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지 액트온전자신분증

전자여권 운동 평가와 전자주민증 운동의 전망{/}전자여권과 권력의 문제

By 2010/09/07 10월 25th, 2016 No Comments
김승욱

전자여권 운동의 경과
전자여권은 2007년 2월 외교통상부의 공청회를 통해 수면위로 떠올랐으며, 진보넷은 3월 초에 첫 번째 성명을 발표하면서 신속한 대응활동에 들어갔다. 전자여권이 도입되면 전자주민증도 곧 이어 도입될 것이라는 위기감과 함께 곧 이어 인권단체연석회의의 공식적인 대응팀이 결성되었다. 당시 주된 활동단위는 진보넷, 천주교인권위, 그리고 민변이었다. 하지만 이미 도입을 기정사실화하고 공청회를 진행한 외교통상부는 신속히 입법예고를 하였고, 여권법 개정안은 형식적인 절차를 밞으며 9월 정기국회에 제출되기에 이른다. 이 후 국회에서 보안, 비용, 절차, 인권 등이 문제시 되었으며 공청회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여권법 개정안은 논란 끝에 지문수록을 2년 유예하는 방안으로 개정되어 2008년 2월 국회의 마지막 날 본회의를 통과한다.

외교통상부는 법 개정과 함께 미국과의 비자면제 협상을 꾸준히 추진하였는데, 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였을 때2008년 4월, 광우병 소고기 협상이 체결되었던 미국방문(한-미 정상회담)이기도 하다 한미 양국 간에 비자면제 협정을 위한 양해각서가 체결되었다. 곧 이어 2008년 10월 양국은 비자면제협정의 핵심사항이었던 범죄정보 교환협정범죄 예방과 대처를 위한 협력 증진에 관한 협정을 체결한다. 해당 협정의 핵심내용은 미국이 한국 경찰이 보유하고 있는 수사자료표지문을 포함한 개인정보, 범죄기록 등의 정보.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에 정의되어 있다 중 특정조건1년 이상 징역 혹은 협정에서 지정하는 범죄에 해당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자료에 미국이 접근할 수 있으며, 특히 지문을 통한 조회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협정문은 외관상 양국에 동일한 조건을 적용하는 것처럼 보이나, 미국은 국민들의 지문정보를 보유하고 있지 않고, 한국은 출입국심사에서 지문날인을 하지 않는 점을 고려해보면, 사실상 미국의 필요에 의해서 체결된 협정이라고 할 수 있다사실 이 협정은 미국의 9/11 위원회법의 내용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 협정으로 미국은 출입국심사대에서 채취하는 한국 여행자들의 지문을 한국 경찰의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검증해볼 수 있는 권한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2008년 9월 전자여권이 발급된 지 한 달 만에 국정감사에서 전자여권의 개인정보 유출시연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전자여권 문제가 다시 불거지기 시작한다. 사실 전자여권에서 개인정보를 읽는 것은 이미 외국에서도 모두 시연된 것이었고, 외교통상부도 알고 있었기에 논란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즉, 외교통상부에서는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야"라고 설득할 만한 논리가 있었으며, 실제로 국정감사 시연을 진행했던 송영선 의원은 이 후 국회에서 "보안문제에 대한 설명은 (외교통상부로부터) 잘 들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송영선 의원과의 공동작업 과정에서 보안문제보다는 지문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이 후 송영선 의원이 지문을 삭제하는 여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에 이른다.

