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네트워커

“Don’t Be Shy, Please!”

By 2004/03/04 10월 29th, 2016 No Comments

사이버 페미니즘

조지혜

‘Don’t be shy’. 언뜻 무슨 화장품 광고 카피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문구는 ‘언니네’ 운영회의에서 튀어나왔던 캠페인의 제목이었다. 농담에 가까운 것이기는 했지만 운영진들 중에는 조금은 심각하게 언니네 안에서 이런 게 정말 필요하다’라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 이유인즉, 언니네가 너무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무슨무슨 이즘(~ism)을 내세우고 있는 공간이라면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시끄럽지 않기가 참으로 힘들다. 그것은 그 공간의 존재 이유 자체가 어떤 사회에서 관철시키고자 하는 신념과 정치적 목적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러한 성격을 띤 온라인 공간에서는 익명의 사람들에 의해 눈뜨고 보아주기 힘든 거친 비방과 욕설이 하수구의 수챗구멍처럼 소용돌이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언니네는 잊을만하면 한번씩 찾아와 배설물을 뿌려대던 여성혐오론자(혹은 페미니스트혐오론자)들조차도 자취를 감추었다(물론 이는 회비를 내어야 글을 쓸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뀐 탓도 있다). 꼭 이들이 문제가 아니라 하더라도 활발하게 글이 올라오는 ‘자기만의 방(언니네 회원들의 칼럼방)’이 몇백 개에 달하고 곳곳에 게시판이 달려있는데도, 즉 끊임없이 무엇인가 생산되고 표현되고 있는데도 ‘조용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말이다. ‘성’과 관련된 이슈만 있으면 순식간에 힘의 역학 관계와 이해관계가 드러나는 이 한국 사회에서 한 회원이 이런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언니네 자기만의 방에서 ‘병신’이라는 단어를 넣고 검색해 보았더니 백 개가 넘는 글이 뜨더라는 것. 스스로 여성주의자라고 생각하거나 여성주의에 관심과 지지를 보이는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다른 마이너리티, 혹은 더 소외당하고 차별 받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있을 줄 알았는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비하하는 용어를 아무 생각 없이 쓰는 사람들이 많아 실망스러웠다고. 스스로에 대한 성찰에 바탕을 둔 이 칼럼은 회원들에게 높은 지지를 받아 한동안 언니네 첫 화면에 걸려있기도 했다.

나는 그때 언니네가 ‘조용한’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 명쾌한(?) 하나의 대답을 찾을 수 있었다. 요는 이것이 ‘감수성(sensitivity)’의 문제라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존중해주는 감수성, 이전의 누군가들이 만들어 온 질서를 훼손시키지 않는 감수성, 비판과 함께 자기 성찰을 스스로 해나가는 감수성. 그리고 그제야 언니네에서 각종 의견들이 들끓을만한 논쟁이 드문 이유, 자기의 칼럼이나 동호회를 PR하는 코너가 거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이유, 심지어 다른 사람들의 추천으로 자신의 글이 첫화면에 걸리는 것조차 껄끄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를 깨달았다. 그것은 단순히 여성 회원이 많다거나(그래서 소극적인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든가) 하는 이유가 아니었다. 앞서 나서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다시 점검하고, 다른 이들의 선견지명을 조용히 지지해주고 배우려는 성향의 사람들이 많았던 까닭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자신을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은 오히려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오히려 수줍어할 필요없이 자신의 생각을 조금 더 드러내어도 괜찮은 사람들은 다들 그 어딘가에 따로 있는 모양이다. 마이너리티에 대한 성찰과 감수성이 온라인에서도 기본적인 예의로 생각되는, 지극히 당연한 상황은 도대체 언제쯤 올는지.

2004-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