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위의 방송심의 폐지냐? 유지냐?
– 자율규제 강화를 통한 행정심의 축소방향 제안
김동찬 (언론연대)
1. ‘존폐의 기로에 선 방심위
‘해체하라’는 가장 강한 톤의 투쟁구호다. 그러나 때로는 규탄의 강도를 더욱 강력하게 표현할 때 상투적으로 쓰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종종 현실성 없는 정치공세라는 느낌을 들게 만든다. 질타를 받는 대상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가 많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도 처음에는 그랬을 것이다. 2009년 5월, 미디어전문지 <미디어스>는 방심위 출범 1년을 맞아 폐지를 제기하며 ‘안녕히 가십시오. 방통심의위’라는 배너를 배포했다. 시민사회단체도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위한 노력을 다하지 않는다면 심의활동 전체가 헌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때만해도 방심위는 외부의 제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채 3년이 되지 않은 지금, 방심위 ‘해체’는 더 이상 상투적 구호가 아니다. 나라 밖에서는 UN이 방심위를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국가통제기구로 지적했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인터넷 심의를 민간에 이양할 것을 권고했다. 헌법재판소도 방심위의 인터넷 심의에 대한 심리를 진행 중이다. 방심위가 무분별한 심의를 거듭하는 동안 ‘방심위 해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어느덧 구체적인 방법론이 제출되고 있다. 방심위는 진짜 존폐의 기로에 섰다.
통신심의분야는 이미 오래 전부터 행정심의 폐지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방심위의 인터넷 심의는 크게 세가지다. 불법정보 심의와 청소년유해물, 그리고 기타 불온한 유해정보가 심의대상이다. 이중 아동 포르노와 국가기밀누설 등 불법성이 매우 뚜렷한 표현물과 어린이, 청소년 보호를 위한 유통규제를 제외한 대부분의 행정심의는 그 위헌성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국제적으로도 정부가 인터넷 내용을 직접 규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때문에 권력을 가진 심의주체를 해체하여 인터넷 심의를 폐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인터넷 내용규제는 사용자 또는 그 집단의 자율적 결정에 따라 이뤄져야 하며, 불법성에 대한 판단은 사법부가 해야 한다는 게 기본원칙으로 자리를 잡았다.
2. 방송심의, ‘누가’‘어떻게’ 할 것인가
방송분야는 사정이 좀 다르다. 방송에서도 행정심의의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그러나 통신과 달리 방송에 대한 행정심의 자체가 위헌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또한 매체의 특성상 통신에 비해 사회적 규제의 필요성이 훨씬 높다. 거칠게 요약하면 통신심의가 ‘심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심의의 필요성)의 문제라면, 방송심의는 ‘누가’,‘어떻게 할 것인가’(심의의 방법론)의 문제가 논의의 뼈대다. 때문에 그 동안 방송심의에 대한 논의는 ‘폐지’보다는 ‘개선’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 결과 방심위 해체 주장도 방송보다는 통신분야에서 주도적으로 제기되어왔다.
최근 들어 방송분야에서도 폐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MB정권을 통해 행정심의의 문제점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만큼 보다 큰 폭의 제도변화가 필요하다는 문제제기다. 일부 언론학자와 현업 언론인들은 방심위를 폐지하고, 방송사 자율심의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여전히 행정심의기구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남아있다. 시청자 단체들은 방송의 상업화가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사업자에게 심의를 맡겨서는 안 된다고 맞선다. 양쪽은 현행 방심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도 해결책에서는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3. 자율심의 강화를 통한 행정심의 축소방안 제안
그러나 행정심의냐 방송사 자율심의냐는 반드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OX퀴즈가 아니다. 이미 현실에서 행정심의제도와 자체 심의제도가 공존하고 있다. 이 두 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함으로써 행정심의의 병폐를 없애고, 자율심의를 활성화할 수 있는 이행방안을 찾아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제시하는 이행방안은 행정심의는 ‘최소심의’를 지향하며, 자율심의는 ‘사업자’ 심의가 아닌 ‘시청자 참여’ 심의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1) 방송사 전치주의 도입
행정심의 개선방안의 구체적인 목표는 ‘최소심의’의 구현이다. 방심위 출범 초기부터 언론시민사회단체들은 ‘최소심의’ 원칙을 지킬 것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그러나 더 이상 운영개선 문제로 방치해서는 해결이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법, 제도적으로 심의대상을 대폭 축소함으로써 방심위의 의지와 관계없이 ‘최소심의’를 강제하는 방안을 시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제안된 것이 방송사 전치주의의 도입이다. 방송사 전치주의는 시청자가 방심위에 민원을 제기하기 전에 해당 방송사의 민원처리절차를 거치도록 하자는 것이다. 방송사는 민원이 해결되지 않아 방심위로 넘어갈 경우 그 내용과 내부 심의기준에 따른 처리과정을 문서로 제출한다. 방심위는 민원인의 주장과 방송사의 불만처리내용을 근거로 심의규정 위반여부를 판단하도록 한다. 전치주의가 도입되면 필터링 역할을 통해 집단민원과 청부심의를 제어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2) 자체심의 강화와 시청자 민원처리제도 개선
방송사의 자체심의와 시청자 불만처리 제도를 개선하도록 유인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방송사는 심의와 시청자 담당부서를 한직으로 취급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방송심의 인력에 대한 미디어교육, 인권교육 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시청자 불만처리과정에서 시청자위원회의 참여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사 전치주의를 안착하고 자체심의를 강화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방송평가1에서 방심위의 심의결과를 반영하는 배점을 줄이고, 자체심의와 시청자 불만처리의 적절성을 평가하는 항목의 배점을 늘리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2 방송사 전치주의의 도입은 자율심의로 전환하는 과도기적 시험단계로 이해할 수 있다.