국정감사에서 임팩트 있는 시연이 있었기에, 국회에서는 전자여권에 대한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공감대─그러나 보안문제라는 한계를 가진─가 있었던 것 같다. 송영선 의원이 인권침해와 형평성 문제로 여권법 개정안을 들고 나왔을 때, 여야 구분 없이 모두 인권옹호자들인 양 법안에 동조하였으며, 외교통상부도 대세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 후 외교통상부가 여권에서 지문을 삭제하되 여권 발급시 지문을 통한 본인확인은 실시하는 타협안을 제시하였고, 국회의원들에게는 "전자여권-보안-지문"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었기에 해당 타협안은 만족스럽게 통과되었다. 다만 외통위 전체회의 과정에서 박선영 의원이 “타협안이 애초 개정안의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는 의미 있는 발언을 하였으며, 특히 “국가기관이 신분을 확인하고자 할 때 다른 증빙서류 없이 주민등록증을 이용해야 한다”는 주민등록법 25조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단체, 사회단체, 기업체 등에서 해당 업무를 수행할 때에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로서 17세 이상의 자에 대하여 성명·사진·주민등록번호 또는 주소를 확인할 필요가 있으면 증빙서류를 붙이지 아니하고 주민등록증으로 확인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민원서류나 그 밖의 서류를 접수할 때 2. 특정인에게 자격을 인정하는 증서를 발급할 때 3. 그 밖에 신분을 확인하기 위하여 필요할 때 (주민등록법 25조)의 내용을 상기시키기도 하였다.

 

평가: 대응과 그 틈새들
진보넷 명의로 발표된 첫 번째 성명은 전자여권에 반대하는 네 가지 이유를 들고 있는데, 모두 개인정보의 유출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첫째, 개인정보보호법이 없는데 생체정보가 유출되면 법의 보호가 불가능하다. 둘째, 개인정보의 중앙 집중은 다량의 정보 집적으로 인해 유출의 위험성을 높인다. 셋째, 지문은 변경이 불가능한 고유한 생체정보로서, 한번이라도 유출되면 당사자에게 평생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민감성을 가지고 있다. 넷째, RFID는 무선 기술을 사용해서 접촉하지 않고도 근거리에서 정보를 빼낼 수 있다." 두 번째 성명은 인권단체 연석회의와 함께 발표하였는데, 전자여권을 생체여권이 후 운동과정에서 “생체여권”으로의 명명에 대한 평가도 진행된 바 있다. 외교통상부가 추진 중인 새로운 여권은 “생체정보’의 문제와 “전자화”의 문제를 모두─각각 가지고 있는데, “생체여권”이라는 이름은 “전자화”의 문제를 가려주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다. 이 후 “생체전자여권”, “지문정보를 수록한 전자여권” 등이 대안으로 논의되다가, 언론과 검색에서의 노출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전자여권”이라는 용어로 통일하여 사용하기 시작하였다이라고 명명하였으며 유출의 문제 이외에도, 사진전사식 여권이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같은 논리로 전자여권을 추진한 점, 생체정보의 불필요성, 법률상 개인정보 수집의 범위와 한계가 불명확한 점 등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당시에도 전자여권과 미국비자면제와의 관계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전자여권-범죄정보교환(지문)-미국출입국심사”로 이어지는 전자여권의 전체 프로세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었고, 때문에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수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한계와 언론
과 국회가 가지고 있는 프레임에 따라 전자여권 문제는 “개인정보 유출-사생활 침해”의 문제에 집중되기 시작됐고, 따라서 인권의 관점보다는 보안의 관점에서 논의되기 시작한다. “전자화”와 관련된 모든 문제들이 개인정보 유출과 그로 인한 사생활 침해라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프레임이 언제 시작되었고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 또 어떻게 해체가능한지 연구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인 것 같다.

