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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로 학력논란 사건을 통해 본 인터넷 문화

By 2010/12/23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정민경

 인터넷은 어떤 매체보다 자유롭고 참여적인 공간이며 정보의 유통수준은 가히 경이롭다 할 정도로 빠르게 확산된다. 자유로운 인터넷 공간에서의 의사표현이 때로는 가혹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최근 타블로 학력논란 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잘못된 인터넷문화에 대한 비판과 함께 대책을 강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인터넷실명제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타블로 학력논란 사건을 통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인터넷 문화의 문제를 짚어보고 인터넷 실명제의 한계에 대해 알아보자.


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 그 범주에 관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터넷을 표현의 분출구로 삼는다. 표현의 자유는 우리나라 헌법에서 보장된 기본권이며 민주주의와는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권력에 대항하는 생각, 의견, 주장을 외부의 억압 없이 자유롭게 펼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이 중요하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가 무제한적인 것은 아니다. 헌법 제 21조 4항에는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우리의 기본권에는 개인의 인격권, 프라이버시권 또한 보장하고 있기에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표현이 이루어져야 한다.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 프라이버시권이 충돌하기도 하는데 그 중 어느 것이 더 우위에 있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가령 특정 정치인을 비판하며 별명을 붙이거나 풍자하는 것이 인격권의 침해라면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표현의 자유가 침해 될 위험이 따른다. 사적인 개인의 명예가 저질스럽고 거짓된 정보로 해를 입을 경우에는 그 개인의 인격권은 상대의 표현보다 높은 수준으로 보호되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표현의 자유의 범주는 대상과 사안에 따라 넓게 또는 좁게 해석될 수 있다.

공인과 사인, 공적인 사안과 사적인 사안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정치인이나 공직자의 경우 표현의 자유는 넓은 의미에서 보장되어야 하고 사인의 사적 사안의 경우 프라이버시권, 인격권과 충돌할 위험소지가 크기에 보다 좁은 의미에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타블로의 경우 어디에 해당할까?

연예인은 대중적 영향이 크고 스스로 신상정보를 열어놓고 있으며 언론매체를 통해 대응할 수 있는 폭이 개인보다 크기에 공인으로 볼 수 있다. 타블로가 학력 마케팅으로 대중적 관심을 받고 그것으로 인해 이익을 취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타블로의 학력 문제는 알권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타블로의 학력이 우리 사회에 직접적이거나 중대하게 끼치는 공공의 해악은 없기에 공인의 사적 사안으로 볼 수 있으며 공인이라 할지라도 정치인, 공직자 보다는 완화된 기준을 적용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연예인의 사적영역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그 수위는 프라이버시권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타블로 학력논란 사건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 합니다(타진요)’ 회원들의 행동을 마치 의혹 제기의 중심인 운영자 ‘왓비컴즈’의 추종자, 사이비종교와 같은 이치로 보는 여론이 있다. ‘타진요’ 회원들의 행동을 개인들의 정신적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더 폭 넓고 다양하게 사회적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1) 학력의혹 시작의 이면 ‘학벌주의’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가십거리가 떠돌고 있다. 그 중 특정 가십거리는 의혹으로 키워지고 확대되는데 왜 하필 타블로의 학력논란이 가십거리에서 사회적 관심 대상으로 확대되었을까? 타블로 학력의혹 제기가 단순 가십거리에서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른 것의 이면에는 학벌을 중요시 여기는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타진요 회원들은 ‘스탠포드 석사를 3년 반 만에 마친 사람이 한국에서 힙합가수를 하겠느냐’ ‘스탠포드를 졸업할 만큼 똑똑해 보이지 않는다.’ ‘스탠포드를 석사까지 3년 반 만에 마칠 수는 없다’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이와 같은 표현들은 뿌리 깊은 학벌주의와 학력 콤플렉스가 밑바탕에 깔려있음을 보여주며 학력에 대한 편견은 학력의혹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2) 타블로 학력의혹 제기는 정당한가?


경찰의 조사 결과 타블로의 학력은 진실로 밝혀졌다. 만약 조사 결과 타블로의 학력이 조작되었음이 확인되었다면 타블로는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을 것이고 학력의혹은 정당화되고 ‘타진요’ 회원들은 영웅이 되었을지 모른다. ‘진실성’은 정당성에 상당한 근거가 된다. 그러나 진실성이 이전의 모든 행위나 표현들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면 사회적 이슈에 대한 논의와 의견개진은 정당화되지 못하고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진실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면 그 의혹이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단순 비난만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 사정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타블로의 언행이 많은 이들의 학력조작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면 학력의혹을 제기 한 것 자체를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3) 추적 과정에서의 프라이버시 침해와 자발적 감시사회


의혹제기 과정에서 사인의 사적인 사안으로 볼 수 있는 타블로의 가족의 신상 털기는 가족 당사자의 프라이버시권 침해와 연결된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부터 음모설과 여러 가지 의혹은 항상 존재해왔지만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의견 개진, 집단적 추적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 질 수 있고 더 크게 확대되고 있다. 사이버 상의 집단적 추적활동은 상당한 근거와 정보를 가지고 국가권력층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낼 수도 있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거짓된 사실을 밝혀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개인의 부도덕한 행동을 매개로 정의감을 불태워 집단적 추적을 통해 개인을 심판하는 가혹한 처벌이 일어나기도 한다.

개인의 부도덕한 행동은 비난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하고 퍼트리는 것은 개인의 프라이버시권 침해를 야기한다. 문제는 추적과정에서 까발려진 개인정보가 인터넷의 정보보존력과 전파력과 더해지면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사회적 낙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프라이버시 권리의 중요한 핵심은 사회의 감시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그러나 사이버에서 뭉친 개인들이 집단을 형성하여 개인을 사찰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국가에 의한 감시사회와는 별개로 자발적으로 형성된 집단에 의한 감시사회가 일반화 될 위험이 존재하며 이는 무차별적인 감시를 불러올 것이다.


