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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을 다른 사람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개 라이선스… 왜 필요한가?{/}“이곳의 창작물은 ~ 거저 쓸 수 있습니다”

By 2004/02/20 10월 29th, 2016 No Comments

집중분석

오병일

최근 사진 사이트에 올라온 디지털 사진을 창작자의 허락 없이 퍼다가 포스터에 이용했다는 이유로 모 운동단체가 곤욕을 치른 일이 있다. 이런 사이트들 대부분은 아마추어 이용자들이 디지털 사진기로 찍은 후 서로 감상하기 위해 운영되는 곳으로, 문제가 된 사진의 작가 역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본인의 허락 없이’ 정치적 목적으로 자신의 사진을 이용했다는 사실이 기분 나빴다고 밝혔다.

저작권은 어떠한 창작물이 창작되는 즉시 부여된다. 특허와 같이 저작권을 보호받기 위해서 관공서에 등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작권이 있다고 해서 모든 창작자가 ‘경제적 보상’을 목적으로 하거나, 다른 사람이 자신의 저작물을 이용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 이용자 측면에서 보면 곤란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어떤 저작물을 자유롭게 이용해도 되는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물론 창작자에게 연락을 해서 허락을 받는 것이 제일 간단하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이 들고, 때로는 창작자를 찾을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차라리 미리 창작자가 저작물의 이용 조건을 명시해주면 어떨까? 이렇게 말이다. 한겨레 신문의 신기섭 기자가 운영하는 ‘밑에서 본 세상(http://user.chollian.net/~marishin)’ 홈페이지 하단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있다. ‘이곳에 있는 `신기섭의 창작물은 돈벌이나 사람을 억압하는 데가 아니면 누구든 거저 쓸 수 있습니다.’

저작물의 자유로운 소통을 위한 라이선스
지난 12월 17일, 출판문화회관에서는 정보공유연대 IPLeft(이하 정보공유연대)가 주최하는 토론회가 있었다. 이날 ‘국내외 정보공유운동 모델과 Open Access License’ 토론회에서는 정보공유를 위한 국내외의 실험들이 음악, 영상, 사진 등 인터넷 콘텐츠 분야와 학술 분야로 나누어 소개됐고, 이들이 이용하고 있는 다양한 라이선스도 함께 소개됐다. (http://ipleft.or.kr 자료실 참고)

‘라이선스’란 창작자와 이용자 사이에 이뤄지는 일종의 ‘계약’이다. 상용 소프트웨어를 살 때, 우리는 소프트웨어 제작 회사가 요구하는 라이선스가 붙어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즉 구매한 소프트웨어를 어떠한 조건에서 이용할 수 있는지를 (예를 들어 몇 개의 컴퓨터에 설치할 수 있는지,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있을 때 책임 소재는 어떠한지 등) 명시한 것이다.

카피레프트(Copyleft) 운동은 이런 라이선스를 응용해서 내가 창작한 저작물을 다른 사람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GPL(General Public License)이다. GPL 라이선스는 자신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복사·수정·재배포할 수 있지만, 만약 이를 수정해서 재배포할 경우에는 수정된 소프트웨어 역시 GPL 라이선스를 따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GPL 라이선스는 GNU 프로젝트를 통해서 이미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외의 영역에서는 이와 같은 정보공유 공동체가 아직 미약한 상황이다. 이번 토론회는 다른 콘텐츠 영역에서 시도되고 있는 정보공유의 실험을 활성화해 정보공유 공동체의 영역을 넓혀나가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정보공유를 통해 정보접근의 폭을 넓혀나기는 실험들
이런 실험은 창작자의 독점적 권리를 강화해 가고 있는 저작권법에 대한 비판과 함께, 창작자와 이용자 공동체가 자발적으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을 넓힘으로써, 정보사회에서의 정보접근과 향유의 폭을 넓혀간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정보공유연대의 김인수씨는 토론회의 목적은 ‘저작물을 단순히 기술적으로 편리하게 공유하는 방법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개방적이고, 자발적이며, 집단적인 (정보공유의) 실천들을 이끌어 낼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이러한 실천들을 이끌어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날 토론자로 나온 작곡가 유인혁씨는 단순히 이용자의 권리나 공공의 이익만을 얘기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음악인들에게 설득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공유의 실험이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좀 더 섬세한 논리와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술 분야는 정보공유 운동 모델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는 편인데, 왜냐하면 대부분의 학술논문 저자들이 ‘경제적 이득’보다는 ‘이용과 인용’, 즉 인용을 통한 자신의 학술성과에 대한 권위의 획득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분야 역시, 창작자의 생계 문제가 상대적으로 문제가 덜 되는 영역의 하나이다. 반면 음악이나 영화 분야는 창작을 위한 비용도 많이 들고,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많은 사람들(작곡가, 작사가, 연주자, 가수 등)이 연관되어 있으며, 많은 경우 전업 창작자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어서 ‘경제적 이득’에 민감하다.

정보공유연대는 토론회 이후에 국내법과 우리 실정에 맞는 공개 라이선스를 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미 해외에는 몇 개의 공개 라이선스가 개발돼 활용되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소개돼 있지만, 국내법에 맞게 수정된 라이선스는 없기 때문에 우리실정에 맞는 공개 라이선스의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라이선스의 개발을 위해 실제 창작자 집단이나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각 콘텐츠 영역에서 정보공유의 실험을 해나갈 예정이다. 2004년에는 이들의 실험이 어떠한 열매를 맺게될지 기대해봐야 할 것 같다.

2004-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