이후 미국비자면제와의 관계, 전자여권의 전체 프로세스 등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하여 외교통상부에 공개질의를 하였으며, 그 때의 답변들과 해외의 정보들을 바탕으로 전체 프로세스의 윤곽을 어느 정도 그리게 된다. 그려진 윤곽을 바탕으로 전자여권이 수단에 불과하지만, 출입국심사가 권력관계를 만들어내는 직접적인 장場이라는 판단권력은 예외상태를 결정하고 배제하는 자이다. 정상과 비정상, 동일자와 타자, 출입국할 자와 출입국을 할 수 없는 자를 가를 때, 권력이 생산된다. 타자에 대한 배제를 바탕으로 권력은 동일자를 통치한다.을 하게 되었고, 이 후 대응팀은 일본 출입국심사에서의 지문수집 문제, 미국 출입국심사에서의 지문수집 확대 문제, 미국 비자면제 프로그램에서의 과도한 정보수집 문제 등을 함께 제기하기 시작하였다2009년 4월 대한민국 법무부도 우리 나라에 들어오는 모든 외국인의 지문을 검사하는 법안을 입법예고하였다. 진보넷과 인권단체들은 이에 대한 항의서한을 법무부에 전달한 바 있다. 항의서한은 다음 글(p.38)에서 볼 수있다. 즉, "테러리스트가 있다"라는 언표언표는 푸코의 철학적 개념이다. 우리가 언표라고 할 때, “테러리스트가 있다” 자체보다는, 그것이 가능해지는 조건들의 집합에 주목하는 것이다. 조건들의 집합은 제도적 실천, 다른 언표와의 관계, 비담화적 행위, 사회적 맥락 등을 포함하는 가능성의 장場을 의미한다. 또 이 “테러리스트가 있다”가 주체에 의해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언표를 통해 주체가 가능해진다. 즉, 이 언표의 발화와 함께 권력의 가능한 위치들이 정해지는 것이다. 언표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푸코의 <지식의 고고학>을 참조하라. 속에, 공포─보호의 관계, 권력관계가 생산된다고, 맞서기 시작한 것이다.

여권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 후에는 미국비자면제 문제가 남아있었고, 이 부분이 권력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관점에서는 더욱 중대한 문제인지라, “미국-테러-출입국심사-배제-권력”의 문제를 더 많이 제기할 수 있었다. 이러한 문제인식 속에 2008년 9월 전자여권 개인정보 유출을 시연할 때에도, 시연으로 이목을 끌 되, 권력의 문제를 잘 제기해보자 라는 전략이 있었으나 성공적이지는 못하였다. 송영선 의원과 지문의 문제를 공유할 때도, 논의의 초점은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형평성의 문제에 있었다.

따라서 송영선 의원안에 대한 외통부의 타협안은 “개인정보(지문)의 유출” 문제는 나름대로 해결하려고 한 것이지만, “지문을 이용한 본인확인과 배제”라는 권력생산의 문제는 전혀 고려되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전자여권에서 지문을 삭제한 것은 이 후 지문날인제도를 폐지하는 데 큰 걸림돌을 제거한 것임은 분명하다. 지문이 여기저기서 사용되고 있다면, 다시 사용되고 있다는 이유로 폐지할 수 없다고 주장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또 박선영 의원이 제기했던 주민등록법과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새 개정안은 이 후 저항운동의 가능성도 제공하는데, 왜냐하면 여권법 개정안은 “여권 발급시 지문을 이용한 본인확인을 할 수 있다"고만 되어있기 때문이다. 2010년 1월 이 후 여권 발급시 지문날인을 요구해도 여권법과 주민등록법을 들이대면서 지문은 안 찍고 주민증으로 여권을 발급해 달라고 요구할만한 근거가 되는 것 같다.

 

간주곡: 프라이버시와 권력
프라이버시의 담론은 두 가지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 "개인정보 유출"의 방향으로 얘기될 경우, 프라이버시는 인권보다는 개인의 권익을 보호하는 담론이 된다. 내 개인정보가 유출되어서, 다른 사람이 도용한다면? 나는 시장에서 또는 법망에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때문에 가능하다면 개인정보를 덜 수집하고, 잘 보호해야한다. 권력의 생산과는 별 관계가 없다. 이 문제는 국가인권위보다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신경 써야 될 활동으로 보인다. 전자여권 운동에서도 이 문제가 전면에 부각되었는데, 이러한 논의는 오히려 국가와의 관계─권력의 문제를 은폐하는 효과를 야기한 것 같다.

