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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브라우저 독점,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By 2004/02/20 10월 29th, 2016 No Comments

표지이야기

이혁

윈도XP가 가끔씩 동작을 멈추는 말썽을 부린다. 급히 은행 사이트에서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서둘러 리눅스로 들어가 모질라 브라우저를 실행해 은행 웹사이트에 접근해 보았지만, 액티브엑스(ActiveX) 형태로 된 보안 프로그램이 설치되지 않아서 사용할 수 없다.

웹브라우저의 접근성과 표준의 문제
많은 웹사이트는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최적화되어 다른 웹브라우저로 들어가면 화면이 이상해지거나 깨진다. 특히 전자정부, 은행, 증권 등 보안이 요구되는 서비스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리눅스와 매킨토시 사용자를 위해서 모질라나 오페라 웹브라우저로도 접근 가능하게 웹사이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사용자들이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사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각기 다르게 동작하는 여러 웹브라우저를 고려하여 모든 웹사이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모든 사용자를 위해서 모든 웹브라우저를 지원하는 웹사이트를 구축할 수도 없다. 예를 들어 예전에 하이텔에서 나누어준 터미널로 텍스트 월드와이드웹을 사용하는 사람들까지 지원하는 웹사이트를 만들기란 무척 힘들다.

모든 웹브라우저가 똑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면 어떤 브라우저를 사용하는지가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표준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웹브라우저에 따른 접근성의 문제는 웹브라우저가 표준을 지켜서 만들어졌는가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대다수 컴퓨터 사용자는 컴퓨터를 사용하는 시간의 대부분을 웹브라우저를 이용하며 보낸다. 웹사이트를 방문하여 정보를 검색하고, 자신이 가입한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을 쓰고, 동영상, 음악 서비스를 사용한다. 대부분의 콘텐츠는 웹브라우저에서 읽을 수 있는 형태로 가공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웹브라우저의 독점은 소프트웨어 차원의 문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접근 가능한 웹사이트란 결국 인터넷 익스플로러로만 읽을 수 있는 콘텐츠라는 것이다. 콘텐츠의 대부분이 인터넷 익스플로러 전용으로 만들어진다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컴퓨터와 인터넷 환경 자체를 독점할 수 있게 된다.

윈도95가 출시되었을 때 마이크로소프트는 월드와이드웹이 아닌 엠에스엔(MSN)이라는 독자적인 네트워크를 준비하였다(여기서 MSN은 msn.com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MSN이란, 마블이라는 프로젝트 이름으로 추진된 독자 네트워크를 뜻한다). 인터넷의 급격한 발전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MSN을 윈도98부터 포기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로만 접근 가능한 콘텐츠(웹사이트)는 결국 인터넷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며, 인터넷 익스플로러로만 접근 가능한 월드와이드웹은 월드와이드웹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폐쇄적인 MSN일뿐이다.

웹브라우저! 인터넷 시대의 운영체제
웹브라우저의 독점 문제는 결코 컴퓨터 환경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유선과 무선이 통합되며, 가정의 가전기기가 인터넷을 통해 연결되는 유비쿼터스 환경이 도래되고 있다. 홈네트워크 시대를 한번 상상해보자. 소파에 앉아서 HDTV 수신기의 웹브라우저 기능을 사용하여 HDTV로 정부 웹사이트를 방문하여 공문을 처리한다. 그리고 홈네트워크 서버에 연결하여 방의 조명을 낮추고, 홈 네트워크 서버에 녹화해 둔 동영상을 불러서 본다. 그러나 대부분의 웹사이트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홈네트워크가 가능하려면 한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모든 HDTV 수신기에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더 나아가서 윈도우 운영체제가 설치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니 웹사이트를 화면에 표시하는 모든 가전기기가 윈도우 운영체제를 포함하고 있어야할 것이다. 이러한 상상은 결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독점을 하는 자는 표준을 지키지 않는다
웹브라우저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경우, 표준 기술의 지원 면에서는 모질라나 오페라보다 떨어진다. 컴퓨터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사는 표준 기술에 다양한 확장과 수정을 가하여 자신만의 표준을 만들어버린다.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독점 기업으로서는 자신이 표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표준 기술은 참고사항으로만 생각한다. 이건 비단 마이크로소프트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용자가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를 사용했던 과거에 넷스케이프사 역시 월드와이드웹 컨소시엄에서 정한 표준을 많이 무시했다. 그러나 독점 기업이 표준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법적·제도적 강제를 부여하기 어렵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GNU 운동은 소프트웨어의 폐쇄적인 독점 체계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독점적 소유의 문제점을 말로 비판하기 보다 대안적인 소프트웨어 공개 생산 체계를 만드는 것으로 출발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독점의 문제도 비슷하다. 결국 우리가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아니라 모질라와 같은 표준 기술에 기반한 웹브라우저를 사용하고, 표준 기술에 맞추어 웹사이트를 구축하는 대안적 방식이 필요한 것이다. 보다 많은 사람이 윈도 운영체제가 아니라 GNU 리눅스를 사용하고,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아닌 표준 기술에 기반한 웹브라우저를 사용하는 사용자 운동이 필요하다. 표준 기술에 기반한 웹브라우저로 공공 웹사이트에 접근이 불가능하다면 이를 고발하고, 우리가 만드는 웹사이트는 표준 기술에 기반하여 제작하는 생산자 운동이 필요하다.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독점이 윈도라는 운영체제의 독점에서 기반한 것이므로 GNU 리눅스라는 독자적인 플랫폼을 의식적으로 사용할 필요도 있다. 윈도와 경쟁할 수 있는 리눅스 사용자가 많아질 때, 보다 많은 사용자들이 표준 기술에 기반한 웹브라우저를 사용할 때, 보다 많은 웹사이트들이 표준에 기반하여 제작될 때, 표준을 지키지 않는 마이크로소프트는 고립될 것이다.

며칠 전 TV에서 <희망의 이유>를 쓴 제인 구달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자신을 소중히 여겨라. 각자가 모두 변화의 주체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찾으라.” 바로 각자가 변화의 주체가 되어서 노력할 때 웹브라우저 독점의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2004-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