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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찰과 정보통신부… 이미 송·수신된 통신정보는 통신비밀이 아니다{/}사라져 가는 통신의 비밀

By 2004/02/06 10월 29th, 2016 No Comments

집중분석

장여경

대한민국 헌법 제18조는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에서 통신의 비밀 보호는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해 왔다. 그런데 최근 이 통신의 비밀이 큰 위협에 처했다.

기술의 발달로 다양하고 정교해지는 통신정보들

과거, 통신은 우편이나 전화를 이용한 통신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지금은 통신의 의미가 사뭇 달라졌다. 정보통신 매체의 발달과 통신 수단의 발달로 통신의 양과 질이 비약적으로 확장한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전자우편, 채팅, 메신저를 이용한 통신은 물론, 전자게시판과 홈페이지를 통한 통신, 무선인터넷, 이동전화를 통한 통신, 이동전화의 문자메시지 등 그 수단이 다양해졌다.
한편 저장 기술의 발달로 통신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질 뿐 아니라 대부분이 오랜 기간 저장되고 있다. 전화의 경우에도 과거에는 요금 산정을 위한 발신번호, 수신번호, 통화시간 정도가 저장되었으나, 최근에는 통화 위치까지 저장되고 있다.
문자메시지의 경우는 발신자, 수신자 뿐 아니라 내용까지도 저장될 수 있다. 인터넷 통신의 경우 수신자와 발신자에 대한 기록은 물론, 접속 위치, 통신의 모든 내용이 저장된다.
특히 문자메시지나 인터넷 통신의 경우 수신자나 발신자가 자신의 컴퓨터에서 통신의 내용을 삭제하더라도 서버에는 그 내용이 남아있으며, 로그기록은 당사자도 모르는 새 저장된다.
이렇게 저장된 정보는 매우 쉽게 감시될 수 있다. 상황을 다소 과장해보자면 경찰이 시청 앞에 모인 집회 군중을 감시하기 위해 과거에는 불심 검문을 하고 사복 경찰을 동원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저 시청 앞에서 잡히는 휴대폰 위치 정보만 수집하면 이들의 신원을 자동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신의 비밀을 법률로 엄격히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수사기관이 통신 회사에 국민의 통신 기록을 요구할 때는 반드시 법원으로부터 발부 받은 감청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수사기관은 통신의 비밀보다는 통신매체의 발달을 십분 활용한 수사의 편의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지난 10월 서울지검 의정부지청과 인권단체들은 날카로운 설전을 벌였다. 8월에 있었던 대학생들의 미공병대 스트라이크부대 진입 시위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피의자들의 휴대폰을 압수하여 내장된 문자메시지를 열람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인권단체들은 검찰이 법원으로부터 감청 영장을 발부 받지 않고 문자메시지를 열람한 것이 통신비밀의 침해라며 규탄하였다.
통신비밀보호법은 수사기관이 당사자의 동의 없이 감청할 경우 통신제한조치의 종류, 목적, 대상, 범위, 기간, 방법 등을 기재하여 법원에 허가를 신청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서울지검 의정부지청은 문자메시지 감청은 압수수색검증 영장으로 적법하게 집행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압수수색검증 영장은 의정부교도소에서 피의자의 휴대폰을 압수하는 데 사용된 것이었다.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한 감청 허가 영장은 엄격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압수수색영장과 다르다. 그러나 이미 저장된 문자메시지나 전자우편은 과거의 통신이기 때문에 압수수색영장으로도 충분히 볼 수 있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제정 당시 저장 매체의 발달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에는 이 부분이 불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정보통신부도 <통신비밀 보호업무 처리지침>에서 ‘이미 송·수신이 완료된 전자우편 및 비공개모임의 게시내용 확인은 형사소송법상의 압수·수색의 절차에 의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수사 과정에서 압수된 휴대폰이나 노트북에 내장된 문자메시지나 이메일은 압수수색영장만으로 그 내용이 열람되고 있다.

통신의 이용가치는 늘어나고

최근 통신기술의 발달을 활용하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업계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용자가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으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상점 앞을 지날 때 “김철수님, 옆에 있는 가게에 들러주세요”라는 판촉 메시지를 내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위치정보의 이용 요구가 늘어나자 정부는 최근 위치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하려고 시도해 왔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보통신부가 8월 입법예고한 ‘위치정보의이용및보호등에관한법률(안)’이 국민의 위치정보를 보호하는 데 미흡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위치정보를 통신비밀의 수준으로 보호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휴대폰 위치정보 뿐 아니라 무선 인터넷 등 인터넷의 위치정보는 당사자의 위치와 당시의 활동 내용까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민감한 정보이다. 그러나 이 법은 위치정보의 보호와 위치정보 산업의 육성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위치정보를 보호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예컨대 위치정보가 자동으로 기록·보존되고 위치정보사업자가 이를 제3의 사업자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위치정보의 수집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경우 <통신분야에서의 개인정보처리와 프라이버시 보호에 관한 지침>에서 개인의 위치정보는 원칙적으로 통신서비스를 제공한 후, 즉시 파기하거나 익명으로 처리하고 요금청구의 목적으로 저장할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조난자 긴급구조 등을 위해 이 법의 제정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긴급구조라는 명목으로 위치정보 사업자에게 개인의 통신 위치와 내용이 광범위하게 제공된다면 대한민국에 사생활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2003-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