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네트워커

사이버에서 반복되는 현실들

By 2004/02/20 10월 29th, 2016 No Comments

사이버 페미니즘

조지혜

칼럼을 써보라는 부탁을 받고 처음에는, 온라인으로 조립식 컴퓨터를 주문한 뒤, ‘아니나 다를까’ 꼭 필요한 소모품을 빠뜨려 재주문을 하고, 드라이브 인식이 안 되어, 손에는 십자드라이버를, 품에는 본체를 끌어안고 밤새 끙끙거리고, OS를 깔다가 실수하여 다시 포맷을 하는 최근 몇 일간의 거듭된 ‘삽질’ 이야기를 쓸까 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을 엮어나가고 있는 와중에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뭐지? 이 수상한 기시감은?

스스로를 ‘컴맹’의 수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나 역시 어깨 너머로 보고 곳곳에서 주워들은 지식들을 내 것인양 하기에는 늘 몇 프로 부족하다(라고 생각한다). 컴퓨터가 쉽다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문제가 생기면 쩔쩔매다 주변의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대는 나의 사례는 곧 사이버 페미니즘이 태동하게 된 바로 그 현상들에 겹쳐진다. 내 사례의 돌파구를 찾아주는 주변의 지인들이란 대부분 ‘여전히’ 남성들이므로.

최근 들어서는 사이버 페미니즘에 대한 강연을 부탁 받는 일도 잦아졌다. 딱히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딱히 지금에 와서 높아져서’라기보다는, 배설구를 찾는 낭인들의 무법천지가 되어가기 좋은 인터넷 공간에서 이제는 공동체 나름의 질서를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움직임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런데 사이버 페미니즘 강연을 가기 위해서 책도 들춰보고 최근의 사례들도 살펴보며 준비하다 보면 또 묘한 기시감에 시달리곤 한다. 이것 역시 무엇일까.

내가 언니네를 운영하며 겪어온 이야기들, 그 찰거머리같은 플래이머(flamer)들과 겪었던 일들이나 쓸데없는 싸움을 하지 않기 위해 여러 차례 고쳐가며 만들어갔던 규약에 대한 이야기들. 이는 사이버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시작된 시기부터 지금까지의 꾸준한 쟁점이었다. 여전히 문제점으로 남아있는 현재에는 더욱 더 많은 논점들로 뻗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왜 도대체 나아지지 않는 거냐?’라고 질문할 것인가? 그러나 어떤 측면에서 문제가 계속 된다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일지도 모른다. 인터넷 사용자가 인지 능력이 있는 어린아이부터 모니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호호백발 노인들에 이르는 요즈음. ‘네티즌’이라는 말도 흘러간 유행처럼 되어버린 이 마당에, 인터넷은, 아니 인터넷의 그 어떤 대단한 공간들은 아주 절대적인 그 ‘어떤’ 것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코로 숨쉬는 환경을 생각하듯이 인터넷 환경을 대하는 태도일지 모른다.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만나는 치한을 만났을 때처럼, 여성을 비하하는 욕설이 올라오는 게시판들을 대하라는 거냐고? 그래봐야 기분은 나아지지 않겠지만, 적어도 치한을 만났을 때 대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라는 것을 생각할 수는 있겠다. 사이버 페미니즘에 대한 기시감을 떨쳐버리고 다양성을 찾아야 할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왜?’가 아니라 일상에서 찾는 ‘어떻게?’가 아닐까.

2004-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