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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십대에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던 방법

By 2004/02/20 10월 29th, 2016 No Comments

메신저

제리

중학교 2학년 때, PC통신 대화방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겨하곤 했다. 어느 날 채팅을 하다가 우연히 한 사람을 만났다. 그 대화방은 어떤 무료공연의 홍보를 위해 개설된 방이었다. 나는 그 사람으로부터 대학로에서 하는 콘서트에 오라는 초대를 받았고, 정말 공연을 보러 갔다. 대화방에서 만난 그 사람은 음향 엔지니어였고 한 음향 회사의 사장이었다.

우연히 대화방에서 만난 음향 엔지니어 덕에 공연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점점 가까워져서 함께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난 음악에 빠져들고 있었고, 기계 만지는 것을 좋아했던 터라 그렇게 음향 엔지니어의 현장에 첫 발을 들일 기회를 얻었다.

학교 공부보다 음향 기사라 불리는 음향 엔지니어에 더 관심 있었던 난 여러 콘서트 장을 전전하며 현장에서 음향을 공부하는 한편, 인터넷을 통해 음향에 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음향 장비를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 유학 관련 정보를 다루는 홈페이지, 음향 아카데미 홈페이지, 협회와 녹음실, 공연장의 사이트뿐만 아니라 음향 학도들의 개인 홈페이지에 이르기까지 여러 유용한 정보들을 접할 수 있었다.

나는 학교라는 사회와는 격리된 특수한 사회의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도 집에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으면 국·영·수를 공부하는 중학생이 아니라 음향학도가 되었다.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채팅으로 만난 그 엔지니어를 따라, 학교가 파하면 놀러 가는 대신 곧장 공연장으로 향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포털 업체들의 커뮤니티 전쟁이 시작되기 전,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음향 학도들이 모인 커뮤니티를 알게 되었다. 그 때 ‘정모’란 것을 처음 나가봤다. 운영자가 매달 현직 음향 엔지니어들을 초청해 오프라인에서 세미나를 열면서, 음악 공부를 위해 매달 참가하게 되었다. 뒤풀이를 하며 서로 인사하고 공통된 관심사인 음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 나이를 묻는 분위기가 됐다. 나보고 물었다.

“띠가 무슨 띠에요?”
“돼지띠요.”
“어, 그래요? 음. 아직 서른은 안돼 보이는데!!”

이건 비단 내 외모가 삭았기(?) 때문만은 아닐 거다. 십대가 이렇게 자기의 관심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상상을 못했기 때문일거다. 나보다 한두 살 많은 고3의 십대들도 한두 명 있었지만 나는 우리 커뮤니티의 최연소 회원으로 막내였다.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다른 음향학도들도 만나게 되고 현직 음향 엔지니어들과도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후에 회원들이 함께 창업한 음악 교육 벤처 회사에서도 자잘한 일을 도우면서 함께 할 수 있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나의 조금 다른 십대 시절은 인터넷을 통해서,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서, ‘학교에서의 나’와는 별개의 세계를 가질 수 있었다. 이젠 관심사에 따라 더욱 많아지고 접하기도 쉬워진 커뮤니티들. 지금도 많은 십대들이 울타리 안에서 막힌 숨을 그 안에서 트고 있다.

2004-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