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네트워커

그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원한다, 하지만 먼저 우리의 규칙을 따르게 하자

By 2004/02/06 10월 29th, 2016 No Comments

인터넷트렌드

최호찬
미국 캘리포니아 서부 산불 때 사용자들이
전송해 온 사진들을 모아놓은 블로그
(http://fire.textamerica.com/)

"내것을 당신도 보고 싶어요?”
“가능하다면.”
“같은 것을 본다는 것이 같은 경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계시겠죠?”
“최소한 당신이 어떤 것을 봤다는 것은 알 수 있겠지. 그게 내 경험이 될 거예요.”
“그럼 우리는 서로 아는 사이가 되는 걸까요?”
“나도 확실히 모르겠소.”

대화하고 싶어요

이제 난, 내 부스스한 머리와, 막 먹기 시작하려는 찌개와, 사람들의 거대한 행진을 찍은 사진을 웹에 올리려고 한다. 내 모습과 내 경험과 내 시간과 내 공간을 말이다. 그리고 그걸 본 사람들이 한 마디라도 건네주길 간절히 원한다. 타인의 관심이 커질수록 행복은 커진다. 사진과 이야기를 통한 다른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 이상의 것,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 경험에 대한 인정받고 싶음과 과시에 대한 욕구가 적절히 버무려져 있고, 바깥 세상에 나가도 좋은지에 대한 조심스러운 탐사, 그리고 조금 과다해 보일 수 있는 나르시시즘 사랑이 있다.
이제 사진은 대화와 기록의 다른 방식이다. 디지털 카메라와 폰 카메라는 항상 함께하는 기계,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표현하지 못했던 내 욕망의 필터이다. 수없이 많은 타인의 필터들을 바라보며 또 다른 삶과 이해의 방식을 배워나간다. 디지털 사진을 통해 이제 사진 속의 시간은 기다림 끝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지켜볼 수 있는 어떤 것이 되었다.

시각의 욕망과 비즈니스

보고자 하는 욕망은 상상을 앞선다. 여자 연예인들의 속살을 보고 싶어하는 욕망은, 성욕의 해소만을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공상과 풍문으로만 존재하던 저 너머의, 그렇게도 꼭꼭 옷깃을 여미며 감추던 그녀들의 속살을 볼 수 있다는 (그래봐야 모니터나 종이 위의 점일 뿐이지만) 사실은 어떤 이들에게는 꿈이 현실이 되는 ‘혁명’처럼 느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신비를 벗어 던져야만 더욱 신비로워지는 것일까. 아니면 신비 따위는 이제 현실에서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것일까.
‘비즈니스’라 불리는 녀석의 번식력은 스스로를 먹어치울 기세로 사방으로 뛰쳐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현관만큼은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인터넷 포탈들은 우리를 향해 어떤 것이든 자신들에게 ‘이야기’, 콘텐츠를 달라며 ‘무료’, ‘용량 무제한’의 사탕발림에 여념이 없다.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한편에 두고서도, 그들의 서비스를 쓰게 되는 현실은 그리 달갑지 않다. 내 이야기들이 저 거대한, 무엇이든 빨아들이는 구멍으로 들어가는 순간 커다란 양계장의 닭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이다. 여긴 혹시 이야기의 ‘매트릭스’가 아닐까. 내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전기로 돌아가는 구조. 나의 거짓 욕망이 충족되는 공간.
결국 ‘그들’은 우리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에 모이고, 그들은 필사적으로 사람들을 모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도 가족의 환영을 받으며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곧 우리가 되기 때문이다.
어떤이들은 내내 우리이기도 하고 내내 그들이기도 하다. 그 경계는 명확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며 계속 경험하게 된다. 언젠가는 또는 매우 자주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선택해야만 할 것이다. 빨간 약이냐 파란 약이냐를.

게임의 규칙을 바꾼다면

이제 웹은 우리의 이야기로 채워질 것이다. 어떤 사건이라도 우리의 이야기를 통해 먼저 알려질 것이고, 더욱 인간다운 대화들이 오고갈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형식(서비스)’은 우리의 세상을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 형식은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 나와야 하지만 그들의 것은 수익으로서의 고객에 대한 이해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강한 중독’을 고민하고 그 중독이 우리의 호주머니를 더욱 자주 열게 만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나서 자신들은 사용자를 위한 선한 의도로부터 그 모든 것을 시작했다는 논리로 모든 책임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뒤에서는 나날이 오르는 주가와 보너스에 희희낙락하며 크리스마스 파티를 할 것이다.
우리의 삶을 담은 이야기와 사진은 그들의 주가 총액보다도, 윤기가 흐르는 대단한 비전보다도 더욱 가치 있다. 상금 몇 십만원 쥐어주는 것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사려고 하지 말기를. 우리는 우리의 삶이 소중하게 다루어지기를 더 원한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이제는 그들의 규칙을 따르지 말자. 그들이 우리의 규칙을 따르게 하자. 인터넷이 그들의 비즈니스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줬다면 우리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그들의 간섭을 받지 않고 얘기할 권리가 있다.
만약 그들이 그런 공간을 만들겠다면 우리의 이야기를 기꺼이 해줄 용의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자. 그렇지 않다면 더 이상 그들이 만들어 놓은 그물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일은 그만두자. 모르는 것은 배우고 아는 것은 아낌없이 나누며 우리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내자.

2003-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