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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비례대표제, 이대로 좋은가?

By 2004/03/04 10월 29th, 2016 No Comments

표지이야기

민경배

다시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사이버 공간 곳곳에도 어느새 선거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미 인터넷 정치의 위력을 한껏 발휘했던 네티즌들이 이번 총선에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각 정당들도 이른바 넷심을 끌어안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모양이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네티즌 비례대표제’라는 발상이다. 정당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아무튼 전국구 의석 중 한 두 자리를 네티즌에게 할당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적인 구상이다.

현재 가장 구체적으로 네티즌 비례대표제를 추진하고 있는 정당은 민주당이다. 네티즌들의 온라인 투표를 통해 선출된 1위 후보에게 전국구 의석 10번을 배정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미 네티즌 비례대표의원 선출 사이트를 별도로 개설하여 후보등록과 사이버 선거인단 등록 접수를 시작한 상태다. 우리당도 네티즌 두 명을 ‘청년 네티즌 비례대표’라는 이름으로 전국구 의원에 배정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이중 한 명은 전국구 순번 가운데 당선 안정권 내에 배치해 의원직을 보장하고, 나머지 한 명은 원내 제1당이 되는 것을 전제로 그 경계선에 순번을 배정해 네티즌 참여를 유도한다는 복안이다. 한나라당도 작년 9월에 인터넷 논객 중 우수한 사람 두 명을 뽑아 비례대표 후보로 내세우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으나 그저 아이디어 차원에만 머물렀을 뿐 아직까지 후속 계획은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경쟁 정당들의 움직임을 마냥 외면할 수 만은 없는 노릇일 것이다.

사실 알고 보면 네티즌 비례대표제라는 아이디어가 이번에 최초로 제시된 것은 아니다. 이미 지난 1999년 새정치국민회의가 사이버 국회를 만들어 20명의 네티즌 의원을 선출한 적이 있었다. 물론 당시 네티즌 의원은 진짜 국회의원이 아니라 단지 명예직일 뿐이었다. 반면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네티즌 비례대표제는 실제로 금뺏지를 달게 해주겠다는 점에서 분명 혁신적인 발상임에는 분명하다. 이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아직까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매우 파격적인 정치실험이 될 것이라 평가된다. 인터넷 최강국 한국이기에 가능한 일이며, 그만큼 우리 네티즌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졌음을 보여주는 징표이기에 기분 좋은 일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지금 논의되고 있는 네티즌 비례대표제 진행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뭔가 순서가 뒤바뀐 것 같아서 마음이 개운치 않다.

네티즌 비례대표의원이 갖는 의미란 무엇일까? 일단 네티즌 중에서 국회의원이 선출된다는 점을 먼저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인구 중 70% 가까이가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는 마당에 네티즌이라는 별도의 인구 범주 중에서 국회의원이 선출된다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일은 못된다. 이미 현직 국회의원들도 대부분 홈페이지 하나씩 갖고 있는 엄연한 네티즌이 아닌가?

다음으로는 네티즌들이 인터넷 투표를 통해서 비례대표의원을 직접 뽑는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하지만 오프라인 투표장에서 도장찍어 뽑힌 의원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마우스 클릭으로 뽑힌 의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네티즌 비례대표라는 직함을 붙여주기에는 여전히 석연치 못한 구석이 많다. 선출과정에서의 절차적 차별성만으로 네티즌의 대표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의 네티즌 비례대표제란 ‘네티즌 대표’의 기본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네티즌 대표란 인터넷 공간에서 네티즌들의 권익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자질과 정책적 비전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이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립과 엄밀한 검증 절차조차 마련되지 않은 채, 그저 네티즌에게 전국구 의석 한 두 자리 할당해주고, 그것을 인터넷 투표를 통해서 선출한다는 절차에만 치중하는 지금의 네티즌 비례대표제 논의란 단지 넷심에 호소하기 위한 기성 정치권의 허울좋은 이벤트에 그치고 말 것이다.

네티즌 비례대표제라는 혁신적인 실험이 지역구 공천을 기대하기 힘든 정치권 인사들이 기웃거리는 또 하나의 지역구로 전락하지나 않을까 싶어서 하는 말이다.

민경배 / 경희사이버대학 NGO학과 교수 :: min@khcu.ac.kr

2004-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