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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을 넘어선 문화생산은 가능한가?

By 2011/07/21 No Comments
오병일

저작권을 넘어선 문화생산은 가능한가?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정보공유연대 IPLeft 활동가)

 

비카인드리와인드<비카인드 리와인드 (Be Kind Rewind)>라는 영화가 있다. 발전소에서 감전 사고를 당한 후 온 몸이 자석이 된 제리, 그로 인해 친구 마이크가 점원으로 일하고 있던 비디오 가게의 비디오가 전부 지워져 버리고 만다. 이 사실을 숨기고 비디오를 대여하기 위해 그는 마이크와 함께 직접 즉흥적으로 영화를 찍어간다. 스스로 주연과 조연이 되어 <백 투 더 퓨처>, <로보캅>, <킹콩> 등 유명 영화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찍어가는데, 이들의 영화는 오히려 마을 주민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게 된다. 그러나 이들이 만든 영화는 결국 저작권법 위반으로 폐기되고 마는데… 이 영화는 한 마을의 소규모 비디오 대여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풍경은 인터넷 시대에 저작권에 짓눌린 지금 우리네 삶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수용자가 스스로 영화를 만드는 즐거움, 문화 창작자와 수용자가 어우러지는 공동체는 사라지고, 우리를 그저 문화상품의 소비자로 만들어버리는 메트릭스같은 시스템.

 

저작권 vs 이용자의 권리

이미 관객 1000만을 넘어서는 대박을 터트린 영화 <해운대>의 불법복제물이 유통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심각한 범죄’ 운운하며 전 국가적인 관심이 쏟아지지만, 저작권에 의한 일상적인 이용자 권리 침해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지난 2009년 6월, 딸 아이가 손담비의 ‘미쳤어’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는 동영상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가, 저작권 침해로 삭제를 요구당한 사례는 이례적인 것이 아니다. 2005년에 KBS의 인기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팬 카페에 올려진 동영상과 사진이 KBS의 요구에 의해 삭제가 된 바 있고, 지금도 방송사들의 요구로 방송프로그램 캡쳐화면이 포함된 블로그 포스팅들이 사라지고 있다. 자기 활동과 관련된 기사를 홈페이지에 올렸다는 이유로 시민사회단체들조차 법무법인으로부터 소송의 위협에 시달리는가 하면, 수많은 네티즌들이 저작권 단속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홈페이지나 블로그의 배경음악을 서둘러 삭제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이처럼 이용자에게 저작권은 한편으론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용자들이 정말 잘못한 것일까? 그 두려움은 범죄자들이 가져야 마땅한 감정일 뿐인가? 이용자들은 무언가를 ‘훔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표현’하고 ‘소통’했을 뿐이다. 오프라인에서도 그렇지만, 온라인에서도 시민들의 소통은 공개된 문화생산물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어제 방영되었던 드라마에 대해 친구들과 수다를 떨듯이, 온라인에서도 그렇게 자신의 의견을 풀어놓을 뿐이다. 다만, 온라인에서는 그 대상물을 바로 ‘복제’해서 이용할 수 있다는 점만 다를 뿐…그러나, 복제기술 발전으로 가능해진 이러한 능력이 비난받아야할 이유가 있는가? 친구와 드라마에 대한 수다를 떨기 위해 방송사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과거 저작권 침해에 대한 단속은 용산 전자상가의 불법CD나 길거리의 불법 음악테이프와 같이 주로 ‘영리를 목적으로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제 저작권은 ‘모든’ 시민들의, ‘비영리적 표현이나 상호 소통’을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당장의 먹고사니즘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어서 그럴까? 아니면 저작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그만큼 강력해서일까? 어쩌면 권리자들은 이미 ‘저작권협회’와 같은 신탁단체로 조직화되어 있거나, 음반사나 영화사와 같이 막강한 자본력을 가지고 있는 반면, 이용자들은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조건이어서 일 수도 있다. 어쨌든 웹하드를 통해 영화 파일이 유통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문화적 소통을 규제하는 근거는 될 수 없다. 문화 생산물을 매개로 한 상호 소통이 배제된다면, 문화상품에 대한 소비밖에 남는 것이 없을 것이다. 저작권자들은 그것을 원하는 것일까?

