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네트워커

과거 ‘부르주아의 컴퓨터’로 불리던 매킨토시… 윈도우에 저항하는 접근권활동 벌여{/}빈약한 웹환경에서 살아남자! 매킨토시 이용자들

By 2004/02/06 10월 29th, 2016 No Comments

사이버 테마기행

신기섭

인터넷에서 특정한 주제나 사안에 집중하는 이들의 모임은 더 이상 화젯거리이거나 주목을 받는 것이 못된다. 그런데 수많은 마니아들 가운데 조금 특이한 이들이 있다. 그들의 특징 가운데 몇 가지를 나열하면 이렇다.
미국의 특정한 기업을 지독히 좋아한다. 그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 그 회사와 관련된 일에 과도하게 관심을 기울이고 남보다 더 자세히 아는 것이 자랑거리가 된다. 이 회사의 로고만 봐도 좋아한다. 이 회사가 새 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사지 못해 ‘안달’을 하거나, 자신이 살 처지가 못되면 다른 사람의 충동구매를 마구 부추긴다. 게다가 ‘폼생폼사’, 그야말로 겉모양에 죽고 살 정도로 집착한다. 예쁘기만 하면 값이 조금 비싼 것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 정도면 <네트워커> 독자들 대부분은 자본주의사회가 만들어낸 가장 나쁜 인간유형, 소비를 위해 존재하는, 그것도 돈 자랑에 목숨 거는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라며 단정해버리고 말지 모르겠다. 이 글을 더 이상 읽지 않고 넘어갈까 봐 걱정이 되어서 빨리 덧붙여야겠다. 필자도 그런 마니아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말이다. <네트워커> 편집위원이라는 자가 당당히 이렇게 말하는걸 보면, 뭔가 다른 게 또 있지 않을까?

우리는 소수자, 매킨토시 이용자들의 연대의식

이 사람들은 매킨토시컴퓨터라는 걸 쓰는 이들이다. 많은 이들이 컴퓨터그래픽 전용 컴퓨터쯤으로 여기는 매킨토시는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개인용 컴퓨터(PC)를 만든 미국 애플컴퓨터사에서만 만들어내는 기계다. 그러니까 매킨토시는 무조건 미제다.
매킨토시 컴퓨터 사용자는 미국의 경우, 1990년대 중반까지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는데, 날로 줄어들어 요즘은 컴퓨터 시장점유율 기준으로 대략 2~3% 수준까지 떨어졌다. 사용자가 줄어들기는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매킨토시 쓰는 사람을 만나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이런 상황은 전세계적으로 엇비슷하며, 그래서인지 전세계 매킨토시 사용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 자신들이 쓰는 컴퓨터에 대한 애착이 아주 남다르다. 또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를 운영체제로 쓰는 ‘보통의 컴퓨터’(매킨토시 사용자들의 은어로는 ‘아범’)를 고급 외제 승용차 소유자가 ‘포니’나 ‘티코’ 보듯 한다. 위에서 언급한 소비지향적 특징들도 일부 사용자들에서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보다 더 큰 특징은 같은 매킨토시 사용자들에 대한 강한 연대의식을 느낀다는 점이다. 이는 사회적 소수자 그룹 안에 존재하는 연대의식과 상당히 비슷하다.

마이크로소프트 때문에 ‘괴로운 한국 맥 사용자들을 위한 애플포럼’

또 한가지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윈도에 대한 강한 반감이다. 이 반감은, 마이크로소프트가 1990년대 초 윈도3.0을 내놓은 이후 지속적으로 매킨토시컴퓨터용 운영체제(맥오에스)를 흉내내 비슷하게 만듦으로써 매킨토시 사용자들이 ‘아범’ 사용자들에 대해 느끼던 우월감을 상당히 훼손시켰다는 데 뿌리를 두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요즘의 반감은 근본적으로 독점의 폐해를 ‘몸으로 느끼며 산다’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이는 특히 국내 매킨토시 사용들에서 두드러진다.
오죽하면 매킨토시 사용자들의 커뮤니티 가운데 가장 활발한 사이트의 공식명칭이 ‘괴로운 한국 맥 사용자들을 위한 애플포럼’(www.appleforum.com)이다. 물론 매킨토시 사용자들이 느끼는 괴로움이 전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 때문은 아니지만, 가장 큰 고통이 이 회사와 관련된 것은 분명하다.
회원이 5000명쯤인 애플포럼에서 가장 중요하게 논의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모든 기준이 윈도에 맞춰져있는 국내 컴퓨터 및 인터넷 환경에 적응하느냐다. 인터넷뱅킹 이용, 온라인쇼핑몰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하기, 방송사 사이트에서 지난방송 다시보기, 다음이나 네이버 같은 대형 포털사이트에서 채팅 등 각종 기능 이용하기 등등은 매킨토시로는 아예 불가능하거나 심히 번거로운 작업을 거쳐야 하는 일들이다.
개설된 지 2년이 조금 넘는 애플포럼에는 그동안 이용자들이 이런 작업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하고 찾아낸 온갖 팁들이 쌓여있고, 지금도 계속 쌓이고 있다. 비슷한 고통을 겪는 리눅스 사용자들과 연대하려는 움직임, 공개소프트웨어 운동 등에 대한 이 사이트 회원들의 호응도 자연히 높은 편이다.

소비자 권리찾기와 웹 접근권확보 활동으로 거듭나

국내 매킨토시 사용자 커뮤니티에서는, 다국적 기업인 애플의 부실한 서비스에 맞서는 소비자 권리찾기 움직임도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매킨토시 사용자들이 즐겨 모이는 또 다른 사이트인 ‘알비리오의 파워북’(www.albireo.net/powerbook)은 최근 저작권 침해 시비를 무릅쓰고 애플의 글꼴을 임의로 수정한 파일을 공개해 주목을 받았다.
애플은 최근 운영체제(맥오에스텐)의 새 버전을 내놓으면서 한글입력기에 유니코드 입력 기능을 추가했다. 하지만 완성형에 맞춰진 기존의 글꼴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기본 글꼴로 채택함으로써 유니코드 입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하는 무성의함을 드러냈다. 이를 보다 못한 한 개인 사용자가 임의로 이 글꼴에 유니코드 기능을 추가했고, 애플의 성의를 촉구하는 차원에서 이 사이트를 통해 공개 배포한 것이다.
국내 매킨토시 사용자 커뮤니티는, 소수자들의 어려움을 색다른 측면에서 보여주는 듯 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매킨토시 사용자들이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사치스러운 이들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이들이라는 점이다. 스스로도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고상한 안목’을 갖췄다고 자부하던 이들이 적지 않았다. ‘피시가 프롤레타리아의 컴퓨터라면 매킨토시는 부르주아의 컴퓨터’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물론 현재의 사용자층은 그 때의 사용자층과 많이 다르고, 일반 피시와 매킨토시의 가격 차이도 거의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특권층과 같던 소수그룹이 배경이 전혀 다른 정보운동에 호응하고 접근해 가는 모습은 분명 흥미있는 일이다.

2003-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