촉매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는 시종일관 CCTV를 보여준다. 실제 CCTV 통합관제센터처럼 생긴 영화 속 경찰 수사 본부에서는 사건 현장 주변의 모든 CCTV를, 심지어 편의점 CCTV까지도 직접 출동하지 않고 다 살펴본다. 여기서 치안을 내세우며 전국적으로 CCTV를 확산 및 통제하려 하는 경찰의 검은 욕망이 떠오른다. 2013년에는 충북 진천에서 중증여성 장애인 거주지 출입구에 CCTV를 설치했던 경찰이다. 게다가 경찰은 화면에서 용의자를 추출해 내 외형을 3D로 분석해낸다. 이 또한 시위현장 등에서 채증한 사진을 컴퓨터를 통해 실제인물과 대조해 범죄행위자를 지목해 내는 경찰의 3D 입체 영상 채증을 연상케 한다.
어릴 때 CSI같은 것을 보면 이런 것들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오, 완전 신기해! 멋져! 이제 범죄자들은 없어지겠네?” 라고 말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시골 형사들이 탐문조사랍시고 동네 사람들 중 적당한 사람을 의심하고, 인권을 침해하면서 조사하는 경찰의 이미지가 강했던 탓이었던 거 같다. 그래서 결점 투성이인 경찰을 신뢰하느니, 저런 정확한 기계로 수사를 하는 것이 더 믿음직스러웠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세상이 진짜 왔다.
하지만 그렇게 멋질 것 같던 신세계의 민낯은 그리 멋지지 않았다. 세상은 어릴 때 배운대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동”만을 범죄라고 부르지 않았다. 밀양의 할머니들이, 현대, 유성의 노동자가 범죄자가 되고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불법이 되는 세상이었다. 21세기에도 간첩을 조작하는 국정원이 있는 세상이었다. 이런 세상에 발딛고 영화를 보면, 우리는 정말 소름끼치게 무서운 능력을 정부의 폭력기구에 몰아줬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도청, 미행, CCTV, 주민번호, 카드내역 등 영화의 사찰 내용은 아주 현실적이다. 하지만 가장 현실적인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경찰 총경이 내뱉은 대사다. “지금부터 모든 결정은 저 이영숙 총경 개인의 독단적 판단으로 향후 모든 책임 역시 제가 지겠습니다.” 영화는, 선량한 경찰에게 때로 법이 거추장스러울 수 있다고 말하는 듯 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독단적 판단으로 얼마나 많은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이 발생했는지 알고 있다. 국회의 감시도 받지 않고 예산부터 모든 것이 비밀인 국정원은 모든 시민 위에서 군림하고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
하루 평균 100여 개의 CCTV로 감시되는 우리의 삶, “범죄소탕”의 포장지를 뜯고 민감한 촉을 세워 국가폭력기구의 민낯을 감시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