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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인접권자에게도 ‘전송권’을 부여한다!?

By 2004/03/04 10월 29th, 2016 No Comments

정책제언

박성호

저작자에게 부여된 전송권
개정(안) 이유에서도 밝혔다시피 현행 저작권법은 지난 2000년 1월 12일 법개정(법률 제6134호)을 통하여 저작자에게 전송권을 부여한 바 있으나, 저작인접권자(실연자, 음반제작자)에게는 이와 유사한 권리를 부여하지 않았다.

당시 우리 개정법은 세계지적재산기구(이하 WIPO) 저작권조약(이하 WCT) 제8조의 공중전달권(right of communication to the public)을 참조하여 규정한 것이었는데, 개정법안 공청회에서는 저작자에게만 전송권을 부여하고 왜 실연자나 음반제작자에게는 전송권에 유사(類似)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느냐는 비판이 제기된 적이 있었다. 나도 이러한 입장에서 개정법안을 비판하여 저작인접권자에게도 가칭 ‘이용가능화권’을 인정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이러한 비판이 가능하였던 것은 WIPO 실연·음반조약(이하 WPPT) 때문이다. 즉, WPPT는 실연자(實演者)에 대하여 ‘공중(公衆)’에게 ‘고정된 실연을 이용에 제공할 권리(right of making available of fixed performances)’를 인정한다고(제10조), 또한 음반제작자에 대하여도 ‘공중’에게 ‘음반을 이용에 제공할 권리(right of making available of phonograms)’를 인정한다고(제14조)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WIPO의 저작권 등 관련 조약을 반영할 요량이라면 저작자나 저작인접권자나 똑같이 반영할 것이지, 왜 저작자의 경우에만 반영하고 실연자나 음반제작자와 같은 저작인접권자의 경우에는 반영하지 않느냐는 ‘형평성’의 문제가 핵심이었다.

물론 저작자에게 전송권을 부여한 것 자체에 대해서도 전혀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디지털 환경 아래에서 과거에는 인정되지 않았던 새로운 권리(=전송권)를 왜 저작자에게 인정하느냐는 비판이 그것이다. 새로운 권리의 창설이 아니냐는 비판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 제기는 핵심을 빗겨간 것으로 비판으로서는 설득력이 없는 것이었다. 미국의 경우처럼 종래의 배포권 개념으로도 얼마든지 포섭 가능한 문제여서 새로운 권리의 창설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배포권에 포함시켜 파악하느냐 아니면 배포권의 개념을 오로지 오프라인(off-line)에 한정하고 온라인(on-line)상의 배포는 별도의 전송권이란 개념으로 파악하느냐 하는 개념 논리상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러한 논란은 지난 세기 초 ‘라디오’ 라는 매체가 처음 등장하였을 때 전파를 통해 저작물의 내용이 전달되는 양태(=방송)를 종래의 배포권 개념으로 파악할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개념(=방송권)으로 파악할 것이냐 하는 논란과 유사한 것이다. 과거 독일 라이히 재판소(RG)는 저작물을 방송하는 행위가 배포권에 포함된다고 판시한 적도 있다.

WPPT가 부여한 저작인접권자의 전송권은 사실상 ‘전송가능화권’
이에 반하여 저작인접권의 경우에는 문제가 좀 복잡하다. 우선, 우리 저작권법상 실연자에게는 배포권에 상응하는 권리가 애초부터 없었다. 굳이 찾자면 실연방송권 정도가 될 것인데, 이 권리는 거의 대부분 판매용 음반의 방송에 대한 보상청구권 제도와 연계되어 있다(저작권법 제64조 단서, 제65조). 이 제도는 말하자면 ‘선(先)이용 후(後)보상 시스템’이다. 따라서 이러한 보상청구권 제도와 연계되는 제도를 만들지 않고 실연자에게 바로 전송권을 인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와 달리 음반제작자의 경우에는 음반에 대한 배포권이 인정되고 있어서(저작권법 제67조) 표면상으로는 전송권을 입법화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을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전송권이 규율하는 전송이란 사실상 기왕의 ‘방송’과 비슷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전송을 ‘인터넷방송’이라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경우에도 판매용 음반의 방송에 대한 보상청구권 제도와 연계되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고 음반제작자에게 전송권만을 인정하는 입법안은 문제가 있다.

더구나 저작인접권자에게 WPPT 제10조, 제14조를 참조하여 전송권에 유사한 권리를 인정하게 되더라도 그것이 저작자에게 인정된 전송권과 동일한 것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WCT 제8조(前者)와 WPPT 제10조, 제14조(後者)는 그 규율하는 내용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전자는 네트워크에 업로딩 하는 행위와 쌍방향 송신하는 행위를 모두 포괄하는 것임에 반하여, 후자는 네트워크에 업로딩하는 행위만을 규율하고 있다. 따라서 전자를 ‘전송권(傳送權)’이라 부른다면 후자는 ‘전송가능화권(傳送可能化權)’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개정안은 WPPT의 가입을 위한 ‘과잉’입법
이번에 입법예고된 개정(안)은 WPPT 제10조, 제14조를 반영하여 이에 상응한 권리를 입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은 WPPT의 내용보다 더 포괄적인 내용을 입법화하는 셈이 된다. WCT와 WPPT의 가입을 위한 국내법 정비의 일환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러한 ‘과잉’ 입법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아가 저작인접권자에게 ‘전송권’이 아닌 ‘전송가능화권’을 입법화하는 경우라도, 이러한 입법이 판매용 음반의 방송에 대한 보상청구권 제도와 같은 ‘선이용 후보상 시스템’과 연계되지 않고 입법화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인터넷 환경 아래에서 음악저작물의 이용료율(利用料率)만을 인상하는 결과가 되어 결국 저작물의 원활한 이용에 걸림돌로 작용하게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벅스뮤직 사건에서 보듯이 ‘인터넷방송’은 저작권법상의 방송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현행법이 인정하는 판매용 음반의 방송에 대한 보상청구권 제도가 ‘인터넷방송’에는 적용될 여지가 없게 된다. 그런데 여기다 ‘전송가능화권’까지 입법화하게 되면 ‘인터넷방송’은 사실상 존재할 여지가 없게 될 것이다.

농경시대의 토지에 관한 소유권이 지표면(地表面)의 사용·수익·처분권에서,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땅 속 깊은 곳의 지하자원은 물론이고 지상 아득히 높은 곳으로 비행기가 통과하는 것까지 문제 삼을 수 있는 권리로 변해 가고 있듯이, 저작권도 그 권리의 구체적 내용이 변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막강한 소유권조차도 공공성을 이유로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는 점이다. 저작권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저작권에 관한 입법의 추세를 보면, 공공성에 기한 제약보다는 권리의 측면만이 강조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2004-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