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지 액트온

치료제 수급 대책의 실패와 관련하여{/}신종플루 대유행, 국가는 어디로 증발했는가?

By 2010/09/06 10월 25th, 2016 No Comments
홍지

정부는 지난 11월 5일 신종 인플루엔자(이하 신종 플루)에 대해 전염병 재난단계를 심각단계로 격상하고 정부의 역량을 총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종 플루 유행 초기부터 우려되었던, 백신 접종 대상자 선정에서부터 부족한 병상과 고가의 진료비 문제 등에 대해 정부는 그 어느 하나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특히,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던 항바이러스 치료제의 수급 및 처방과 관련해 정부가 보여준 일관되지 못한 행태는 신종 플루에 대한 국민들의 공포심을 배가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에 몇몇 시민사회단체들이 복지부에 공개질의서를 보내고, 전재희 장관과의 면담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복지부의 공식 답변 대신 관계자의 전화 한 통을 받았을 뿐이다. 그는 “신종 플루로 인해 자신들이 얼마나 바쁜데, 이런 문제로 괴롭히느냐?”라며 공식 답변을 내놓을 수 없다고 하였다.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와 문제제기를 ‘괴롭힘’ 따위로 폄하하는 이러한 독단적 시각은, 1년 전 온 사회의 공분을 일으킨 미국산 광우병 소고기 수입 논란 때의 그 모습과 한 치도 변함없이 관철되고 있다. 광우병 소고기 수입 논란이 발생한 이유는 근본적으로 정부의 독단적인 의사결정 때문이었다. 공중의 건강을 위협하는‘위험’을 둘러싼 논의에서, 우리 사회는 정부 관료들이 일반 국민들의 상식과 판단을 억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몇 십 년 만에 찾아온 질병의 대유행 상황에서 정부의 태도는 어떠한가? 그 때와 변함없이 정부는 자신들의 정책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주장은 단지 ‘괴담’ 또는 ‘좌파의 선동’ 쯤으로 치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정부의 항바이러스 치료제 처방 방침을 둘러싼 논의이다. 8월 15일 국내에서 신종 플루로 인한 최초의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정부는 오히려 항바이러스 치료제의 처방 지침을 대폭 제한했다. 각계 시민사회단체들과 전문가들은 백신이 공급되지 않은 상황에서 치료제만이 감염을 차단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임을 강조하며 정부 정책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당시 국내 비축분량이 인구 대비 5%도 안 되는 약에 대해 남용과 그에 따른 내성 발병이 우려된다는 ‘불안’을 지속적으로 퍼뜨려나갔다. 그러나 추석 이후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집단 감염이 본격화 되고, 사망자 수가 급증하자 정부는 처방 지침을 대폭 확대하여 일반 병원 및 약국에서 항바이러스 치료제의 처방 및 구매가 이뤄지도록 하였다. 하지만, 국민들의 약에 대한 ‘불신’은 커질 대로 커진 상황이었으며, 이 때문에 치료제를 제 때에 투약하지 않아 사망하는 사례도 발생하였다. 결국 복지부 장관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 스스로가 그토록 강조했던 내성 발병 우려에 대해 “가능성이 거의 없다”라며, 국민들에게 항바이러스 치료제의 투약을 적극 권장하기에 이른다.

정부의 무책임한 자기모순은 ‘타미플루(Tamuflu)’ 강제실시와 관련된 논의에서 극에 달한다. 지난 4월 국내 시민사회단체들은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치료제인 타미플루에 대한 전 세계적인 공급 부족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며, 이 약에 대한 강제실시를 요구했다. 사실 이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조류 독감’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던 2005년부터 정부 스스로도 타미플루의 공급 부족 문제가 도래할 것임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지역사회 감염을 성공적으로 막았다며 자축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7월 이후 정부의 희망과는 달리 지역사회 감염이 본격화되고, 국내에서 타미플루의 수급에 차질이 우려되자, 8월 21일 전재희 복지부 장관이 공개석상에서 “타미플루 강제실시” 발언을 하게 된다. 그러나 발언 사흘 만에 전재희 장관은 돌연 “국제사회의 신뢰”를 운운하며 발언을 번복하였고, 9월까지 국내에 충분한 타미플루 비축분이 입고될 것이라고 하였다. 연내 공급불가를 밝혀온 제약회사가 복지부 장관의 강제실시 발언 이후 입장을 바꿔 약의 즉각적인 공급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강제실시’의 효과를 누구보다 톡톡히 본 복지부는 이후 강제실시에 대해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하는 일”이라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

9월까지 국내에 타미플루가 충분히 비축될 거라는 정부의 호언장담은 11월까지 지켜지지 않았다. 11월 1일부터 하루 평균 타미플루 신규 투약이 10만 건을 상회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실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타미플루의 정부 비축분은 80만 명 분 뿐이었다. 이마저도 성인용 타미플루에 한한 것이며, 소아용 타미플루의 경우 지난주 국내 재고량이 ‘0명’분이었다.

이미 시중에서는 타미플루 부족으로 인한 혼란이 현실화된 상태였다. 정부는 타미플루 내성 발현에 대비한 또 다른 항바이러스 치료제인 ‘리렌자(Relenza)’의 처방을 적극 권장했으나, 의사들이나 환자들 모두 이를 꺼려하였다. 한편에선 타미플루의 국내 판매처인 한국 로슈(Roche)가 약을 사재기하여 식약청의 압수수색이 이뤄지기도 했다. 또한, 11월 17일 정부는 새로 입고되는 100만 명분의 타미플루가 미포장 상태로 긴급 수입될 것이라 발표했으니, 정부 스스로 당시 타미플루의 수급 상황이 하루를 버티기가 어려움을 시인할 꼴이다.

질병의 ‘유행’은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에 의해 생겨나지 않는다. 그것은 그러한 것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회의 실패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다. 한국에서 실패의 주범은 다른 누구도 아닌 정부이다. 입고 일자조차 정확히 명기되지 않은 제약회사와의 계약서 한 장에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걸어 놓고서도, 작금의 사회적 혼란과 두려움에 대해 정부는 단 한 차례의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얼굴을 내보이면서 “우리를 믿어 달라!”라고 말하는 전재희 장관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국민들과의 직접적인 상호소통은 거부하였다. 그리고 이 땅의 국민들이 의지했던 것은 마스크와 손 소독제뿐이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해야 할 국가는 도대체 어디로 증발하였는가?

 

 

2009-12-20