3) 위헌성 제거와 심의규정 축소
심의대상을 축소하기 위한 두 번째 방안은 심의규정 개정이다. 심의규정 개정은 행정심의의 위헌성을 제거하는 일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방송에 대한 행정심의 자체를 위헌으로 보긴 어렵다. 그러나 현행 방송심의규정은 명확성의 원칙과 과잉금지의 원칙에 벗어나 위헌의 소지가 높다.
3-1) 공정성 심의 폐지
공정성 조항은 자율규제로 이행해야 할 조항 중에 하나다. 방심위는 2008년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에 대하여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을 다루면서 일방의 견해만을 방송했다’는 이유로 ‘시청자에 대한 사과’ 명령을 내렸다. 이 때 적용한 공정성 조항과 함께 양심에 반하여 사과를 강제한 제재조치도 모두 위헌의 소지가 높다.
공정성 심의 자체에 대해서는 합헌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공정성 규정은 금지행위와 허용행위의 기준이 불명확해 위헌의 소지가 높다고 본다. 당시 <PD수첩>에 적용된 심의규정 9조 2항은 “관련 당사자의 의견을 균형있게 반영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균형성’을 상실하는 것인지 의미가 분명치 않다. 의미가 불분명하다는 것은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해외사례를 보면 프랑스의 경우 ‘산술적인 시간의 균형’을 중시하는 반면 영국은 불편부당성이 ‘균등한 시간의 배분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하여 각기 다르지만, 공정성 개념의 한계가 무엇인지 제시해 기준을 정하고 있다.
특히나 우리 방심위의 경우 정부여당에 의해 임명된 심의위원들이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방송에 대하여 공정성 심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크다. 정파적인 구성에 자의적 해석까지 더해지면서 사실상 언론에 대한 국가권력의 개입을 허용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실제 방심위 출범 이후 작년(2010년)까지 이 조항에 의해 제재조치를 받은 지상파프로그램만 16건에 이르는데 방송의 내용은 대부분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보도였다.3 이런 폐단을 줄이기 위해 공정성 심의는 행정심의를 폐지하고 방송사 자체 강령과 제작 가이드라인에 따라 프로그램의 제작과 구성에 하자가 없는지 살피는 자율심의의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2) 위헌적 심의규정 폐지
현행 심의규정에는 공정성 조항 말고도 위헌적 내용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27조 품위유지가 대표적인 예다. 지난 9월 방심위는 MBC <무한도전>이 “과도한 고성과 저속한 표현으로 청소년의 바른 언어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으며, 맨 엉덩이를 때리는 모습은 방송의 품위를 저해했다”며 이 조항을 적용해 징계했다. 이 조항의 2항은 “저속한 표현으로 혐오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어지는 28조는 건전한 생활기풍이다. 이 조항은 방송사에게 ‘음란, 퇴폐, 허례허식, 사치, 낭비 등을 신중히 다룰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저속함’, ‘혐오감’은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이다. 또 무엇이 퇴폐인지, 어디까지 사치인지 객관적 기준이 없다. 결국 자의적 해석이 개입하게 된다.
현행 심의규정으로는 언제든 모든 방송이 심의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런 위헌적 규정을 토대로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규제해서는 안 된다. 방심위의 비상식적인 심의가 나올 때마다 심의위원의 수준을 비난하지만 무식하고, 꼰대 같은 심의도 적용 가능한 조항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행 심의규정 중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나는 심의규정은 폐지해 심의규정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 또한 심의의 자의성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주요한 심의규제 내용은 방송법에서 직접 규정해야 한다. 방송법 시행령도 아닌 방심위가 자의적으로 제정한 ‘심의 규정’에 근거하여 심의하고 제재하는 것은 행정권에 의한 언론 통제이기 때문이다.
