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보공유연대는 3차례에 걸쳐서 기획 강좌를 진행한 바 있다. 이 중 두 번째 강좌인 ‘활동가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에는 많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참석하였다.
시민사회단체 역시 활동의 과정에서 저작물들을 많이 활용하게 되는데, 과거와 달리 활동가들도 이런 저런 저작권 문제에 부딪히는 일이 많아지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몇 년 전에 캠페인을 위해 만든 웹자보에 포함된 사진이 저작권을 침해했다거나, 자기 단체의 활동과 관련된 기사를 게시판에 올린 것이 문제가 되거나, 홈페이지에 사용한 폰트가 저작권 침해가 되어 법무법인으로부터 공문을 받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저작권 제도 자체의 문제는 차치하고, 우선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서라도 이제 활동가들도 저작권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저작권 문제를 회피하기 위하여 항상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작권은 저작권자의 보호를 위한 법’이라고 오해하고 있지만, 사실 저작권은 ‘문화의 발전’을 위한 법이고 이를 위해 창작자(저작권자)의 배타적 권리를 보호하는 한편, 공정한 이용을 도모하기 위해 일정한 경우에는 그러한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
무조건 권리만을 강화하면 오히려 저작물의 유통이나 이용을 제약하여 오히려 문화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공정이용(fair use)이라고 하며, 우리 저작권법은 ‘저작재산권의 제한’ 조항에서 이를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우리는 논문을 쓸 때 다른 사람의 논문을 적절하게 ‘인용’한다. ‘인용’하기 위해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논문을 어떻게 쓸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에서는 ‘저작권 보호’만이 과도하게 홍보되고 있을 뿐, 저작권 제도 내에 균형자로서 위치하고 있는 ‘공정이용’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필자는 지속적인 저작권 강화로 저작권 체제 내에 ‘권리의 보호와 이용’의 균형이 상당히 무너져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 전통적인 저작권 제도가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의 저작권 체제 내의 ‘공정이용’의 권리에 대해 보다 많은 사람이 인식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저작권 보호와 공정이용의 경계선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즉 결국 정책적인 결정의 문제이기 때문에 현실적 필요에 맞게 공정이용의 범위 확대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장애인을 위한 저작권 제한 국제조약 배너(정보공유연대)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과 관련된 공정이용 조항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다.
▶ 법률이나 법원의 판결문 등은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 대통령의 담화문이나 정치인의 국회 발언과 같은 정치적인 연설문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최근 저작권법 개정으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업무상 작성하여 공표한 저작물도 공정이용 대상에 포함되었다. (올해 7월 1일부터 시행) 다만, 공공기관이 발주했지만 저작권이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경우는 포함되지 않는다.
▶ 시민사회단체에서 어떤 행사에서 영상이나 음악을 공연하는 경우가 많다. 관람자에게 돈을 받지 않고, 실연자에게 통상의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라면 권리자의 허락없이도 공연할 수 있다.
▶ 저작권법은 교육 목적으로 저작물을 권리자의 허락 없이 이용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지만, 그 허용범위는 주로 초, 중, 고, 대학 등 교육기관들에 한정된다. 그래서 시민사회단체나 미디어센터 등에서 하는 교육은 공정이용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현행 저작권법의 한계다.
▶ 홈페이지에 언론 보도를 ‘펌’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우선 ‘사실의 전달에 불과한 시사보도의 이용’은 가능하다. 그러나 사실과 함께 기자의 주관적인 의견이 들어가는 경우 기사에도 저작권이 있기 때문에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다. 우습게 생각되겠지만, 단체의 보도자료에 기반하여 쓴 기사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컬럼 같은 경우는 필자에게 있기 때문에, (필자가 언론사에 저작권을 양도하지 않았다면) 필자의 허락을 맡으면 가능하다.
▶ 기사 뿐만이 아니다. 홈페이지에 영상, 이미지 등을 활용할 때, 공익적 활동을 하는 시민사회단체라고 할지라도 특별히 저작권법의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유튜브에 올려진 동영상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삽입하는 것은 가능하다. 어차피 저작권 문제는 유튜브에서 걸러질 테니까. 스스로 만든 동영상이나 이미지를 사용할 것이 아니라면, 정보공유라이선스나 크리에이티브 라이선스와 같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영상이나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이 위험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구글 등에서 이미지를 검색할 때도 이용조건에 맞는 이미지를 검색하는 옵션을 포함하고 있다.
▶ 최근 이슈가 많이 되는 것이 ‘폰트’(서체) 문제이다.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폰트 파일’에는 저작권이 있지만, ‘서체’ 자체에는 저작권이 없다. 즉, 폰트 파일을 허락없이 복제하면 저작권 침해가 되지만, 그 결과물인 서체 자체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아니, ‘폰트 파일’없이 어떻게 서체가 나온다는 말인가? 그럴 수 있다. 예를 들어, 홈페이지나 플랭카드, 웹자보를 외주 제작해서 만들었을 경우, 제작한 사람이 폰트 파일을 불법복제해서 사용했다면 제작한 사람은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지만, 그 결과물을 사용한 사람은 저작권 침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폰트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공문을 받았다고 무조건 쫄 필요는 없다.
▶ 패러디 동영상이나 이미지 등도 저작권 침해의 가능성이 크다. 통상 원 저작물에 대한 비평을 위한 패러디는 허용되지만, 어떤 것을 풍자하기 위해 다른 저작물을 사용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라고 본다. 즉, 정치인을 풍자하기 위해 영화 포스터를 사용하는 것은 사실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다. 강남 스타일 영상을 활용한 무수한 ‘OO 스타일’ 영상들도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다. 다만, 싸이가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고 오히려 강남 스타일의 열풍에 잘 이용했을 뿐이다. (이처럼 권리자 허락없이 저작물을 이용했다고 무조건 저작권 침해로 고소당하는 것은 아니다. 권리자가 권리 주장을 하지 않는다면 상관없다. 다만 이용자 입장에서는 저작권 침해 주장을 당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는 얘기다.)
앞서 공정이용에 해당한다고 한 것도 실제 활용할 때에는 법조항을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공정이용이 되기 위한 세부적인 조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영리 공연이라고 무조건 허용되는 것은 아니며, 공공기관의 저작물이라고 모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구체적인 사례에 따라 저작권 침해 여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정보공유연대 기획강좌 자료(관련 링크)와 저작권상생협의체가 만든 ‘저작물의 공정이용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참고하기 바란다.
저작권상생협의체가 만든 공정이용 가이드라인은 애초에 공정이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겠다는 취지와 달리 현행 저작권법 해설이 되었는데, 어쨌든 여러 구체적인 사례를 담고 있어서 현행 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한 판단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읽어보면 현행 저작권법이 ‘상식에 반하여’ 우리 삶에 얼마나 제약을 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레디앙에 실린 글입니다.
2014-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