 

저작권은 문화, 지식에 대한 통제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문화상품의 소비자들이 그것을 개별적으로 향유하는 것을 넘어, 그 문화상품을 지지고 볶거나 다른 사람과 주고받기 시작하는 순간 권리자들의 통제권은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저작권은 창작자에게 자신이 창작한 저작물을 복제, 배포할 수 있는 통제권을 주는 것이다. 물론 공정이용 조항을 통해 그러한 통제권을 일부 제한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권리자는 그러한 통제권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과거에 설정된 통제권을 강화하거나 약화시키며, 이와 같은 통제권을 어떻게 재설정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는 여러 유료 음악 서비스의 하나가 되었지만, 2000년대 초반 ‘소리바다’는 (사실상 당시 인터넷 이용자 전체라고 할 수 있는) 200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소리바다는 단지 음반 구매 비용을 아끼려는 이기적인 소비자들의 해적질을 도와주는 도구였을 뿐일까?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 그것은 시장성이 없어 더 이상 유통되지 않는 오래된 음악, 국내에 수입되지 않는 해외 음악, 그리고 인디 음악 등을 접할 수 있는 음악의 보고(寶庫)였으며,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음악에 대해 나누는 커뮤니티였다. 비록 소리바다를 통해 유통되는 음악의 주류가 당시의 히트 음반이었다 할지라도,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즉, 권리자(공급자)에 의해 통제되는 시장을 통하지 않고 이용자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향유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된 것이다. 음반-유통 자본은 국악이나 비주류 쟝르와 같이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음악은 제작하거나 판매하지 않는다. 비록 일부의 사람들은 그것을 원하더라도 말이다. 소비자들은 상품을 구매하거나 하지 않는 방식으로만 공급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소리바다와 같은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이용자들은 시장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원하는 음악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저작권법을 무기로 한 권리자들의 공격에 의해 그 기술과 서비스는 가능하지만 의미없는 것이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다시 얘기하지만, 이는 단지 어떤 저작물을 무료로 향유하는가, 돈을 내고 향유하는가의 문제는 아니다. 예를 들어, IPTV에서 제공하는 VOD 영화 목록은 수시로 바뀐다. 새로운 영화가 추가되기도 하지만, 기존에 서비스되던 영화가 사라지기도 한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데이터베이스에 포함된 디지털 저작물을 삭제할 이유가 없고, 나는 돈을 내고라도 시청할 용의가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수익 극대화에 맞춰진 IPTV 사업자와 권리자간의 계약서에는 이와 같은 나의 의향이 별로 고려되지 않는다.

최근 북스캔 서비스를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다. 북스캔 서비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종이책을 보내주면 전자책으로 만들어주는 서비스인데, 만들어진 전자책을 공중에 공개하는 것이 아님에도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를 저작권 위반으로 해석을 한 것이다. 이용자들이 ‘돈을 주고’ 얻은 저작물조차 어떤 방식으로 향유해야 하는지 통제한다. 자신들이 시장에 공급할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이용자 스스로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노력에도 재를 뿌리는 식이다.

이미 기술은 이용자들의 욕구를 쉽게, 그리고 상호간의 협력을 통해 충족시킬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였다. 사람들은 이 기술과 서비스를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대로 향유하고자 한다. 시장에 더 이상 공급되지 않는 저작물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구하거나, 전자책으로 변환하여 태블릿 PC에서 읽고자 한다. 마음에 드는 음악이 있으면 이를 변형해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고, 다양한 음악을 섞어 새로운 음악을 창작하기도 한다. 영화 ‘스타워즈’의 편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신만의 편집본을 만들 수도 있다. 단지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비틀고,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 진정한 문화 아니던가?

 

저작권은 보호되지만 창작(노동)자는 보호되지 않는 희안한 현실

"현재 저작권과 관련한 체제는 정보로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고 그럼으로써 상호간의 소통 그리고 문화적 교류까지도 차단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중략)…저작권 소유자라 불리는 사람들은 대개 예술가나 작가가 아닌 경우가 많죠. 그를 소유하고 있는 것은 주로 대기업 등으로 창작자의 이름을 무기로 삼아 권리를 남용하고 있습니다…(중략)…제 생각에는 저작권이 창작자에 대한 보상에 있어서 오히려 가장 좋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지난 2010년 말 한국을 방한한 스웨덴 해적당 소속 유럽의회 의원인 아멜리아 앤더스도터(Amelia Andersdotter)의 주장이다.

