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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표 달고 말해!

By 2004/03/17 10월 29th, 2016 No Comments

Cyber Law

이지선

사후처벌은 예방주사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를 비방하는 허위의 글을 인터넷에 여러 번 올렸다는 이유로 구속되어, 결국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사람이 있었다. 자신이 운영 중인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등장한 명예훼손성 글을 삭제하지 않은 인터넷 사업자는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된다는 판결도 있다. 심지어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명예훼손의 글을 다른 게시판으로 퍼나른 행위만으로 구속된 사람도 있었다. 구속이 된다면 직장과 가정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고, 징역형을 선고받으면 사회생활에서 많은 제약을 받는 전과자가 된다.

이런 방식으로 잘못한 사람은 충분히 처벌을 받게 할 수 있다. 또 불법적인 내용의 글이 올라오면 게시판 운영자가 삭제하면 그만이다. 선관위나 피해자가 삭제를 요구했는데도 삭제하지 않는다면 운영자 역시 형사처벌을 받는다. 사후에 처벌받게 하는 것이 결국은,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행위를 하게 되면 처벌받게 될 터이니, 그러한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경고가 되는 것이다. 법적으로 형벌의 일반예방효과라 한다.

언론의 자유는 공적존재의 인격보호보다 우선한다
한편 법원은 ‘공적인 존재의 정치적 이념은 철저히 공개, 검증돼야 하며 광범위한 문제제기와 공개토론을 통해 관련 의혹을 밝힐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언론의 자유는 인격 보호보다 우선할 필요가 있다’는 판결을 한 적도 있었다.

자유시민연대 등이 일간지에 ‘지금은 인민위원회의 사학접수 전야, 사학을 난장판으로 만들자는 건가’라는 제목의 광고를 게재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그러자 전국교직원노조는 자유시민연대 등이 학교운영위원회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하면서 자유시민연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게 된 것이다. 이 소송에서 법원은 언론의 자유가 인격 보호에 우선하여야 한다며 자유시민연대의 손을 들어주었다.

익명으로 글을 쓴다고 하여도 IP추적을 통하여 누구인지 알 수 있고, 주민등록번호와 실명을 확인받고 글을 쓴다고 하여도 필명을 사용하게 할 수 있게 한다면 내 이름이 만천하에 드러나지는 않는다. 설사 실명만을 사용하게 하여도 인터넷상에서 이름 석자가 무슨 식별력이 있겠는가. 실제 실명 등록된 회원에 한해 독자의견을 작성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인터넷 한겨레는 그 운영 결과 실명제와 익명제의 차이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오마이뉴스 2003. 3. 3 기사).

시작과 결과가 별반 다르지 않은데, 그럼에도 이 시점에 와서 유독 선거와 관련하여 인터넷 실명제를 하겠다고 하니 ‘공정한 선거’를 위해서라기보다는 ‘활발한 정치참여’를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그야말로 인격권에도 우선한다는 ‘공적인 존재’에 대한 ‘광범위한 문제제기’와 ‘공개토론’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민을 위한 국가, 통제를 위한 국민?
사실 게시판에 도배되고 있는 인격모독의 글을 보면 이 글들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선거 직전에 급조된 인터넷 실명제는 그 답이 아니다. 인터넷 실명제 자체에 대하여도 반대하지만, 입법과정도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인터넷 실명제와 관련된 어떠한 법적, 기술적 문제도 진지하게 검토된 바 없다. 영리적인 신용정보 회사이건, 행정자치부이건 주민등록 번호와 실명에 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자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실명확인을 받는 것은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상의 제3자 정보제공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용자의 동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실명확인과정에서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하여 염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국가는(적어도 국가공무원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국가는(심지어 국가공무원은) 질서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통제하려 한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통제할 수 있을까. 선거 중에 흑색선전을 하면 안 된다. 하지만 선거와 관련된 유인물을 복사할 수 있는 복사기의 소유자한테, 복사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그 사람의 주민등록증을 확인하라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게 하는 그런 법을 만들지는 않는다. 강제적인 인터넷 실명제라니, 마치 밤에는 범죄가 많이 발생하니 사람들이 돌아다니지 못하게 해야 된다는 ‘야간 통행금지 조치’와 유사한 발상이 아닌가.

국민이 선거 이틀 전에 터져 나온 흑색선전에 부화뇌동하여 결국 훌륭한 국회의원 후보자를 낙선시킬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 수준으로 국민을 보는 사람, 유권자 2000 몇 백만 명이 전부 허위사실을 유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것을 막기 위해 유권자 100만 명 정도는 인터넷을 통한 의사표현을 할 수 없게 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 그렇게 해서라도 국회의원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입법자라는 사실이 걱정된다. 새삼스럽게…

 

 

2004-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