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네트워커

호연지기란 무엇인가

By 2004/02/20 10월 29th, 2016 No Comments

박석준의 컴퓨터 앞의 건강

박석준

제시대에 나온 어떤 잡지의 창간호 표지를 본다. 근육질의 남자가 지구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날카로운 칼을 들고 찌르려 한다. 그 뒤로는 전 우주가 소용돌이치면서 휘돌고 있다. 이 그림은 나에게 늘 ‘호연지기(浩然之氣)’라는 말을 떠올린다.

‘호연지기’는 <맹자>에 나오는 말이다. ‘호연’은 크게 왕성한 기운이 흘러가는 것을 말한다. 바람 부는 광활한 대지를 바라보거나 파도가 출렁이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면서, 혹은 높은 산에 올라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보거나 천하, 곧 하늘 아래를 내려볼 때의 느낌이 이와 비슷할 것이다.

기는 내 몸을 채운 것이다. 나아가 세계가 모두 기라고 본다면 기는 세계를 채운 것이다. 그렇지만 이 기는 채운 채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기를 기운(氣運)이라고도 하는 것처럼 기는 운행되는 것, 곧 일정한 법칙을 갖고 흘러가는 것이며 그런 흐름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만일 백두산에 올라 광풍이 휘몰아치다 갑자기 구름 사이로 드러난 천지의 모습을 보면서 아무런 느낌을 갖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기가 없는 사람이다.

기는 서로를 느끼는 것이다. 자연을 대하고 느끼든 사람을 대하고 느끼든, 아니면 마음으로만 느끼든 느끼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의 관계에서는 그 느낌을 주는 대상과 나 사이에 일정한 관계가 생긴다. 대상의 기가 너무 크면 내 기는 상대적으로 위축된다. 찬바람이 어느 정도 찰 때는 누구나 다 견디지만 너무 추워지면 견디기 어렵다. 나아가 병까지 걸리게 된다. 이처럼 기의 세계에서는 일종의 힘의 관계가 생기게 된다. 이런 점에서 자연의 기를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리고 자연과 잘 대하기 위해서는 내 몸의 기를 잘 기를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호연지기는 자연과 사람의 관계에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생긴다. 호연지기를 사람 사는 일에서 찾자면 무엇이 될까. 그것은 한 마디로 배포(排布) 혹은 배짱이 될 것이다(충북대 정세연 교수의 견해).

배포는 내 몸 안의 기를 밖으로 밀어내 펼치는 것이다. 배짱은 마음속으로 다져 먹은 생각이나 태도가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일도 배포가 맞아야 함께 할 수 있고 배짱이 두둑해야 어떤 일이라도 밀고 나갈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내 기와 상대의 기가 맞아야 한다. 상대의 기에 밀리면 그 순간 게임은 끝난 것이다.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유유히 떠도는 구름처럼 자연과 몸의 기가 하나 되어, 그리고 다른 사람과 배포가 맞고 배짱이 맞아서, 상대의 기와 하나 되어 운행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호연지기라고 할만하다. 그러므로 기를 지극히 크고 강하게, 올곧게 기르기만 한다면, 그리고 어떤 손상도 받지 않는다면 그 기는 내 몸을 꽉 채워 어떤 병에도 걸리지 않게 하고 사람 사이의 관계도 건강하게 만든다. 나아가 그 기는 온 세계를 다 채우게 되므로 호연지기를 갖는다는 것은 곧 세계를 얻는 것이다.

올 새해, 산에 올라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내 배포를 키워보는 것은 어떨까. 누가 아는가. 내 기가 커져서, 지구를 한 손에 들 수 있을지.

 

2004-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