국가와의 관계에서 얘기될 경우 프라이버시는 여전히 유효한 담론이 된다. 지금도 진행되 고 있는 대표적인 운동으로는 통신비밀보호법 이슈인터넷 사업자(포털 등)에게는 IP주소와 로그기록 보관을, 통신사업자(핸드폰 등)에게는 감청설비의 설치를 강제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가 있다. 우리는 "국가가 마음대로 나의 기록, 나의 정보를 들여다볼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이러한 주장은 효과적이다. 프라이버시 담론을 무기로 국가의 이러한 노력을 저지시킬 수 있다면, 이 담론은 권력에 저항하는데 큰 공헌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권력의 문제가 국가─개인의 관계설정에 이미 내재되는 것이라면, 프라이버시 담론의 한계와 가능한 다른 방향들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방한했던 라이언 교수는 "프라이버시"보다는 "퍼블릭 시티즌public citizen"이라는 말을 제안한 적이 있는데, 고민의 지점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아가 개인정보 유출의 문제는 오히려 이 질서, 권력관계를 혼란하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닐까? 예컨대, 자주 유출되는 주민등록번호 때문에 국가는 이 제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또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클린캠페인정부에서 국민(네티즌)들이 가입한 인터넷 사이트를 확인해주는 캠페인. 국민들은 정부에서 제공하는 목록을 보고 자기가 가입하지 않은 사이트에 탈퇴요청을 할 수 있다. 이는 한국이 유일하게 “주민등록제─인터넷 실명제”라는 제도를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캠페인이다. 이 캠페인이 잘 진행될 수록 정부는 국민들이 어느 사이트에 가입해서 활동하는지 보다 정확한 정보를 가지게 된다. 즉, 정부는 “내가 가지고 있는 너의 인터넷 사용 내용을 투명하고 정확하게 유지해라!”라고 명령하고 있는 셈이다 따위를 하고 있는 것 아닐까? 정보가 정확할수록 통제가 용이하니까, 유출되면 될수록 통제에 구멍이 생기니까, 정부는 투명하고 정확한 정보를 욕망하고 명령한다. 따라서 우리의 운동이 권력에의 저항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면, 유출은 신경 쓰지 말아야 할 문제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개인정보가 유출될 때마다 냉소적으로 축복하거나 개인정보를 교환─공유함으로써 그것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 더 웃기고 효과적인 전략일 수 있다. 프라이버시를 가장 욕망하는 자는 오히려 권력인 것이다.

 

