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경


 당신은 범죄 수사를 위해 당신의 개인정보를 어느 선까지 수집하도록 허용해 줄 수 있습니까? 범죄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 왜 당신의 정보가 공개되어야 하냐구요? 여기 당신의 통신 정보를 가져다 쓰고도 인권침해가 아니라는 수사기법이 있습니다.


 기지국 수사라고 들어보셨나요? 기지국 수사란 수사기관이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는 연쇄범죄가 발생하거나, 동일 사건단서가 여러 지역에서 시차를 두고 발견될 경우, 사건발생지역 기지국에서 발신된 전화번호를 추적하여 수사를 전개하는 기법입니다.


기지국 단위 통신사실확인을 위해 기존에는 형사소송법상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하던 것을 통신비밀보호법상 ‘통신사실확인허가서’로 대체하여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통신사실확인허가서 1개에는 통상 1만개 내외의 전화번호 수가 수집된다고 합니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올 상반기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현황을 발표했는데요. 통신사실확인자료의 문서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6.7% 감소했지만, 전화번호 수는 2159만 8713건으로 70배 정도 증가했습니다. 또한 통화내역 열람 건수 중 98.7%에 해당하는 2131만 건이 기지국 수사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하네요. 경찰의 기지국 수사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기지국 수사 기법을 언제부터 사용했을까요? 경찰은 지금까지 어떤 범죄에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을까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기지국 수사에 대한 자료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발표하는 보도자료 외에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울 31 경찰서와 서울지방경찰청에 죄종별, 통신시점별, 기지국별 통계자료를 정보공개 청구 해봤지만 비공개한다는 답변밖에는 받지 못했는데요. 자료가 부존재 하다는 곳도 있고, 혹 자료가 있다 하더라도 공개될 경우 범죄의 예방, 수사 등에 관한 사항으로 직무수행을 곤란하게 하거나 수사업무에 장애를 줄 위험성이 있다고 하네요. 수사기법에 관한 사항은 공개하지 못한다나요? 단지 통계일 뿐인데 말입니다. 경찰 측의 주장대로 무작위로 가져다 쓰고 어떠한 통계자료도 없다면 기지국 수사라는 기법은 무책임하고 수사 편의적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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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5일 열린 시민단체의 감청실태보고 기자회견

 

범죄자를 잡기 위한 수사기법일 뿐인데 무엇이 문제냐구요?


첫째, 기지국 수사는 범죄자가 특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범죄 혐의와는 무관하더라도 그 시각 그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로 당신의 통신 정보가 수집됩니다. 이는 모든 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볼 우려가 있는 것입니다.

 

경찰은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단순 전화번호자료만 제공받아 중복번호 등을 선별해 수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수사기법은 여러 군데 기지국에서 시간대별로 정보를 수집하는데 이는 경찰이 예측한 범죄자의 동선과 당신의 동선이 일치한다면 당신이 용의선상에 오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경찰은 단순 전화번호자료라고 하지만 통신사실확인자료에는 당신의 전화번호, 어느 시간 누구와 통화를 얼마간 했는지, 당신이 어디로 이동했는지 등의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사생활의 비밀과 통신의 비밀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이에 관련하여 전병헌 의원은 인적사항을 반드시 기입하도록 하여 불특정 다수에 대한 통신사실확인자료 요청을 못하도록 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습니다.


둘째, 모든 범죄를 대상으로 이 수사 기법을 쓰고 있습니다. 중대한 범죄가 아니더라도 통신사실 확인제공 요청을 할 수 있으며 이는 요청권 남용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지국 수사로 살인범만을 수사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특정 지역에서 집회시위를 했다면 기지국 수사로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을 수사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긴급하게 수사를 진행하여야 할 경우에는 법원의 허가서를 받지 않고 통신사실 확인자료 요청을 할 수 있고 사후에 허가를 받도록 하는 조항이 있습니다. 통신사실확인자료를 받고 법원의 허가서를 받는 것인데 나중에 법원에서 허가 받지 못하는 일들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또한 경찰의 편의로 오남용 될 요지가 충분히 있는 것입니다.


셋째, 통신비밀보호법 13조3항에는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을 받은 사실과 제공요청기관 및 그 기간 등을 서면으로 통지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통지 할 대상이 너무 많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법을 어기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정보가 수사를 위해 수집되었지만 그 사실 조차도 알지 못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변재일 의원이 대표발의 한 통신비밀보호법 일부개정안에서는 통지를 하지 아니한 자에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벌칙 조항을 신설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현 통신비밀보호법상 통지 의무는 명시되어 있지만 벌칙 조항이 없기 때문에 경찰이 이를 어겨도 고발 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경찰이 통지의무를 회피하는 것은 명백히 위법인데 말이지요.


이와 같이 기지국 수사는 헌법상 기본권인 통신의 비밀보호, 사생활 보호, 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범죄자만 잡으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더라도 다 용서 되는 건가요? 범죄가 일어난 주변 지역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통화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수사대상이 되어야 합니까? 어떠한 이유를 막론하고 어마한 수의 국민들의 정보를 가져갔다면 책임지고 설명해주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경찰은 기지국 수사는 인권침해와 상관없다는 주장만 하지 말고 투명하게 기지국 수사의 실태에 대해 공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정민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 미디어스 2010년 10월 14일자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092

 


 



 

2010-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