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지 액트온

불편하게 살자!!!

By 2010/09/06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이종회

올해 2월 하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고 하니 알아서 움직이라는 전화 한통을 받았다. 아뿔싸! 아들 학교문제로 시골을 다녀오다 마침 내 이름으로 등록된 자동차로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한 직후였다. 계속되는 속도측정기라는 CCTV가 걱정이 되었지만 일단 전화를 끄고 그것도 안심이 안 돼 아들이 가지고 있던 전화도 끄게 했다. 그러고 나니 하이패스가 걸렸다. 이거야말로 GPS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싶어 일단 끄고 나니, 고속도로 진입할 때 썼으니 나갈 때는 어떻게 나갈지 걱정이 되었다. 서울까지 가지 말고 중간에서 내려 국도로 올라갈까 아님 그냥 끝까지 가볼까 궁리를 하다 결국은 서울 톨게이트로 나왔다.

시내에 접어들어 어찌어찌해서 차를 넘기고 처음 알려준 이에게 연락을 해보니 경찰이 체포영장을 신청을 했고 발부는 조금 더 걸릴 것이라 한다. 그래서 무사히 서울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디로 피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이 미치다보니 다른 이에게 부담과 피해를 줄 것이라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 일단 부담도 없고 쉴 만한 곳을 찾다 찜질방으로 향했다. 설마 했는데 옷 벗고 들어가는 찜질방에까지 CCTV가 버젓이 달려있는 걸 보고는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을 만나 같이 있으면 그 사람의 핸드폰까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려니 요금단말카드가 마음에 걸린다.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이런저런 궁리 끝에 결국은 순천향병원 영안실로 들어갔다.

영안실에서 웹서핑도 하고 자료도 주고받곤 하는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인터넷을 하곤 했다. 수배된 범대위 두 공동집행위원장이 사용하는 회선이라 패킷감청을 할 것이라는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웹서핑부터 메일 주고받으려면, 범대위 자료부터 심지어는 영화를 한편 내려 받아 보는 것까지 스스로 검열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쓰는 핸드폰도 번호를 공개하지 않아 말이 비폰이지 결국은 전파로 잡아낼 것이라는 판단에 일정정도 지나서는 아예 내놓고 사용하고 있다. 수배 10개월 가까이 영안실과 명동성당에 들어와 있는 동안 내 차는 수없이 검문을 받았고, 경찰과 운전자는 이종회다 아니다 소리 높여 실랑이를 벌였다. 길거리에서 경찰이 지나는 차마다 휴대용 단말기에 차량번호를 입력해서 차량조회를 하기 때문이다.

가끔씩 경찰에 잡혀가 조사를 받은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예전에는 집회사진을 각 경찰서 정보과에 보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을 찾아내는 절차를 거쳤다고 하는데 요즘은 컴퓨터가 사진으로 사람을 찾아낸다고 한다. 이제 슬슬 마무리 국면에 접어드는데 장례를 지내고 나면 경찰에 출두를 해서 조사를 받을 텐데, 그래도 진보넷 대표가 지문날인을 할 수도 없어 아직 고민이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범죄자 유전자 DB를 만든다고 하는데, 나는 대상이 안되는지 어떻게 싸워야 할지 궁리를 해보곤 한다.

80년대 중반에 2년여 수배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는 사람만나는 것을 조심하기만 하면 안전의 반 이상은 보장이 되었다. 그래서 만남은 다방 같은 곳을 포스트로 둬 쪽지로 하거나 인편을 통해서 하고 5분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는 묵계가 있었다. 수배된 사람이 두 번 연속 나타나지 않으면 다 튄다든지, 소설에서나 나올만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긴장과 낭만(?!)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나올듯한 기계와의 관계에서 나오는 긴장이다 보니 도망 다니는 재미가 없다. 이게 IT선진국 한국에서의 수배생활의 일상이자 고충이다.

가장 민감한 수배자에게 다가오는 일상이지만 사실은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환경을 무심코 흘리며 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편하다는 것으로 묵과되고 이용된다. 인터넷 독립선언이 나올 만큼 장밋빛 청사진을 그릴 때도 있었지만 기술진보의 결과에 대해 특히 촛불정국 이후 다가오는 현실은 우리를 낙망케 한다. 물론 과학기술의 민중적 이용이라는 측면에서의 노력과 투쟁이 이어져야겠지만 가끔 기술진보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던져보곤 한다. 그래서 그 역시 대학교수였지만 대학교에 폭탄을 배달하던 이른바 유나바머를 이해를 할 수도 있을 듯하다.

생태주의자들은 서구적 담론에서의 문명, 마르크스의 생산력주의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리하여 생산관계를 우선하는 사회주의로의 전화를 얘기한다. 그리고 ‘자발적 가난’을 얘기한다. 진화론, 과학기술의 진보 등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이즈음 우리는 ‘자발적 불편’ 즉 ‘불편하게 살자’를 얘기해 보는 것은 어떠할까 싶다. 용산참사 다섯 열사분들을 양지바른 곳에 모시고 감옥을 다녀오면 카드, 핸드폰 없이 지내보는 것은 어떠할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있다.

 

 

2009-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