 굿다운로드캠페인 이미지

‘굿 다운로더 캠페인’을 위해 만들어진 한 홍보 영상물을 보면, 영화를 만드는데 감독과 배우뿐만 아니라 촬영, 의상, 조명, 스턴트 등 수많은 스텝들의 땀과 노력이 들어가있으며 정당한 다운로드로 이들의 꿈과 희망을 지켜주자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한 언론기사에 따르면, 영화 종사자의 평균 연 수입은 고작 1221만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막내급 수습의 연 수입은 300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과연 이것이 단지 불법복제 때문일까? 2011년 초, 시나리오 작가 고 최고은씨의 죽음이 예외적인 상황이 아님은 우리는 알고 있다. 또한, 지난 2007년 말에 무려 3개월 동안 지속된 ‘미국작가조합’(Writer Guild of America)의 파업은 창작노동자에 대한 착취 문제가 비단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상황이 아님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소규모 창작자의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010년 말 일인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음원 수익의 불공정한 배분 문제가 이슈가 된 바 있다. 멜론, 엠넷 등 음원 사이트나 벨소리나 통화연결음을 제공하는 이동통신사가 수익의 50% 이상을 가져가고, 나머지의 상당 부분은 음반사, 기획사가 가져가는 구조 속에서 실제 창작자인 작곡가나 실연자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독립적인 창작자들에게 더 큰 문제는 대중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 자체가 막혀있다는 점일 것이다. 2011년 6월 개봉한 <트랜스포머3>가 전체 상영관의 75%를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소수의 거대 문화 자본은 막강한 자본력을 동원하여 대중들의 눈과 귀에 다가갈 통로를 독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승자독식의 구조는 문화 시장이 세계화될수록 심화된다. 불법복제로 인해 손해를 보았다는 하소연도 이들의 얘기일 뿐, 시장에 제대로 접근조차 되지 않는 대다수의 문화 창작자 입장에서는 먼 얘기일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문화 자본의 세계화와 소수 거대 문화 자본의 시장 장악, 창작자에게 불리한 수익구조, 저작권의 세계화, 문화적 다양성의 훼손 등이 동떨어진 문제는 아닐 것이다.

 

대안적 생산방식에 주목

현행 저작권법은,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 이용자의 자유로운 향유와 소통을 가로막고 있다. 더불어 대다수 창작자의 노동에 보상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 역시 아니다. 물론 유통의 독점 문제나 수익 배분의 문제는 저작권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즉, 현행 저작권 체제 내에서도 그 자체로 개선의 여지가 있고, 그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저작권의 문제 역시 단순히 저작권법의 문제가 아니라, 저작권에 근거한 문화 생산 체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문화 생산물을 시장을 통해 상품화하고 그 결과에 따라 보상을 받는 체제이며, 여타 자본주의 산업부문과 마찬가지로 문화-유통 자본의 독점은 그 필연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저작권에 대한 대안도 단지 저작권법을 바꾸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훨씬 복잡해진다. 즉, 한 사회에서 문화의 생산과 향유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설계하는 문제이고, 이는 사회의 다양한 층위에서,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다양한 대안이 제기될 수 있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한 사회의 복지 체제와 연결될 수도 있다. 만일 누구나 기본적인 최소 생계에 대한 걱정없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의 복지 체제가 마련되어 있다면, 창작 노동에 대한 보상을 어떻게 할 것인지와 별개로, 지속적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창작자들이 보다 많아질 것이다. 보편적 복지와 더불어 창작자에 특화된 지원 시스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요즘 많이 회자되고 있는 프랑스의 ‘앙떼르미땅’ 제도(문화예술인들에게 일이 없는 기간에도 실업수당을 지급하는)나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예술인 복지법 등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을 것이다.

