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네트워커

인간적인 정보화

By 2004/02/20 10월 29th, 2016 No Comments

김명철 칼럼

김명철

꿈의 21세기에는 뭔가 많이 바뀔 거라고 기대를 했건만,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문제들은 그리 간단치만은 않은 것 같다. 특히 정보화에 따라 발생되는 문제들은 항상 새로워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 이럴 때는 소위 선진국들을 따라하면 될 것도 같은데, 세계 최초를 좋아해서 그런지 선례가 없기도 하고, 선례가 있어도 한국상황은 다르다고 주장하면, 그 말이 옳은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뭔가 중요한 기준이 있다면, 역시 사람이 아닌가 싶다. 사람을 중심에 놓고 인간적인 면을 보면 모든 문제들이 쉽게 풀릴텐데, 사람은 제쳐두고 기술이나 돈을 중요시하니 문제가 더 꼬인다.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2003년 새해 벽두부터 큰 사건이 터졌는데, 슬래머라는 웜 바이러스가 엄청난 트래픽을 발생시켜 한 국가의 대동맥이라고 할 수 있는 인터넷이 몇 시간 불통되는 소위 ‘1.25 인터넷 대란’이 터졌다. 다른 나라들도 많은 피해가 있었지만 한 국가의 전체 인터넷이 불통된 것은 우리나라 밖에 없었으니, 정보통신 강국이라고 자처해 온 대한민국이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게 됐다. 아픔만큼 성숙해진다고 하던가? 1년이 지난 지금, 가장 큰 피해를 본 인터넷 이용자들을 중심에 놓고 보면, 1차적으로 웜바이러스를 만들고 배포한 해커에게 큰 잘못이 있겠으나, 2차적으로는 바이러스가 공격할 빌미를 준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술개발자들이나 제때에 패치를 안한 서버 관리자들의 책임이 크다. 물론 정부 관료들도 이런 일이 안 일어나도록 예방조처를 철저히 했어야 했으며, 제조물 책임(PL)법에 상응하는 피해보상 규정이 명확했다면, 개발자나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들도 상당히 신경을 썼을 것이다. 다시 한번 이런 조치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인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또, 작년 한해를 통 털어서 인구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사건중의 하나가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이하 NEIS)이 아닌가 한다. 사건의 본질은 NEIS에 집적되고 이용되는 사람(학생)들의 정보가 프라이버시 침해냐 아니냐의 문제인데, 일부 언론이 NEIS를 추진하는 교육인적자원부와 반대하는 전교조의 파워게임으로 몰아가는 바람에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 다행히 절충안으로 타협을 보긴 했지만, 국가 인권위원회의 몇몇 정보에 대한 인권침해 판결은 드디어 우리 사회에서도 ‘정보인권’이라는 개념과 용어가 정립될 기회를 제공하였으며, 다른 나라에서도 주시하는 사건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국민의 정보를 다루는 전자정부사업에서나 민간 기업들도 정보화를 추진하기 전에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정보인권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제도적으로 ‘정보 프라이버시 위원회’나 ‘프라이버시 영향평가’ 등이 설치되어야 할 것이다.

이 외에도 미국방식이냐, 유럽방식이냐를 놓고 아직도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디지털 TV 전송방식 논란에서도 최종 수용자인 시청자를 중심에 두고 판단해야 하며, 음악 지적재산권을 놓고 대립하고 있는 음반기획사와 벅스뮤직, 소리바다 등의 서비스 제공사들도 음악을 듣는 애청자를 중심에 놓고 판단을 하면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닐 것이다.

다행히, 2003년의 정보화사회에서 사람을 중요시하는 몇몇 사례가 나왔는데, 국민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이동통신 스팸 광고 메시지에 미리 허락을 받게 하는 옵트인(opt-in) 제도가 도입되었고, 스팸메일에 대해서도 처벌이 강화되었다. 또, 이동통신 해지자의 정보를 보관하던 이동통신업체중의 하나가 상행위에 필요한 기본 정보를 제외하고 다른 정보들을 삭제하기로 한 것은 민간 기업에서도 사람을 중요시하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2004년 새해부터는 사람을 중심에 놓은 정보화, 좀 더 인간적인 정보화를 기대해본다.

2004-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