3-3) 사회적 합의를 통한 어린이‧청소년보호 심의규정 개선
다만, 어린이‧청소년 보호를 위한 선정성, 폭력성, 인권과 관련된 조항들은 체계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해당 심의규정을 개정할 때는 어린이단체, 청소년 보호단체, 여성단체, 학부모단체, 청소년단체, 미디어 전문가들이 참여하도록 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4
4. 시청자 참여와 자율규제 거버넌스 확립
행정심의를 축소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는 자율심의제도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확보하는 일이다. 자율심의가 자리를 잡으면 행정심의는 자연히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방송현업자들은 행정심의제도의 부당성을 강조하는데만 몰두하고 있다. 그들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행정심의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율심의로 전환한다고 해서 정치적 독립이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권 동안 각 방송사에서 발생한 불방사태, 방영연기, 프로그램 간섭 등의 사건은 방송사의 지배구조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정권에 대한 각종 찬양방송은 내부 심의절차를 정상적으로 거쳐 수년간 전파를 낭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행정심의제도나 방송사 자율심의나 별반 다를 게 없다.
방송사의 자정능력도 의심스럽다. 종편도입과 직접 광고영업에 따라 더욱 치열한 광고시장에 노출된 방송사들이 경제적 이익 앞에서 공익유지를 위한 자율규제에 최선을 다할지도 물음표다. 영화 <트루맛쇼>의 폭로와 이에 대한 방송사업자의 대응을 보면 방송사가 공익의 담보자이기에 앞서 이윤을 추구하는 시장행위자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5 미국방송협회(NAB)의 자율규제 실태를 분석한 한 연구자는 “독점적 지위의 자율규제 기구는 필히 사익 증대 관점에서 지대추구 행위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놓기도 했다.6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방송사업자나 그 단체들이 독점하는 방식의 자율심의 전환에는 동의하기 어렵다.7
대신 방송사에 의한 자율심의와 시청자가 참여하는 타율심의를 결합하는 방식의 민주적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방송사의 자율심의에는 노동조합 등 내부 현업단체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일례로 일부 방송사들이 운영하고 있는 노사 공정방송협의체를 보도프로그램에 대한 민원처리과정에 포함시키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BBC모델이 참조할만하다. BBC는 뉴스에 대한 시청자불만처리과정을 총 3단계로 운영하는데, 2단계에서 BBC내부 구성원으로 구성된 BBC Editional Committee(보도편집심의위원회)가 심의를 담당한다. 공정방송협의체를 이 단계에 적용해볼 만하다.
시청자의 참여는 현행 법정기구인 시청자위원회의 권한8과 기능을 실질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임명하는 선임방식을 개정해 위원회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상임위원의 도입을 통해 위원회가 일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청자위원회는 방송사 내부에서 자체심의와 시청자 민원처리 제도의 운영을 감시, 견제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이렇게 내부제도를 강화하게 되면 행정기구에 의한 외부규제를 상당히 축소할 수 있고, 부당한 규제에 대해서도 대응력을 키울 수 있다. 물론 이런 내부심의제도를 갖추기 위해서는 방송 사업자–현업자-시청자 사이의 합의와 상호노력이 필요하다.
1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사 재허가 심사 때 방송평가를 시행하고 그 결과를 공표해야 한다.
2현행 방송평가에서 지상파TV의 자체심의 운영 및 결과평가 배점은 25점, 방송심의규정 준수여부 100점, 시청자불만처리의 적절성 평가 30점
32008년에서 2010년 사이 공정성 위반으로 제재조치를 받은 보도의 주제 (총16건)
: 미국산 쇠고기 수입(2건), 언론장악 비판(미디어법, YTN비판 등, 10건), 천안함(1건), 4대강(1건), KTX승무원 투쟁(1건), 월드컵중계권(1건), KBS 9뉴스 화면조작(1건)
4최영묵, <위헌적 미디어 검열기관, 재편이냐, 폐지냐?>, 미디어커뮤니케이션네트워크 토론회 발제문
5지상파방송사들은 <트루맛쇼>를 통해 맛집프로그램의 추악한 실태 – 브로커 개입과 돈거래, 가짜손님동원 등 –가 폭로된 뒤에도 자체심의를 통한 문제해결에 나서기는커녕 사건을 덮고 자사를 변호하기에 급급했다.
6오구스(Ogus, 1995)
7유료채널의 경우 원칙적으로는 자율심의로 전환하는 게 맞다. 그러나 지상파방송의 직접수신 환경이 조성되지 않아 90% 정도의 시청자가구가 유료방송에 가입하고 있고, 채널선택권도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 완전자율심의로의 전환은 시기상조다. 유무료 방송시장이 뚜렷이 획정되고, 시청자들의 채널선택권이 다양하게 보장될 때까지는 위에서 제안내용과 같이 개선된 규정에 의한 행정심의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종합편성채널 역시 의무재송신 지위가 유지되는 한 지상파채널과 동일하게 규제해야 한다.
8현행 방송법은 시청자위원회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시청자위원회는 방송사의 편성은 물론 프로그램의 내용, 나아가 방송사의 자체심의규정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하고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시청자위원회의 방송프로그램 평가는 재허가시 방송평가에 반영된다. 방송사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시청자위원회의 요구를 수용하여야 한다. 시청자위원회는 방송사가 수용을 부당하게 거부할 경우 방송통신위원회에 불만처리를 요청할 수도 있다.
2011-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