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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여성을 2로 인식한다{/}여성의 프라이버시권과 신분등록제도

By 2004/03/08 10월 29th, 2016 No Comments

표지이야기

페이퍼문

프라이버시권은 개인에게는 타인이 침해할 수 없는 고유한 영역을 지킬 권리가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여성에게도 타인이 침해할 수 없는 고유한 영역이 있었던가? 여성의 권리는 여전히 미궁 속에 빠져있고 투쟁해서 얻어내야 할 것들이지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은 여성에게는 너무 이른 꿈, 혹은 너무 커서 맞지 않는 옷이다. 너무 과장하거나 비관적이라고?

여성의 프라이버시를 위한 에티켓 벨?
여성과 프라이버시를 검색창에 검색해보면 단적인 예가 나온다. 두 개의 검색어가 잡아낸 것은 ‘에티켓 벨’이다. 에티켓 벨은 화장실에서 여성들이 똥누고 오줌싸는 소리를 타인에게 듣지 못하게 물소리나 음악소리를 인위적으로 들려주는 벨이었는데 관공서와 공항, 학교 등에서 여성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광범위하게 설치되었다. 에티켓 벨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프라이버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남성들이 깨끗하고 순결한 여성들에 대한 환상을 유지하도록 여성을 독려하는 의미로서 여성의 프라이버시는 그 필요성을 인정받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존중되어야 마땅할 여성의 프라이버시는 일상생활과 공적인 장을 막론하고 어디에서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언론은 공적으로 알려진 모든 여자들의 사생활을 파헤쳐 자신의 관음증을 정당화하고, 법정에서는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의 피해여성들의 사생활이 공개되고, 기업면접에서는 여자들에게만 유독 결혼을 했는지, 애인은 있는지를 질문한다. 만약 이 질문들에 대항하여 프라이버시권를 주장한다면 돌아올 대답은? 언론은 표현의 자유 혹은 국민의 알권리라고 할테고, 법정에서는 보호할만한 가치가 있는 여성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대답할 것이며, 기업은 기업의 이익을 위해 그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고 답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의심 어린 눈초리까지 감내해야 할 지도 모른다. “프라이버시라니, 왜 뭐 찔리는 거라도 있어?”라는.

신분등록제도와 프라이버시권
호주제 폐지운동과정에서 결정적인 공감을 얻게 된 것은 호주제도가 재혼가정 아이들의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는 사례들이 보도되면서부터였다. 의붓아버지와 성이 다른 재혼가정의 아이들이 겪는 고통이 가시화 되면서 호주제 폐지 운동은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호주제가 폐지된다고 해도 현 신분등록제도가 현존하는 한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력서 상에 성별, 지역, 학벌, 나이에 따른 제한을 하지 않는다고 해봤자 기업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차별을 저지를 수 있다. 왜? 주민등록번호만으로도 대부분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주민등록제도는 모든 성인에게 국가에서 신분을 보장해주는 국가신분증제도와 강제거주지등록제도, 모든 개인에게 불변하는 고유번호를 부여하는 고유번호제도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세계적으로도 유일무이한 강력한 신분등록제도이다. 주민등록제도를 통해 관리되고 있는 개인신상정보는 출생, 혼인, 출산, 사망, 주소, 학력 심지어는 혈액형과 병력 등 총 141개에 달하며, 이 정보는 개인이 사망한 연후에도 80년동안 보존하도록 되어 있다.

이같은 강제적 신분등록제도의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대안으로 최근 대두되고 있는 것이 개인별 신분등록제의 사건별 편제방식이다. 목적별 편제방식이라고도 불리는 이 제도는 국가가 특정 목적만을 위해 특정 정보만을 수집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 기존의 신분등록제도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는 여지를 줄이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사건별 편제방식은 출생부, 사망부, 혼인부 등을 각각 따로 기록하는 방식으로 예를 들어 출생부를 통해 출생한 시기와 출산율을 알아볼 수 있으며, 사망부를 통해 사망률과 사망시기와 사망률을 알아볼 수 있다. 인구조사와 같이 특별히 필요한 사항이 있지 않는 한 이 두개의 정보는 굳히 연동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럴 경우, 기업이나 관공서 등에서 취업시 주민등록등본과 호적등본을 가져오라고 할 때 개인정보가 블필요하게 많이 노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국가는 여성을 2로 인식한다.
무엇보다도, 현행 신분등록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주류적 분류체계에 의한 정보수집으로 인해 소수자의 존재 자체가 말살되고 차등화된다는데 있다. 국가가 남성의 성별을 1로 인식하고 여성의 성별을 2로 인식한다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를 드러내주는 가장 명백한 상징이다.

또한 주류적 분류체계는 많은 경우의 수를 삭제한다. 아무리 젠더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사회가 트랜스젠더를 이해하고 포용해야한다고 말해봤자 국가는 주민등록번호를 바꿔주는 게 전부이지 하리수를 위한 새로운 성별등록체계를 만들지 않는다. 남성성기와 여성성기를 한 몸에 가지고 태어난 이들은 하나를 없애는 수술을 받아야한다.

국가가 남성과 여성 외의 존재에 대해서는 없는 것으로 치부하기 때문에 이들의 존재가 있는 그대로 제도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가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성을 따르도록 제도화하므로써 비혼모들은 자신의 아이를 아버지의 자식으로 혹은 오빠의 자식으로 등록해야 한다.

이 외에도 얼마나 많은 가능성들이 편리하고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시행되는 현행 신분등록제도 하에 삭제되고 있을까. 국가의 현행 신분등록제도 분류체계에 걸맞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프라이버시를 이미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다. 기본의 프라이버시권이 이미 인간은 모두 개인으로서의 고유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진 개념이었다면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개인으로 “있는 그대로” 인정되며, “있는 그대로”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평등하게 나누는 것, 이것이 다시 구성되어야 할 진정한 프라이버시권이다.

나를 스스로 규정하고 그에 따라 불려주고 보여질 수 있는 권리, 그것이 나의 프라이버시권이다. 나는 국가에 의해 “2”로 규정된 생물학적 성별에 갇히기를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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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