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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빅브라더 : 수퍼 데이터베이스

By 2004/03/08 10월 29th, 2016 No Comments

기획연재

장여경

조지 오웰의 빅브라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날의 사회는 전체주의적 군주인 대형(大兄)이 국민 생활을 샅샅이 들여다보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만큼 민주화되었다는 것이다. 감시 카메라가 일상생활 곳곳에 확산되긴 했지만, 이는 빅브라더의 통치 수단이라기 보다는 은행·백화점·경찰 등 다양한 주체들이 설치한 것이고 심지어 주차 문제를 고민하는 옆집 아저씨가 설치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가가 설치한 것이 카메라가 아니라 데이터베이스라면, 조지 오웰의 섬뜩한 통찰은 거의 사실이 되어가고 있다. 국내외 프라이버시 활동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국가의 여러 부처가 운영하는 각각의 ‘국민’ 데이터베이스가 거대하게 통합되는 것이다. 일명 ‘수퍼’ 데이터베이스의 등장이다. 국가는 수퍼 데이터베이스로 국민이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시시콜콜한 각종 사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즉 개인정보의 통합은 국가가 국민을 손쉽게 감시하게 함으로써 국가기관이나 경찰권의 힘을 강화시킨다. 네이스에서 수집한 청소년 정보를 경찰이 맘대로 볼 수도 있다. 데이터베이스 속에서 국민은 푸코가 말한 판옵티콘 속의 죄수나 마찬가지가 된다.

국가의 데이터베이스 통합은 국민 감시
그래서 국제적으로는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를 하나로 통합하거나 통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연동이나 공동이용을 견제하는 장치들을 두고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와 유엔 등 국제적인 개인정보 보호 원칙에서는 수집된 개인정보를 수집 당시 정보주체에게 알려준 목적 이외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목적 명확화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데이터베이스를 통합하거나 공동이용하는 것은 어떤 사람의 개인정보가 약속한 목적 이외에 사용할 수 있는 여지를 두는 것이기 때문에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안 측면에서도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일부 정보에 대해서만 권한을 갖고 있는 사람이 다른 정보에까지 접근할 수 있는 위험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중앙대 이인호 교수는 국가의 개인정보처리기관은 ‘분리처리의 원칙’을 채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정 목적을 위해 수집된 개인정보는 다른 기관에서 다른 목적을 위해 수집된 개인정보와 통합되거나 공동이용되지 않고 분리된 상태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원칙 하에 국가 정보화 사업을 추진하는 여러 나라에서 국민의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를 임의적으로 통합하거나 공동이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지방정부의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가 중앙정부와 온라인으로 결합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경우가 많은데, 2001년 4월 1일 현재 온라인결합을 금지하는 조례를 가진 일본 지방자치단체가 334개, 제한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1,218개에 달한다. 독일에서는 각주에서 관리하는 주거정보가 연방정부나 각 지방정부 사이에 연결되어 있지 않다. 뉴질랜드 프라이버시법에서도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가 서로 연동될 때, 권한을 부여할 때, 그리고 사용할 때 각각 적용되는 까다로운 지침들을 명시하고 있다.

공동이용이나 연동도 문제
그런데 한국의 전자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공공기관 간에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를 통합하고 공동으로 이용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두고 있는 것이다. 전자정부구현을위한행정업무등의전자화촉진에관한법률(전자정부법)의 11조에서는 “행정기관은 수집·보유하고 있는 행정정보를 필요로 하는 다른 행정기관과 공동이용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 하에 정부는 주민등록정보, 호적정보, 토지대장, 건축물대장, 자동차등록원부 등 전자적으로 처리된 수많은 데이터베이스를 서로 공동이용하고 있다. 이번에 행정자치부가 입법예고한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 개정안에서도 공공기관 간에 개인정보 데이타베이스를 연계·활용할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은우 변호사는 “행정기관은 동일한 내용의 개인정보라 하더라도 각각의 목적에 따라 따로 수집하고 이용해야 하며 통합이나 공동이용의 범위는 반드시 법에 규정을 두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원칙적으로 개인정보의 통합이나 공동이용이 허용되어서는 안되며, 인권침해의 가능성이 희박한 불가피한 경우로만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정부가 빅브라더가 되지 않으려면 경청해야 할 말이다.

 

 

2004-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