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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 확보와 영역 고립의 교차점{/}쌈지스페이스의 기획전시, 타이틀매치전 ‘이강소 VS 조습’

By 2004/02/06 10월 29th, 2016 No Comments

문화

김지희

인터넷을 뒤지다가 찾아낸 종합예술관 쌈지스페이스(SSamzie Space). 98년도 어떤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 결과물로 생겨났고, 신촌에 위치했고, 전시기획 카피도 참신하고, 대부분 연령 낮은 작가를 유치하고… 그야말로 ‘젊음’이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마침 진행중인 전시는 연례기획물인 ‘타이틀매치전’. 서로 다른 두 작가의 작품을 나란히 전시하는 맞대결 전시회인 셈이다.
올해 맞대결의 주인공들은 20세기 실험미술의 선구자로 불린다는 ‘이강소’와 신세대 작가 ‘조습’이다.

선수소개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바로 3층이었다. 10평 남짓 좁은 공간에는 첫 번째 선수인 이강소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경주의 고풍스러운 옛기와집에서 촬영했다는 비디오 작품 ‘From a dream’. 비디오카메라의 렌즈는 방안에서 창호지문과 대청마루를 거쳐 밖의 풍경을 담고 있는데, 서로 다른 3개의 문을 통해 3가지의 방향으로 촬영되어 있다.
마치 깊은 산 절간의 온돌방 구석에 앉아 3가지 방향의 서로 다른 문밖 자연 풍경을 구경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아직은 도시가 좋지만 인생의 여유로움을 희망하는 내가 이 작품을 사고 싶어졌다면, 마음의 안정조차 삶에서의 실천이 아닌, 필요할 때만 자유롭게 소환시키고 싶은 나의 오만과 사치겠지?
1층에 가면 두 번째 선수 조습의 작품이 기다리고 있다. ‘무제’라고 제목 붙인 작품들은 연속되는 사진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데, 현실사회의 멀쩡(?)한 사람이라면 절대 실행할 수 없는 폭력적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를테면 두 사람이 다투다가 한 사람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맞고, 심지어 그 사람을 머리부터 냄비에 처박아 끓이는 등 소위 엽기적이라 부르는 장면들이다. 그러나 소름끼치는 작금의 현실은 현란하고 촌스럽고 유치하게 꾸며진 인물들이 엮어나가는 이야기 속에서 미소짓고 있는 나 자신의 숨겨진 폭력에 대한 공감대인 것이다.

정면승부

2층에 가면 드디어 이강소와 조습의 정면 승부가 펼쳐진다. 각자의 사진 작품들은 서로 마주보는 벽면에 전시되어 있다. 오리화가로 불리는 이강소의 작품은 파스텔톤의 배경과 인물 위에 굵은 붓터치로 그려진 오리들이 한가로이 노니는 듯, 온화하고 따뜻한 분위기다. 반면 조습의 작품은 원색에 가까운 옷을 입고 익살맞게 치장한 인물들의 과장된 동작을 담아내고 있어 현란하고 차가운 분위기다.
둘의 작품은 마치 두발을 땅에 딛고 대결하려는 듯 걸려있어, 나란히 걸려있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전시공간의 비좁음 때문인지는 몰라도 결국 같은 공간에 양립하고 있는 서로의 존재를 공존의 원리로 받아들이는 일종의 의식과 같다.

결과 발표

흥미로운 콘셉트나 선수들과는 달리, 10평미만의 전시공간과 낮은 천장에 시멘트벽, 한마디로 쌈지스페이스는 그다지 훌륭한 미술관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신촌이라지만 외진 곳에 위치해있고, 기획된 건물 외관과는 달리 일부러 방치해놓은 듯한 내부는 객기로 보이기까지 한다.
설상가상으로 이 좁은 건물에 공연장과 작가들의 작업실도 있다보니,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밴드의 연습하는 소리, 뭔가를 잔뜩 짊어진 사람과 마주치게 된다. 한마디로 작품 감상에 집중할 수가 없다.

그리고 결론 – ‘Space’ 의 의미

그럼에도 쌈지 스페이스가 창출해낸 공간은 전시공간, 공연장, 작업실, 가게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문화적 아이콘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의 색깔은, 이를테면 논란의 여지가 많은 영화와도 같다. 튀는 아이템의 아마추어적 배치로 치부될 법도 하지만 ‘젊음’으로 상징되는 일관된 흐름은 이 공간을 돋보이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이겠지만, 타(他)와 확실히 구분되는 자(自)를 형성하고 있거나 형성하려고 노력하다보면, 영역 확보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끊임없는 차별성의 발굴이 요청된다. 이러한 차별성을 통해 타인과 구분이 생기는 그들은 독특한 그들만의 색에 몰두하게 된다. 나에게 팜플렛을 건네주던 전시안내원도, 연습하던 밴드도, 작업실로 뭔가를 들고 가던 사람도 각자 자신의 목표에 충실하게 몰두해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영역이 확보되고 구별이 커진다는 것 자체가 영역의 고립을 의미하기도 한다.
요즘들어 사회단체의 활동가라는 위치에 있는 내가 소속단체의 성장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뿌듯함과 걱정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노파심이다. 영역 확보와 영역 고립의 줄다리기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일종의 소수자인 쌈지스페이스의 그들은 아마도 자신의 위대한 작업을 자기만족적 활동에 머무르지 않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 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나갈 것이다. 비록 그날의 이방인이었던 나는 그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어떠한 과정도 만족스럽게 갖지 못했지만…
자만과 고립, 자신만만과 고독한 독립은 그야말로 종이 한 장의 차이도 아니다.

2003-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