4) 공권력에 대한 불신


‘타진요’회원들이 큰 비난을 받고 이유 중 하나는 경찰이 타블로가 스탠포드를 졸업했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음에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의혹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광기어린 정신적인 문제만으로 볼 수 없다. 역사적 상황을 봤을 때 독재정권 아래에서 경찰은 정권의 앞잡이가 되어 국민들을 탄압하는 집단이라는 인식이 존재했었고 2008년 촛불 이후 인터넷에서 공권력에 의한 탄압 사례들이 쏟아지면서 공권력에 대한 불신은 더욱더 커져가고 있다. 그러나 타블로의 학력조작 의혹이 공권력이 밝힌 사실에 끝까지 대항할 만큼 사회적 가치가 있는 사안인가? 우리는 진실탐구의 가치를 생각해봐야 한다. 타블로의 학력논란 사건에서 남는 것은 타블로 개인의 괴로움밖에 없을 것이다.


명예훼손, 마녀사냥, 악플에 ‘인터넷실명제’가 답인가?


학력의혹 제기가 시작되면서 타블로에 대한 인격적인 모독이 도를 넘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MBC 스페셜에서 타블로는 "내가 사람이 아니라 마치 아바타가 된 기분이다"라고 표현했다. 온라인상에서는 왜 악플이 난무하는 것일까? 온라인상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느슨하고 밀착력이 없다. 특히 연예인은 수많은 악플의 대상이 되는데 그들은 삶의 오락적인 요소를 충족시켜주는 인물로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는 대상이 된다.


인터넷 악플에 대한 문제의식을 일으켰던 개똥녀 사건, 최진실 사건, 타블로 학력논란 등의 사건이 일어날 때 마다 여기저기서 인터넷실명제를 도입해야한다는 주장이 일었다.

이 제도를 도입하는 핵심적 이유는 범죄예방과 본인이 추적가능하다는 의식으로 네티즌들의 책임감을 불러일으켜 악플이 제어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인데 악플이 사회적 문제로 논란이 되었던 ‘최진실 사건’ ‘타블로 사건’ 등은 사실상 인터넷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는 포털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현재 일일 10만명 이상 방문하는 사이트에서는 글을 쓸 때 본인확인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는 제한적 본인 확인제를 시행하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의 악플 방지와 범죄예방은 이미 그 효과가 없음이 드러났다.

현재 사실상 실명제를 도입하고 있는 포털 등에서 도입하기 전과 후를 비교하여 악플이 줄었다고 할 만한 근거 통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온라인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개인정보를 도용하는 사례가 빈번이 일어나기 때문에 범죄예방 목적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번 타블로 사건의 경우에도 타진요의 운영자 ‘왓비컴즈’는 실제 명의 도용을 해서 활동을 해왔다.


오히려 인터넷 실명제는 익명성의 제한으로 의견개진에 위축효과만 낳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 익명성은 표현의 자유에 따라오는 필수 요소이다. 익명이기에 오프라인에서 이야기하기 어려운 고민들을 온라인에 털어놓기도 하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소수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도 있다. 커뮤니티 내에서 혹은 포털 사이트에서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필요에 의하여 실명제를 도입하는 것은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으나 국가가 강제해서 시행하는 것은 부정적인 측면이 더 강하다 할 수 있다. 국가의 강제 하에 모든 글에 신원정보를 연계하도록 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글이 합법적이든 그렇지 않든 실질적 내용규제가 되며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의사표현에 위축효과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법적 규제와 인권교육, 자발적인 네티즌 운동!


현재 우리나라에는 공연히 구체적인 사실이나 허위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시켰을 때 명예훼손죄를 적용할 수 있으며 사람을 모욕했을 때는 모욕죄를 적용할 수 있다.

정부에서는 사이버 모욕죄를 추진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모욕죄의 경우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시행되고 있지 않는데 이는 모욕의 기준이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객관적 판단이 어렵고 권력층이 자신들과 반대되는 의견을 탄압하기위해 오남용 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인터넷 실명제와 사이버 모욕죄가 부정적인 기능을 더 많이 한다면 인터넷 악플 방지의 대안은 무엇일까?


법적 제제는 헌법에 위배되지 않은 최소한의 원칙으로 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 침해를 최소화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감시와 차별을 억제할 수 있는 법적 제재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가 필요한 것이다.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자면 첫째, 명예훼손 분쟁조정제도를 도입하는 방법이다. 현재 일간지나 방송에 대하여 언론중재위원회가 전문적이고 신속한 판단을 하고 있듯이 인터넷상의 명예훼손 문제도 합리적이고 신속하게 판단하여 중재되어야 한다.

둘째,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인권교육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입시 위주의 교육은 학벌중심 체제를 낳았고 이는 타블로 사건의 숨은 원흉이라고 볼 수 있다. 도덕 과목은 인권적 감수성을 키우거나 사회구성원들을 깊고 다양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에 중점을 두지 않고 오로지 시험지 답안을 맞추기 위해 배우는 과목 중 하나, 또는 입시에 중요하지 않은 과목으로 치부되고 있는 현실이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인권교육은 단기간에 그 효과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올바른 인터넷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꼭 선행되어야 하는 방법이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미 인터넷 악플 문화의 문제를 인식하고 규제를 필요로 하고 있다. 사이버 질서 확립을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네티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악플 방지 운동’을 해나간다면 헌법적 기본권인 표현의자유, 인격권, 프라이버시권을 최대한 침해하지 않고 좀 더 성숙한 인터넷 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 이 글은 경희대 교지 고황 80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0-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