전자주민증 반대? 주민등록제 폐지!
올해나 내년쯤에 행안부에서 전자주민증을 도입전자주민증은 곧 추진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행정안전부는 옥션사태 이 후 주민등록제도의 전면적인 개편과 함께 전자주민증 도입을 얘기한 바 있다. 최근에도 인감제도 폐지를 발표하면서 전자주민증이 언급되었다한다고 발표하면 어떻게 될까? 진보넷과 인권단체들 그리고 더 많은 단위들이 함께 대응할 것이다. 그런데 전자여권과 비슷한 방향으로 운동이 진행되지는 않을까? 요컨대, 우리는 전자주민증을 반대하고, 언론에서는 개인정보 유출과 사생활 침해를 떠들어대고, 정부에서는 최첨단 기술이 도입되어 오히려 더 안전하다고 홍보하고, 국회에서는 행정과 국민의 편리와 기본권의 교환가치를 비교하다가 법을 통과시키고. 이 과정에서 권력의 문제는 다시 한 번 은폐된다. 권력은 전자주민증이 아니라 이미 주민등록제도와 함께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은 태어난 아이에게 번호가 부여되는 순간에, 지문을 찍으라고 17세의 손들을 인주로 끌고 가는 공무원의 손끝에, 사람 대신 번호가 오가는 컴퓨터의 기계음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잠시 뒤돌아보면, 전자주민증은 이미 2007년에 그 샘플까지 공개되면서 곧 도입된다고 발표된 바 있다. 당시 발표에 따르면, 새 전자주민증은 신분증 표면의 주민등록번호를 제거하면서 주민등록번호나 지문과 같은 민감한 정보는 IC chip 내부에 저장하여 프라이버시를 보호한다고 한다. 또 인증서 기능을 내장해 인터넷에서 본인확인을 할 때, 전자주민증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고도 하였다. 이 전자주민증은 시범운영을 걸쳐 2009년부터는 강제발급될 예정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후 전자주민증 사업은 추진되지 않았는데,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전자여권이 추진 중이어서 논란부담을 피하고자 했을 수도 있고, 전자여권과 다르게 전자주민증은 교체비용을 전액 국가가 부담해야 하기에 예산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고, 행안부가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유치하고자 하는 상황에서 일부러 뒤로 미루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혹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옥션사태2008년 4월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서 1081만명의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포함, 일부 계좌정보 등 포함)가 유출되었다가 아닐까? 무엇보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천만 명의 주민번호가 노출되는 상황에서, 전자주민증을 이용하여 온라인 본인확인을 진행한다는 행안부의 계획은 더 이상 말해질 수 없는 말인 것이다. 또 옥션사태에 대한 진보넷 등 단체들의 대응도 한 몫 했을 것 같다. 당시 옥션사태에 대한 네티즌들의 왈가왈부는 보안문제에 한정되어 있지 않았으며, 인터넷 실명제와 주민등록제도의 문제로까지 옮아갔다. 진보넷과 같은 정보인권단체들 뿐만 아니라 카이스트의 문송천 교수까지 나서서 "주민번호는 군번"이라며 무조건 폐지해야한다고 주장해 힘을 보탰다.

즉, 행안부가 전자주민증을 밀고나갈 수 없었던 것은, 주민등록제도 자체가 문제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전자주민증 운동을 해야 한다면 이러한 상황에 주목해야 되지 않을까? 전자주민증이 추진되고, 그것에 반대해 기껏해야 다시 원래의 주민등록제도로 돌아가는 제자리 운동이 아니라, 전자주민증은 출발조차 할 수 없도록 그 디딤돌인 주민등록제도의 문제를 제기하는 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운동은 행안부의 발표를 기다려서는 안 되고, 지금 이미 시작되고 있어야 하는 운동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에야 "개인정보─사생활침해"라는 프레임에 빠져들지 않고, 진짜 권력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개인정보 유출", "사생활침해", "프라이버시"가 아니라 "주민번호는 군번이다"라는 언표가 필요한 것이다.

 

디저트: 상상력과 대안
이 운동에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등록제도가 없어도 된다는 상상력과 그에 대한 현실적 대안인 것 같다. 주민등록제도가 없다면 행정이나 복지는 어떻게 수행되고 보장되는가? 해외에는 어떤 제도들이 있는가? 옥션사태 때는 "목적별 번호"를 언급한 적이 있지만, 실질적인 내
용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민번호를 사회보장번호로 전환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어떨까? "통제가 아니라 사회보장을"이라는 담론과 연합될 수도 있을 것 이다. 새로운 제도 하에서, 사회보장번호는 매우 제한된 행정기관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번호는 외울 수 없는 20~30자리의 랜덤한 숫자로 만들고, 국민이 신청할 시 지자체에서 재/발급하도록 하자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들은 불가능하지 않다. 행안부도 이미 주민등록번호를 새롭게 바꾸는 안을 고민하고 있으며, 지난 전자주민증에서 이미 표면의 주민등록번호가 삭제된 바 있다. 즉, 이미 없으면 좋은 번호, 최소한 민간에서는 사용하면 안 되는 번호라는 공감대가 있는 것이 아닐까?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대안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주민번호가 정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9-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