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네트워커

컴퓨터로 시작한 영어 공부 이제는 바다 건너 친구와

By 2004/02/06 10월 29th, 2016 No Comments

바이러스

제리

나는 일곱 살 때부터 컴퓨터를 가지고 놀 수 있었다. 살짝 먼 친척이 컴퓨터 학원을 운영하는데, 학원에서 업그레이드 하고 버려지는 컴퓨터를 한 대씩 보내주셨기 때문이다. 직접 받은 것은 컴퓨터뿐이지만 그로 인해 더 많은 것들을 덤으로 받을 수 있었다.
엠에스도스(MS-DOS) 시절,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영어를 메모지에 적어 놓고 그대로 옮겨 타이핑하면 들어본 적도 없는 나라인 페르시아의 왕자가 나타나 나와 함께 모험을 떠났다.
하지만 간혹 그 왕자를 만날 수 없는 때가 있었는데, 그런 날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기호들과 마주해야 했다. 그것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슬슬 문자로 다가왔다. 영어를 공부한 적은 없지만 내가 처한 상황과 컴퓨터가 요구하는 것, 또 그 뉘앙스에 따라 나는 컴퓨터와 대화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 점점 영어를 이해해갔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영어를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다. 국영수보다 암기과목을 더욱 싫어했던 내가 영어단어를 제대로 외웠을리 없지만 단어를 외우지 않아도 영어 시험 성적은 잘 나왔다. 그건 아마 수년간 컴퓨터와 씨름하다가 깨우친 ‘대충 통하기 식 독해 방법’ 때문일 거다.
몇 주 전, 처음 한국을 벗어나 바다 건너 동네를 다녀왔다. 운 좋게도 홍콩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초청돼서 공짜로 외국에 나가볼 기회가 생겼던 것인데 사실 여행으로서는 별로였다. 홍콩은 공기가 나쁘고 사람들도 북적거렸으며, 가난한 집 자식인 나에겐 쇼핑 천국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홍콩에서 유일하게 즐거웠던 것이 있다. 홍콩 친구들을 사귄 것이다. 홍콩 대학의 친구들이 안내를 해주었는데 의사소통이 원활하진 않았지만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기본적인 영어와 손짓, 발짓. 거기다가 단어를 나열해대면 필요한 의사소통은 대부분 가능했다. 홍콩에서 돌아와야 할 때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돌아와서도 그 친구들이 그리웠다.
인터넷이 세계를 이어 준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나는 내수용 인터넷만 썼나보다. 인터넷이 전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몸소 체감해 본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홍콩과 싱가포르에 있는 친구들과 인터넷 메신저로 대화를 하면서 인터넷 네트워크라는 것이 새삼 신기하고 놀라웠다. 문화연구를 전공하는 친구에게는 매일 밤 모자라는 영어로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앨범을 한 장씩 소개하면서 인디 밴드에 대한 소개와 곡 설명도 해주고 있다. 그러면서 영어 실력도 조금씩 늘어가는 것 같다. 나도 문화 기획을 전공하고 있으니 더 깊고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동기가 돼서 영어를 더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중학교 때 이런 수업이 있었다면 아마 지금 영어를 더 잘했을 거다. 지금은 학교에도 인터넷이 다 깔려있는데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2003-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