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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메일 감청 여부, 국정원과 법원이 답하라

By 2011/09/19 11월 3rd, 2016 No Comments
지난 금요일, 국가정보원의 지메일 감청 소식이 트위터를 휩쓸었다. 지난 3월 29일 인권단체들이 제기한 ‘패킷 감청’ 헌법소원에 대하여 답변하는 과정에서, 국정원이 지메일 등 외국계 이메일 감청을 실시해온 정황이 한겨레, 참세상 등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트위터에서는 지메일 감청 소식에 대한 충격감 토로와 더불어, https 프로토콜을 사용하는 지메일 감청이 가능한지에 대한 토론이 계속되고 있다. 국정원은 통신 프로토콜이 암호화된 지메일을 정말 감청하였을까? 이것이 사실이라면 국제적으로 큰 논란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국정원이 답변서를 통해 밝힌 사실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2009년 6월 국정원은 패킷 감청으로 지메일 내용을 지득하여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였다. 다만 이 시점에 대상자의 지메일이 https 프로토콜로 암호화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구글 지메일이 https를 기본 설정으로 채택한 것은 2010년 1월부터이기 때문이다. 둘째, 2010년 12월 국정원은 법원에 패킷 감청에 대한 허가를 청구하면서 그 사유로 대상자의 지메일을 감청하려는 것이라고 기재하였다. 법원은 이 사유를 인정하고 패킷 감청을 허가하였다. 다만 이번 패킷 감청 결과 국정원이 지득한 지메일의 내용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결국 암호화된 지메일을 감청할 수 있다는 것은 2010년 12월 국정원이 법원에 대하여 주장한 내용이다. 따라서 지메일 감청이 정말로 가능한지 여부는 지메일 감청을 명분으로 패킷 감청을 청구한 국정원이나 그것을 허용한 법원이 답변할 문제이다. 만의 하나, 국정원이 지메일 감청을 못하면서 영장을 청구하였다면 법원에 대하여 거짓을 말한 것이고, 법원이 거짓에 근거하여 영장을 발부하였으면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욱 큰 문제는 국정원이 사이버 망명에 대처하기 위하여 앞으로도 이와 같은 감청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국정원은 위 답변서에서 “[감청 대상자들이] 우리나라의 수사권이 미치지 않는 외국계 이메일(Gmail, Hotmail)이나 비밀 게시판 등을 사용하는 등 소위 ‘사이버 망명’을 조직적으로 시도하고 있으며 … 이에 대한 대처를 위해서도 인터넷회선 감청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최근 사이버 망명이 늘어난 것은, 국내 이메일이 인터넷 실명제로 인하여 대상자 특정이 손쉽고 사업자로부터 감청 협조를 얻어내기가 매우 용이하다는 점을 정보수사기관들이 악용해 왔기 때문이다. 패킷 감청은 역사상 가장 인권침해적인 통신 감청 수법이다.
 
인터넷 전용회선 전체를 실시간으로 감청하는 패킷 감청은 ‘포괄적 백지 영장’이다. 유비쿼터스 시대에 누군가의 인터넷을 감청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터넷으로 대화하고, 친교하고, 독서하고, 문화예술을 감상하고, 쇼핑할 뿐 아니라 은행거래도 한다. 게다가 패킷 감청은 다른 감청과 달리 피의자와 대상을 특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나의 회선을 여러 사람이나 여러 대의 컴퓨터가 공유하는 현재의 인터넷 환경 하에서, 현재 인터넷 회선을 사용하는 사람이 피의자인지 여부가 확실하지 않다. 이러한 이유에서 패킷감청을 통한 자료가 공개재판에서 피의자 범죄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자료나 수사자료로서 제출된 바가 거의 없다. 결국 정보수사기관이 패킷감청을 하는 것은 범죄수사를 위한 증거수집이 아니라 사찰과 감시를 위한 광범위한 정보수집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 통계상으로 국정원은 대한민국 전체 감청의 97%를 집행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보수사기관의 특성상 많은 실태가 비밀에 싸여 있다. 우리는 아직도 패킷 감청이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다. 감청 기관의 감청이 적절하게 통제되고 있는지 국회도, 법원도, 이 나라 어느 누구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무소불위의 비밀 권력이 또 있겠는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국민의 통신의 비밀과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패킷감청을 금지함이 마땅하다.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권력이 함부로 개인의 통신의 비밀을 이토록 마구 침해하는 일은 근절되어야 한다.
 
*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 미디어오늘 2011년 9월 21일자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1-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