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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자동검색시스템으로 불법선거 막는다… 매일 5천 여개의 사이트를 돌며 평균 11만 여건 적발… 이미 569건 선거법 위반으로 적발돼…{/}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기계들

By 2004/03/04 4월 7th, 2017 No Comments

표지이야기

장여경

이번 총선에는 ‘불법선거운동’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여러 가지 기술적 기법들이 선보이고 있다. 먼저 ‘자동검색시스템’이 등장했다.

‘로봇’방식으로 불법선거 걸러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지난 10월부터 운영해 온 사이버 자동검색시스템은 비방이나 허위사실유포,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하는 글을 자동으로 검색하여 삭제·요구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선관위는 그간 수작업으로 진행된 검색활동에 한계를 느껴 ‘로봇’ 방식의 자동검색시스템을 개발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방식은 이렇다. 웹로봇이 지정된 사이트를 순회하면서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는 자료를 자동으로 수집하고 두세 차례 필터링을 거쳐 최종적으로 선거법 위반 자료를 걸러낸다. 판정이 끝난 내용에 대해서는 사이트 운영자나 게시자에게 자동으로 삭제를 요청한다. 삭제에 불응할 때는 검찰에 고발하겠다는 엄포도 뒤따른다. 자동검색 대상은 정당과 현역의원, 입후보예정자, 시민단체와 언론기관의 홈페이지와 포털사이트를 비롯해 5천여 개에 달한다.

선관위는 자동검색시스템이 작동을 시작한 후 12월 11일까지 매일 평균 11만 여건이 검색되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569건이 적발되었다고 밝혔다. 어마어마한 수치다.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적발된 인터넷 불법선거운동은 총 11,470건이었고 같은 해 지방선거에서는 총 1,228건이었던 것에 반해, 이번 총선은 본격적인 선거운동기간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적발건수가 예년의 반을 넘긴 것이다.

자동검색에 걸리면 무조건 선거법 위반?
인터넷상의 불법선거운동이 그새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일까. 그보다는 자동검색시스템이 정당한 정치적 표현까지 기계적으로 걸러내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지난 12월 선관위로부터 삭제 요구를 받은 참세상 속보게시판의 한 게시물은 한나라당을 비판하는 내용이었지만 게시날짜가 6월 27일이었다. 여섯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사전선거운동’을 해버린 셈이다. 그러나 우리 선거법에서는 선거에 관한 단순한 의견이나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관한 단순 지지·반대는 선거운동으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제58조)이 있다. 선거법의 목적은 불법선거운동을 규제하는 것 뿐 아니라 ‘선거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와 민주적인 절차에 의하여 공정히 행하여지도록’하는 것에도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과거보다 선거 시기 일반인들의 의사 표현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지난 6일 대법원 3부(주심 윤재식 대법관)는 대선 때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상고 출신이라는 글을 올린 혐의로 기소된 이모(68)씨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그러나 기계를 사용한 검열에 이런 고려가 있을리 없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지난 2001년 이와 비슷한 시스템을 이용하여 무려 13만 건에 달하는 ‘불건전’ 사이트 차단목록을 발표했다가 ‘불건전’하지 않은 다수의 해외 동성애 인권단체 사이트를 포함시킨 것으로 밝혀져 국제적인 망신거리가 되기도 했다.

선관위의 자동검색시스템이 매일 추출해내는 11만 건 또한 얼마나 신중하게 검토할지도 의문이다. 선관위는 이미 수작업에 한계를 느낀다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포털사이트에 개설해 놓은 자신의 블로그에 선거에 대한 생각을 올렸다가 국가기관으로부터 부름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계가 내리는 처분
가장 크게 논란을 빚고 있는 것은 선거게시판의 실명제 운영이다. 선거게시판 실명제란, 정당·후보자·예비후보자와 인터넷언론사 홈페이지 게시판과 대화방에서 선거에 대해 토론할 때 이용자의 실명을 사전에 밝히도록 하는 제도이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전자서명 인증제와 신용정보회사의 데이타베이스를 이용한 실명제가 거론되고 있다. 실명제에 찬성하는 의원들은 실명제가 익명으로 인한 흑색선전과 인신공격을 막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 실명제가 이제 막 숨통을 트기 시작한 일반인들의 정치적 표현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지적 또한 만만치 않다. 인터넷국가검열반대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는 성명에서 실명제가 국민의 정당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주민등록번호의 도용을 조장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인터넷신문협회와 한국인터넷기자협회도 각각 성명을 통해 선거게시판 실명제가 ‘구시대적 국가통제 발상’이라고 비판했고, 온라인신문협회는 불법 행위라면 기존의 선거법으로도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지난 6월 숭실대 강원택 교수가 발표한 연구에서는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의견 비율이 인터넷 토론에 참여하는 빈도에 따라 달라졌다. 강 교수는 “그동안 인터넷을 통한 토론이 활성화된 데에는 익명에 의한 참여가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면 인터넷은 토양 좋은 밭이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는 국민이 이미 발표된 후보와 정책에 접근하는 것 뿐 아니라 후보와 정책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여기에 직접 참여하는 데 있다. 최근 각 정당이 앞다투어 네티즌 마음 잡기에 나섰지만 실명제가 도입되면 인터넷은 네티즌 ‘동원책’으로만 전락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기계가 ‘불법선거운동’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다. 기계에 대한 맹신은 민주주의의 꽃을 고사시킬 것이다. 국회가 어떤 결론을 내릴 지 주목된다.

2004-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