공적인 투자나 인프라 역시 문화의 창작과 향유의 구조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대학이나 공공 연구소에 의한 의약품 개발과 같이, 지적재산권 제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많은 공적인 자금이 지식과 문화의 진흥에 투자되어 왔으며, 현재 우리가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지식이나 문화의 상당수도 이렇게 생산된 것들이다. 공공 도서관, 미디어센터, 독립영화 전용관, 공적 지원을 받는 공연장 등의 인프라도 문화적 다양성과 시민 참여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적 지원 영역이다. 최근 KBS 수신료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는데, TV 수상기 보유를 근거로 징수하는 수신료가 그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면, 차라리 수신료를 문화 콘텐츠의 생산에 투여하고 이렇게 생산된 콘텐츠는 어떠한 채널을 통해서든 자유롭게 유통, 이용되는 시스템을 상상해볼 수 있다.

물론 저작권법 역시 개정될 필요가 있다.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문화 생산 시스템이 저작권에 기반하지 않는 방식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저작권법 자체를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이용자들의 문화적 표현과 소통, 혹은 비영리적 창작 과정에서 타인의 저작물을 이용하는 것은 허용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누구나 비영리적 목적의 창작행위를 하고 있고, 그래서 저작권자가 될 수 있는 디지털 환경에서는 무조건 배타적 저작권을 부여하는 현재의 방식에서 등록을 한 창작자에 대해서만 배타적 저작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공적 영역의 지원은 공유 저작물 창작을 위한 중요한 기반이었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정치 체제의 변화에 따라 매우 가변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과거의 문화적 지원 정책들이 모조리 후퇴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따라서 민간 차원에서 저작권에 기반하지 않은, 혹은 배타적 권리를 제한하는 문화 창작-유통 모델, 즉 창작자의 노동에 정당한 보상이 가능하면서도 이용자에게 저작물 이용의 자유를 줄 수 있는 모델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이미 영리적, 혹은 비영리 방식의 다양한 모델들이 시도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저작물 이용 자체를 차단하고자 하는 국내 저작권자들의 정책과 달리, 유튜브(YouTube)의 경우에는 이용자가 올린 동영상 자체를 차단하지는 않되 광고를 보여주고 그 수익을 권리자와 분배하는 모델을 제안하고 있다. (물론 유튜브 플랫폼에 올려진 저작물을 이용하여 구글이 광고 수익을 독점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말이다.) 미국의 음악 서비스 업체인 매그나튠(magnatune.com)은 양질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무료로 오픈하고, 유료 가입자에게는 무제한 다운로드를 허용하며, 창작자와 직접 계약하여 수익의 50%를 제공한다. 매그나튠의 음악은 모두 크리에이티브커먼스 라이선스(Creative Commons License)를 채택하여, 비영리적 이용은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다. 많은 오픈소스 기반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소프트웨어 자체를 판매하는 대신, 소프트웨어 개발에 이용자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한편, 소프트웨어의 이용과 관련된 서비스를 판매한다. <이 영화를 훔쳐라>라는 영화는 누구나 자유롭게 복제, 배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대신 이용자들에게 자발적인 기부를 요청한다.

아직 이와 같은 대안적인 사업 모델들이 얼마나 지속가능할지는 미지수이다. 저작물의 자유 배포를 기반으로 이용자의 접속을 유도하고 광고 수익을 얻는 모델이 구글이나 네이버와 같은 큰 기업 외에 가능한 수익 모델인지도 의문이고, 기부를 받는 모델 역시 안정성을 담보하기 힘들다. 음원은 무료로 배포하고 공연을 통해 수익을 얻는 것과 같은 파생 수익 모델 역시 우리나라와 같이 공연 시설이 열악한 곳에서는 성공하기 힘들 수 있다. (물론 문화 생산물의 특성상 저작물의 질에 따라 이용자의 수요 자체가 차이날 수밖에 없는 점도 있을 것이다. 현재의 문제는 그 이상으로 진입 자체가 기득권에 의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만.) 어떤 하나의 모델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결국 자신에게 적합한 모델들을 발굴하고 찾아나갈 수밖에 없다고 했을 때, 지금 필요한 것은 다양한 실험과 시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시도되고 있는 독립영화의 사회적 제작 실험인 <뉴타운컬쳐파티>와 인디음악가의 자립을 위한 ‘자립음악생산자조합’을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2011-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