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버시

경찰은 만 5천여 명이 넘는 시민의 사진만 보고 신상정보를 알 수 있다?!

By 2012/10/29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정민경

집회․시위 현장 혹은 거리 기자회견 현장에서 참가자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하고 있는 경찰들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경찰의 이러한 활동은 이른바 채증활동이라고 불리며 경찰 행정 규칙으로도 만들어졌다. 3급 비밀로 분류되어 비공개되었다가 최근에야 공개된 경찰청 예규 제439호인 채증활동규칙에는 채증을 "각종 집회 시위 및 치안현장에서 불법 또는 불법이 우려되는 상황을 촬영, 녹화 또는 녹음하는 것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현행 집회시위법상 범죄에 해당하지 않고, 불법이 우려되지 않는 상황까지도 광범위하게 채증하고 있다. 범죄 행위가 아님에도 집회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을 무분별하게 채증 하는 것은 집회시위에 참가한 사람들 모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다.

 채증사진 잘 찍은 경찰 포상, 주민 일상 ‘몰카’ 실시간 중계까지 

경찰은 채증활동을 경찰관직무집행법 제2조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으나 이는 포괄적인 규정이며, 채증활동규칙은 행정규칙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나 초상권과 같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는 없다. 경찰의 채증활동에 대한 여러 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2011년 예산에서 채증을 위한 비디오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 140대 추가보유를 위한 예산으로 4억 9천만 원을 책정했다. 심지어 2011년 9월 3일자 한겨레신문에 “경찰이 채증사진을 잘 찍은 경찰관을 뽑아 포상을 하고, 채증사진 전시회까지 연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혀지며 경찰의 심각한 인권침해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해군기지건설에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을 경찰이 몰래 숨어서 평상시의 모습을 모두 카메라로 찍고 실시간 중계까지 한 사실이 밝혀지며 충격을 주었다. 이렇듯 기준과 요건 없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수사편의적인 경찰의 무분별한 채증활동은 전혀 통제되고 있지 않으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인권침해의 유형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납득하기 어려운 경찰의 사진식별 능력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희망버스에 참가했던 A씨는 경찰의 채증자료를 근거로 해산명령을 불이행했다며 경찰에 소환되었다. A씨는 해산명령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A씨가 경찰 방송차량 근처에 있는 채증자료를 해산명령을 듣지 못했다는 A씨의 말이 거짓이라는 증거로 내세웠다. 위와 같은 사례처럼 경찰은 채증활동으로 수집된 사진을 활용하여 집회에 참가했던 사람들을 소환하여 조사하며 대부분 사후처벌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경찰은 현장에서 채증 된 사진만으로 A씨가 누구인지 어떻게 식별하여 소환을 할 수 있었을까? 집회시위 현장에서 채증 된 사진들을 입력하고 관리하는 ‘채증판독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있다. 채증판독프로그램에는 채증자료가 입력되는데 여기에는 집회명, 상황개요, 채증정보, 기본인상착의(성별, 두발, 체형, 상의 하의) 착용소품 등의 정보를 입력하며, 판독된 신상정보, 판독자, 검거자의 정보를 입력하는 란도 구성되어있다. 경찰은 입력된 채증정보를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등 어떠한 데이터베이스와도 연계하지 않고, 안면인식기술도 없이 경찰이 직접 육안으로 사진 속의 인물이 누구인지 식별을 해낸다고 말한다.

 

진선미 의원실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2년 8월까지 경찰의 채증판독프로그램에 입력된 전체 입력 건수 17,578건 중 판독된 건수는 15,113건에 달하며, 미판독 건수는 2,465건이다. 이에 따르면, 경찰은 전체 건수 중에 85.9%나 되는 사진을 식별했다는 것인데 만 오천여명의 시민들의 사진을 육안으로만 식별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다. 2012년 1월 30일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경찰은 당시 채증 카메라에 포착된 불법 시위자가 누구인지와 출석 요구서를 보내기 위한 주소지 파악을 위해 참가비 입금 계좌를 조회했다"고 밝히며 육안으로만 식별한다는 기존의 주장과 앞뒤가 안 맞는 발언을 하며 더욱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또한 경찰은 채증판독프로그램 경찰 조회권자는 경찰관서당 1명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으나, 채증활동규칙 제8조(채증자료 열람 판독)에 "채증사진을 열람 판독할 때에는 현장근무자 등을 참여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여 사실상 모든 경찰이 채증사진을 볼 수 있으며 열람 횟수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아 조회권자만 대동하면 언제든지 열람이 가능하다. 경찰은 미판독 된 사진은 식별되지 않은 정보이므로 개인정보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어, 자신이 채증의 대상이 되었는지, 채증판독프로그램에 자신의 사진이 들어가 있는지 확인할 방도도 전혀 없다. 또한 식별되지 않는 채증사진은 해당 사건의 공소시효 완성일까지 보관하고, 공소시효가 완성된 때에는 폐기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채증자료의 관리 실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경찰의 채증활동은 개인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검열을 하도록 하여 집회·시위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결과를 가져 온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규정 없이 경찰이 자의적으로 행하고 있는 채증활동을 전혀 통제할 제도가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며, 채증사진을 집적하여 상시적으로 열람할 수 있는 채증판독프로그램은 국민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 이 글은 2012.11.14자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21113112011
 

2012-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